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의 선택은 늘 옳았고 옳을 것이다 >
- ‘화려한 휴가’를 보러 영화관엘 3번이나 갔다.
사실 영화를 무척 좋아하긴 하나 이런저런 시간 핑계로 극장엘 가본지가 그 언제인지 모르고 살았지만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고 일반과 좀 다른 시각으로서의 내 시각으로 또한 꼭 보고 싶었던 ‘화려한 휴가‘였다.
그런데 막상 개봉이 되고는 선 듯 가 보질 못하고 그 영화와 관련한 인터넷 글들만 뒤적거리던 어는 날 집사람에 손목을 잡혀 끌려가듯 극장엘 가게 되었다. 좌석에 앉고는 어느 시간부터 시야가 계속 뿌여 져 끝내 영화의 상당부분을 보질 못했다.
불이 들어 온 후 한 동안 일어설 수가 없어 영화관을 제일 마지막으로 나섰으나 힘 빠진 다리에다 온 몸이 욱신거려 길 가 벤치에 얼마의 휴식을 취하였다. 그 때 내 앞을 오가는 젊은 처자들을 보면서 ‘오늘의 이 햇살이 눈부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슬픔이 존재했었는지를 과연 저들이 얼마나 알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얼마 뒤에 참평 주최의 영화번개가 있었다. 한 동안 외국에 있었던지라 오랜만에 동지들을 만나고 그들과 같이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의미가 있었겠으나 끝내 같이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직도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며 그래 관람 후의 뒤풀이에만 참여했다.
그리곤 다시 얼마 후 더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미 성년이 다 된 두 딸과 같이 영화를 ‘제대로’ 보러 갔다. 그것은 의무 같은 것이었는데, 정치군인과 그들에 부역한 수구언론에 의해 자행된 전무후무의 날조가 광주를 어떻게 죽였는지를, 그리고 대한민국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그 시기, 서울내기 사병인 내가 전달받은 상부의 지침이 ‘광주에 북의 게릴라 1개 대대가 침투하여 시민으로 위장해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바 국가의 안녕을 지키라!’는 정말 기가 막힌 허위왜곡이 있었음을 아비로서 자식에게 증거하고자 했다.
그리고 세월이 이토록 흘렀음에도 아직도 그 진실의 역사는 완전치 않다는 것과 그로인해 그 무도한 자들이 아직도 천벌을 받지 않고 저리도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도 가르치고자 한 것이다.
- 광주의 선택은 옳았다.
잊혀 질 수가 없는 그 때, 광주는 총을 들었다. 그게 과연 옳은 행동이었을까? (영화에서 안타까웠던 옥의 티는 그 시민군들이 M16을 들고 있었던 장면이다. 글쎄 내가 알기로 그들이 취할 수 있었던 총기는 M1이나 칼빈 따위였다)
M16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형편없는 구식 총을 들고 군인들과 맞선다는 것은 정말로 무모하기 그지없는 자살행위였다. 그것이 과연 저들 시민군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현명한 방법이었을까?
내가 저들 속에 한 일원이라면, 내가 저들의 앞장선 이라면 과연 저렇게 죽어가서 뭘, 무엇을 얻겠다고 할까?
아무런 답이 없다. 애초부터 답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들의 저항은 무엇을 특별히 얻고자, 무엇을 특별히 지키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답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 오로지 저들은 닥쳐온 인간파괴의 불의에 맞서야만 한다는, 신이 인간에 부여한 인간존엄성 수호에서 우러나온 지극히 원초적인 저항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욕구도 어떠한 기대도 아닌, 단 하나, 인간으로서의 그 존엄성 유지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은 그 어떤 것에 앞서 정당했고 숭고했으며 그들의 희생은 옳았던 것이다.
그 후 오랜 시간 광주는 강요된 침묵 속의 섬이었으나 그들의 그 희생정신은 결코 스러지지 않고 끝내 노무현을 만들어 냄으로서 광주가 국민 속에 있게 하였고 저들이 옳음을 무언으로 입증하였다.
- 광주는 개혁의 숙주이자 태반으로 그 역활을 해야한다.
불행이도 광주는 이 시대 역사의 분기점이자 방향타이다. 역사의 진실은 광주를 죽이고자 했던 저 역사의 반동들에 의해 유린당한 광주를 개혁의 숙주로 운명지운 것이다. 그것이 광주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강요된 권리이다.
그러나 염려스럽게도 지금 광주는 혼란에 젖어 있다 본다. 지금의 광주가 겪고 있는 선택에 대한 자신감 부족과 과거의 선택에 대한 혼란은 결코 광주만의 문제로서 끝날 일이 아니다. 광주의 혼란, 광주의 자신감 결여는 광주 자체를 부정함은 물론이요 역사를 부정하는 것임에 다름없다.
광주는 떳떳해야 한다. 저 수구무리의 선전대인 조중동의 끝없는 요설, 그리고 일정부분 그들과의 야합 속에 광주에 기생하여 광주정신을 좀먹고 있는 지역토호와 그들의 찌라시 지역언론에 의해 휘둘렸던 지난 5년 가까이의 판단에 대한 혼란은 이제 정리해야 한다.
광주는 당당해야 한다. 그 당당함을 가지고 개혁의 태반으로서 광주의 선택이 시대정신의 노무현을 선택했듯 흔들림없는 기준으로서
결코,
광주의 자존심은 '그 더러운 수구 무리와 상생을 부르짖던 자'에게 있지 않음을,
결코,
광주의 자긍심은 '그 더러운 수구 무리와 한솥밥을 먹던 자'와 함께하지 않음을,
선포하여아만 한다.
작금의 광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건데 우려스럽게도 지금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어쩌면 이번의 민주신당 당내경선이 5월 광주에 되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입힘은 물론이요 끝내 개혁세력의 몰락까지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절체정명의 위중한 상황임을 동반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방관자가 아닌 직접적 이해당사자로서 광주시민과 개혁세력 모두는 이제 결연히 나서야만 한다.
(빚을 조금도 갚지 못함에도 염치없이 또 다시 큰 빚을 얻고자 먼 이국 출장지에서 광주시민들께 간절히 읍소하며 절박한 심정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