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이 당선될 가망성이 매우 낮아진 지금, 지금까지 내가 썼던 글들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고 시민광장을 떠나려 한다. 나또한 모바일 투표를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모바일 투표를 독려했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 그저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대통령 선거가 아니며 또 우리에게 대안이 있기에 앞으로 우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미력하지만 나름대로의 조언을 남긴다.
문제의 시작
문제의 시작은 누가 뭐라 해도 친노세력의 대통합신당 합류이다. 난 유시민이 대통합신당으로 옮기는 날 난 처음으로 시민광장에 글을 남겼다. 대통합신당으로의 합류는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난 반노세력들이 열린우리당을 떠나는 것을 오히려 대반격의 시작이라고 보았다. 수많은 기회주의자들이 한방에 정리되고 좀 더 선명한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믿었던 유시민은 앞장서서 당을 깨고 사지로 들어갔다. 내가 보기엔 대통합신당으로의 합류는 이길 수 없는 필패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난 차라리 내 예상이 틀리길 바랐으나 불행히도 결국 내 예상이 맞았다.
난 노무현의 큰 업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을 높여 놓았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2002년 그는 국민들을 감동시킴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수많은 정치 냉소주의자들을 투표장으로 불러 모은 것은 바로 그가 가진 정당성이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에 당선되는 노무현을 보며 정치에도 새로운 길이 있음을 실감했다. 한번 높아진 국민의 눈높이는 더 높아지면 높아졌지 다시 내려올 수는 없다. 열린우리당이 그토록 고전한 이유는 높아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옛날 구태 정치로 회귀한 대통합신당을 국민들이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그 순간 패배는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단지 우리가 믿고 싶지 않았을 뿐 말이다.
이해찬에 대한 기대 그리고 실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시민광장의 다른 사람들처럼 이해찬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크나큰 변수가 있을 예정이고 이 변수를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이해찬에게도 한 번의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해찬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이 참여정부의 적통임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난 노무현 대통령의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라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 내내 좋지 않았고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국민들이 노무현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노무현의 개혁이 느릿느릿 진행되었기에 성미 급한 국민들의 양에 차지 않았기 때문일 뿐인 것이다. 참여정부의 방향성이 옳다는 것은 30%의 수구꼴통을 제외하고는 국민들 대다수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를 육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들이 참여정부의 방향성 자체를 부정했다면 그깟 회담 한번 했다고 급작스럽게 지지율이 상승할 리가 있겠는가? 단지 국민들은 하나의 계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해찬은 이러한 변수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아니 전혀 살리지 못했다. 경선 중반 정동영이 앞서나가면서 시민광장과 서프에는 정동영의 비리를 조사해 그를 퇴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경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국민들은 박사모가 한나라당에 몰려가서 이명박을 퇴출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랑 이해찬 지지자들이 1등을 하고 있는 정동영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그리 다르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단지 지고 있는 후보의 딴지걸기 정도로 보지 않는 다는 말이다. 물론 정동영의 비리는 조사해야 하지만 그걸로 경선을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길 수도 없거니와 만약 1등을 쫓아내고 이긴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싸늘한 시선으로밖에 바라보지 않는다. 중요한 건 이해찬 자신이고 자신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후보에 나왔으며 본선에서 어떻게 이명박과 붙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난 이해찬이 좀 더 언론에 나와 남북정상회담 이슈를 공론화하기를 바랐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온전히 이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크게 알리길 바랐다. 하지만 이해찬은 언론에 전혀 등장하지 않았고 경선을 거부하면서 집안싸움에만 몰두 했다. 그것마저도 언론에는 손학규의 들러리처럼 등장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정도 득표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대단한 거다. 여론조사에서 바닥을 기고 있는 이해찬을 우리 노빠들의 노력으로 이만큼 대등한 수준으로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세가지 길
이제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경선은 패배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슬슬 고민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2002년도의 꿈에서 벗어나오는 것이다. 난 가끔 시민광장에서나 서프에서 근거 없는 낙관의 글들이 올라올 때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점쟁이가 어떻게 말했네.’ 또는 ‘유시민이나 이해찬이 이번에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 천운을 타고 났네.’ 하는 류의 글들, 그리고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판세분석이 담긴 글을 보면서 아직도 많은 노빠들이 2002년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구나하고 느꼈다. 2002년은 정말 드라마틱한 승부였다. 