저는 이 잔을 피하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싶대두요
싱그런 바람 그윽한 꽃향기에 취해
그저 걷고만 싶습니다
저는 그저 저이고 싶을 따름입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으로 족합니다.
아침이면 밥상 앞에서 조간신문을 읽으며
깍두기를 씹고 싶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부딪치고 싶습니다.
잠 안오는 밤이면 시집을 읽고 싶고
때로는 대중가요를 읊조리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 주간연속극도 보고 싶고
휴일이면 식구들과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청룡열차도 타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누구십니까?
왜 제 자유를 속박하는 겁니까?
여러분들의 눈에서 흐르는 그 피눈물을
왜 저에게 보여주시는 겁니까?
한 겨울 불도 안들어오는 단간방에서
숨죽여 울고 계신 할아버지
왜 저에게 손짓을 하시는 겁니까?
아빠 엄마가 이혼하고 달랑 남은 남매가
왜 저에게 속삭이는 겁니까?
역사가 무엇인데요?
정치가 무엇입니까?
진리가 무엇인가요?
곧 5. 18이 돌아오는군요.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민정당 정권....
그 뿌리를 올라가보면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 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와 닿고 있습니다.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과
1974년의 민청학련 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었지요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민정당 정권은 정식 출범조차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이었습니다.
그 정권이 말하던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 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였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했고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과연 이 땅에 진정한 정의가 바로 세워져 있습니까?
복지는 제대로 펼쳐지고 있나요?
정치는 국민의 눈을 통해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건가요?
요즘 들어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제각기 다른 색깔을 띠고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저에 관한 말들은 더욱 심해서 ‘창작의 시대’가 도래한 듯합니다.
왜 그렇게 저에 대해 관심들이 많으십니까?
그리고 왜 제 이야기를 마음대로 지어내고 퍼뜨리는 건가요?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단 한 사람의 눈물이라도 제가 흘리는 눈물처럼 여기겠습니다.
어느 누구의 영혼도 제 영혼과 꼭 같이 생각하겠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하나님이 제게 주신 양심의 저울로 세상을 바라보겠습니다.
무언가 제게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군요.
사람들의 거친 숨결도 느껴집니다.
아우성과도 같은 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리고...누군가 내미는 잔.......
아, 저는 이 잔을 피하고 싶습니다.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싶대두요.
싱그런 바람 그윽한 꽃향기에 취해
그저 걷고만 싶습니다.
허나 이 잔을 피할 수 없다면
결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저는 이 잔을 기꺼이 받겠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말입니다.....
-l-.....'유시민의 피눈물(1)(2)(3)'은 물론 유시민 장관이 쓴 게 아니라 한 지지자가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쓴 것으로 독자들의 오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