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자 글을 한번 더 올려드립니다.
‘정권 계승론’의 오류와 ‘친노후보 단일화’의 허상
- 참여정부 부정이냐 계승이냐는 편협한 이분법에 불과하다.
- 참여정부는 극복되어야 한다.
소위 친노라는 사람들은 이번 대선을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라는 이분법으로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교체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정권은 그 세월을 통해 계승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완벽하게 계승되는 것도 없고, 완벽하게 지워져 버리는 것도 없다.
그들은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차이점을 잘 모르고 있다. 세상은 혼자서 다스릴 수는 없지만, 내각제는 대체로 당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지도체제이며, 대통령제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지도체제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권력의 내용과 양질적 수준에서 내각제의 총리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와 내용적 의미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교체는 그 어떠한 정치적 변화보다도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299명을 뽑는 총선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크게 나타나는 것이 1명을 뽑는 대선이다.
노무현은 김대중을 계승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은 2002년 대선을 통해 2003년 노무현 정권으로 교체되었다. 반면, 김대중 정권은 노무현 정권을 통해 계승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을 올바로 계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은 대북포용정책을 계승했다고 하면서 분명히 대북송금에 대해 특검을 자행하였다. 이점 분명히 한다. 아직도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분명히 사과해야 할 사안이다. 또한, 노무현은 국민의 정부를 계승했다면서 김대중의 정치적 기반이며 민주평화세력의 단일 대오였던 민주당을 분열하여 열린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열린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린당이 그 무슨 대의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현재 존재하지도 않는 정당을 가지고 그 때 무슨 좋은 정신이 있었다고 계승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열린당이 죽을 이유가 없다. 말은 뻔지러해도 오만과 독선으로 외연을 넓히지 않고 통합을 외면하고 분열의 정치를 추구하였기에 죽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만 좋은 것을 정신이라 하지 않는다 했다. 그리고 열린당의 분열은 10년 전도 아닌 불과 4년 전에 불과하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서 민주평화세력을 분열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가치와 그 무슨 고상한 정신은 없다.
이렇게 노무현은 김대중 정권의 핵심적인 정책과 정치적 기반을 파괴하였다. 그러나 그 옳고 그름을 떠나 나는 노무현이 김대중을 계승하였다고 보지 않는다. ‘민주정부 10년론’은 사실상 허상이다. 단지 김대중 정부 5년과 노무현 정부 5년이 있었을 뿐이다. 그 정부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서로 다른 정부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다시 17대 대통령 정부 5년이 다가 오고 있다.
현 정권 계승론 구분은 비열한 이분법이다.
“현 정권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물음은 선악을 나누는 기준도 아니며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기 위한 절대적 물음은 더더군다나 될 수 없다. 항상 답은 한가지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것은 고치겠습니다.” 이 이상의 답이 있겠는가. 항상 우문현답(愚問賢答)일 뿐이다.
더욱 분명한 대답은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선거를 통해 지난 정권을 극복하여야 한다.” 우리는 참여정부에서 많은 민생의 고통을 보았다. 그리고 민주평화세력의 분열도 보았다. 대외 정책, 대북 정책에서 오락가락한 모습도 보았다. 언론과 다툼은 계속되어도 우리는 확실한 민주언론의 환경을 갖고 있지 못하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수구보수세력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하다. 물론 모든 문제가 참여정부의 절대적 책임은 아니다. 문제는 옛날부터 빚어진 것도 있고, 참여정부가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정권이 그 임기를 다 하더라도 이러한 과제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생회복과 민주발전, 평화통일이라는 개혁의 방향이 같더라도 방법론에서 달라질 수도 있고, 주도세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이나 주도세력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독재의 마음이 된다.
특히 소위 친노의 혹자는 ‘민주정부 10년’을 얘기하며 이번 대선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계승하느냐, 마느냐’라는 전선론을 펼친다. 참 한심한 것은 자신들도 진정으로 계승하지 않은 국민의 정부를 왜 17대 대통령에게 계승하라고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지 알 수 없다. 또한, 그것은 비열한 이분법에 불과하다. 17대 대통령 정부는 자신의 대의와 의지를 가지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는 정치와 행정을 하면 된다. 그래서 대통령 후보가 뭘 얼마나 계승하는가를 보기 보다는 그의 정치적 대의와 의지, 정책을 보면서 평가하면 된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답은 항상 한 가지 “좋은 것은 계승하고 나쁜 것은 고치겠습니다.”
결론은 이런 것이다. 모든 선거를 통해 지난 정권은 극복되어야 한다. 지난 정권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잡는 사람은 참다운 개혁가가 아니다. 노무현이 2002 대선에서 약한 당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대권을 거머쥔 것은 그가 김대중의 단순한 계승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가진 대의와 정치적 세력이 달랐고, 정치 스타일이 김대중과 달랐다. 이런 것에 대한 국민적 동의가 없었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는 없다. 노무현은 지난 정권의 계승자로 대선에서 이긴 것이 아니고 김대중 정권을 극복하라는 국민의 요구로 된 것이다. 지금 와서 ‘민주정부 10년론’으로 당시의 치열했던 문제의식을 괜히 두루뭉실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친노후보 단일화’의 허상
나는 지난 정권을 단지 계승하겠다는 것으로 선거에 이긴 경우를 보지 못했다. 모든 출마자는 지난 권력에 대한 건전한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지난 정권을 누가 얼마나 그대로 copy 하느냐’ 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라, 건전한 비판적 관점의 내용과 정책, 의미, 세력이 무엇인가로 판가름 짓는 것이 선거이다.
모든 정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의미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담아가는 것이다. 어떤 정권을 무리하게 존속시키고 계승시키는 의미로 선거를 바라보는 것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부정이며 일종의 독재적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너무나 옳기 때문에 계속 살아야겠다는 마음은 왜 민주주의가 '임기'라는 제도를 두어 그 시간적 제약을 두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너무나 옳다면 그런 이유로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국민과 역사는 당장은 다소 섭섭하게 말할지라도 분명히 정당한 평가를 내릴 것이다. 국민과 역사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당신들의 가치는 신념이 아니고 유행일 뿐이며 열병일 뿐이다.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였던 나는 노무현에 대해서도 비판적 지지자였다. 어떠한 살아있는 권력도 국민들의 마음과 양심 속에서 피어나는 비판적 관점을 지우려 해서는 안 된다. 참된 지지자는 무조건적 추종이 아니라 역사와 대의에 따른 현실적 비판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관점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지지자도 지지 받는 자도 다 오만과 독선의 아집에 빠져버리는 구렁텅이가 된다.
그러나 그래도 그들을 지지했던 것은 현실은 이상과 다르며, 역사는 어느날 아침 일어나보니 일어난 혁명으로 전진되는 것이 아니고 계단을 밟으며 수구보수세력과의 지난한 싸움을 통해 전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세력이 아니라 바로 돌리려는 세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지나갈 정권의 계승론만을 주장하며 역사의 흐름에 맞선다면 이 세력 역시 수구세력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전한 비판적 지지라는 고상한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이 상실되면 ‘현 정권의 계승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으로 선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16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17대 대통령의 시대가 열린다. 그리고 17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18대 대통령의 정권으로 교체된다.
한강의 강물은 항상 흐르고 있지만, 그 앞에 온 물은 흘러가버리고, 뒤에 온 물은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면 물은 물이 아니고 강은 강이 될 수 없다. 흐르는 물은 항상 같은 것 같지만, 그 물은 항상 다르다.
2007. 9. 8
대낮의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