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빨리, 쉽게 포기했네....”
“무슨 소리야? 유시민 참...역시 다르다, 달라!”
“야, 이거..이제 무슨 재미로 대통령 선거전 보나”
삿갓김은 침통한 표정으로, 어느 해 겨울 누군가의 영혼을 닮아 그토록 투명하다는 둥 어쩌구 하며 ‘쐬주 애가’를 부르짖던 그 후배처럼 곡차 잔을 순식간에 네 번째 입으로 가져가며 바로 앞 자리 40대 초반의, 친구인 게 분명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시민 예비후보가 경선포기를 선언하며 즉각 이해찬 지지로 돌아서던 날 밤이었지요. 삿갓김은 유시민 지원차(?) 후배들을 만나기로 한 곳에서 조금 일찍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벌써 빈 속에 8잔째 단박에 들이붓던 순간, 그림을 전공한 후배가 먼저 나타났습니다.
“아니 형, 벌써 눈이 풀려부렀네 그려. 그리고 무신 쪼꼴렛을 눈으루다가 깨물어 먹었수? 눈은 왜 그리 쪼꼴렛 색깔이유?”
거 참 녀석하고는...삿갓김은 파리까지 날아가서 그림 공부를 했다는 녀석의 입에서 ‘초컬릿’까지는 아니더라도 ‘초코렛’ 정도는 발음해야 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쪼꼴렛 소릴 두 차례나 들은 삿갓김이 9잔째 잔이 넘치도록 부은 게 결코 흠이 될 수는 없을 테지요. 그 쪼꼴렛 눈을 쓰윽 두 번 부빈 뒤 다시 원 샷 했습니다.
유시민을 생각하며...
“아니 형? 내가 모 잘못한 거 있수? 아, 내가 나타나자마자 눈물을 뿌리는 이유가 모유?”
녀석은 시비라도 걸 거처럼 눈을 부라리며 잔을 소리나게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내가 또 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참 이 나이에 눈물이 이렇게 흔해지다니, 거 참....
“참, 유시민이 그만두었다니까 내가 도울 일도 없어졌네, 몰”
후배는 내가 따라 준 잔을 반쯤 마신 뒤 다시 소리나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니 근데 유시민이 막 뜨는 중인데....아쉽다, 아쉬워...”
“자, 자 잔이나 받어. 참 그리구 너 언제부터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냐? 정치하는 눔덜 모조리 한강에다가 처넣어야 한다고 부르짖던 눔이...참 오래 살 일이다, 참말로...”
“얌마, 유시민이가 대통령 될 거 같아서 다시 정치에다가 불켰던 거지...이젠 다시 끌란다...”
가운데 자리,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가운데 머리가 상당히 벗겨진 사내는 두 친구의 말을 유심히 듣는 듯싶더니 이내 목을 뒤로 젖히고 잔을 털어넣는 것이었습니다(분명히 그 표현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그냥 목을 꺾고 ‘털어넣는’ 것이었으니까요).
“아, 형 모해? 내 팔 떨어지겠수!”
언뜻 시선을 바로하자 그림(난 평소 이 후배를 그렇게 부릅니다...그림아, 라고)이가 내 코 앞에다 잔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닙니까.
나는 잠자코 녀석의 잔을 받아 입술만 살짝 댄 뒤 탁자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잔을 그림에게 내밀어 가득 따라 주었습니다.
취기가 몰려들고 있더군요.
나는 그림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순간 자기를 훼방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머리가 나를 째려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의 눈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는 울고 있더군요. 눈물방울이 데구르르 오른쪽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 술집에서 나말고 또 우는 놈이 있었단 말인가요. 나는 묘한 동류의식을 느끼며 대머리를 눈을 가늘게 하고 건너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히죽 웃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해찬이는 대중성이 모자르지...아, 아무리 총리를 했다지만 유시민이만큼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
오른쪽 사내가 목소리를 높여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대머리는 나에게서 시선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나 한 듯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아니, 정말 초코렛 색깔이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신음처럼 내뱉었습니다. 흰자위가 빨갛다 못해 짙은 갈색을 띠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사이다를 즐겨 드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생수를 드시든지...>
지난주 목요일, 의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나는 의사의 충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의사는 다른 보통 사람 같았으면 벌써 사단이 나도 났을 거라면서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살고 싶으시다면, 아니 뭐 꼭 오래는 아니지만 사는 동안만이라도 건강하게 사시려면 제 말대로 하시지요>
나는 고개를 네 차례나 끄덕이며, 20여년 간 지속된 이 내과전문의의 우정어린 충고를 경청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었지요. 적어도 이틀 동안은...9월 15일 점심 때까지는.
“솔직히 이해찬이니까 유시민이 양보한 거지? 아, 안그러냐?”
내가 화장실 문을 밀고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대머리가 나를 째려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사이 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는 다른 후배도 와 있었습니다. 나는 그 녀석과 악수를 한 뒤 내 자리에 앉으며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대머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유시민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 아니냐, 그 사람...아마 그럴걸 대통령만 빼고는...”
대머리 오른쪽 친구가 무슨 축배를 들기라도 하는 듯 머리 위쪽으로 잔을 높이 쳐든 채 외쳤습니다.
“자, 자 대한민국을 위하여! 유시민과 이해찬을 위하여!”
나도 엉겁결에 잔을 높이 들었습니다. 후배 두 녀석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내 손을 건드렸습니다.
“형, 정신 좀 차리슈. 안하던 버릇 하시네...아니 남의 자릴 왜 신경 쓰고 그러셔...고거 마시구 벌써 취하면 어떻게 할거요? 전번에도 내가 형수한테 얼마나 빌었는데....하긴 오늘은 형이 보자구 한 날이니 난 책임도 없지만서두...”
나는 다시 원 샷을 한 뒤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너거들이 무얼 알겠냐? 저 세 사람은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 제대로 된 사람들이다. 이 자석들아, 너거들은 그림 그리고 글만 쓰면 세상이 잘도 돌아가는 줄 아는 모양인데...세상은 그게 아녀. 정말이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하는 거야. 아무나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거지....>
그 날 나는 후보 사퇴 뒤 사진으로 본 유시민의 눈물이 자꾸 떠올라, 엄마가 도망간 걸 눈치 챈 아이처럼 눈물깨나 흘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후배 녀석들을 팽개치고 대머리 일행과 어울려 신나게 마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이런 말이 가장 많이 들렸던 거 같습니다.
<참여정부, 노무현, 이해찬, 유시민.....결코 쓰러지지 않을 순수한 정치인들...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