드라마틱하다는 것은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될 확률이 적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2002년도에 그랬다고 해서 2007년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 믿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당시에는 노무현이라고 하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 지금과 같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제 꿈에서 깨 현실을 직시할 때가 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이해찬과 유시민은 존재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당을 해체하고 다시 경선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너무 바보 같은 주장이니 거론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이해찬과 유시민이 없다면 방법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대통령 선거에 관심을 끄고 투표권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다. 이꼴 저꼴 보고 골치만 아프느니 차라리 속편한 방법이 되겠다. 물론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5년이라는 시간을 초인적인 의지로 인내해야겠지만 말이다. 두 번째는 대통합신당 경선에서 당선된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다. 경선이 끝난 후 당이 온전히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손학규든 정동영이든 누군가는 최다 득표를 받고 당선되게 될 것이다. 나보고 둘 중의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난 정동영을 고르겠다. 정동영이 미워서 손학규를 찍자는 말은 내가 보기엔 똥을 피하려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상황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손학규는 대북 관점만 개혁세력과 비슷할 뿐 한나라당과 똑 같은 사람이다. 차라리 정동영이 참여정부와 유사점이 많으면 많았지 말이다. 마지막 세 번째 선택은 바로 문국현 씨를 지지하는 것이다. (권영길을 지지하겠다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결국 사표가 된다는 점에서 첫 번째 선택과 같다고 본다.) 나는 문국현 씨에 대해 호감은 별로 없다. 처음에 그가 나올까 말까 고민하던 상황에서부터 난 ‘저 사람은 꽤나 몸조심 하는군’이라고 생각했다. 정치판에서 몸조심하는 사람들은 대개 실질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능력은 별로 없기 마련이다. 때문에 난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모로 냉정하게 따져보고 분석해 보면 한나라당의 이명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유일하게 문국현 혼자인 것 같다.
문국현의 장점
내 지난 글들을 읽어 보았다면 내가 단순한 문국현 빠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빠는 저리로 꺼져라 식의 댓글은 정중히 사절한다. 난 처음부터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서만 판단했고 나름대로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려 노력했다. 오히려 이해찬에게 기대했던 것이 냉철한 판단을 버리고 감정에 혹했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 대선도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명확한 대립구도가 생겼을 때라야만 승리할 수 있다. 민노당원들이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 권영길에게 투표하는 걸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상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인정하는 것처럼 정동영과 손학규로는 이러한 구도를 만들 수 없다. 정동영은 그가 저지른 부정 선거로 인해 이명박의 비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선거의 구도를 호남 대 비호남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선거에서 지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손학규는 더 심하다. 손학규가 되면 개혁 세력의 표는 철저히 분산된다. 손학규는 자신이 중도 보수 계층의 표를 얻어오기 때문에 한나라당 표를 잠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물론 손학규의 능력 여하에 따라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개혁세력의 표를 상당히 잃게 된다는 약점이 있다. 이들은 손학규나 이명박이나 똑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차하면 투표를 포기하거나 민노당에 투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문국현은 다르다. 그는 이명박, 손학규와 같이 경제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으면서 개혁세력에게도 충분히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이다. CEO출신이지만 사회책임 경영과, 시민사회 활동을 했다는 이력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박빠들도 문국현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던데 그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한 예라 할 수 있다. 난 이명박과 확연한 대립구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이해찬, 유시 그리고 문국현이라고 보았다. 이해찬과 유시민이 어려워진 지금 문국현밖에 대안은 없다.
내년 총선을 생각하면 더욱 더 문국현밖에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보자. 그것이 이해찬이든 다른 사람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년 총선 때 대통합 신당이 과연 과반수를 점할 수 있을까? 내가 단언 하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뭐 그럭저럭 선전한다고 하더라도 영남지역에서나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나라당은 승리할 것이고 대통령 임기 내내 참여정부에서 했던 것처럼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국현이 참신함과 광범위한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총선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될까? 선거 양상은 대통합신당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2004년 열린 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원동력이 무엇인가? 고리타분한 여당인 민주당에 비해서 열린 우리당이 참신한 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지역주의라는 판을 흔들 수 있었고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해찬과 유시민의 앞날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난 이번 대선에서 문국현 씨를 지지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이해찬과 유시민은 앞으로 어떠한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인가? 이번에도 세 가지의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이다. 이해찬과 유시민은 대통합신당으로의 합류와 실패라는 멍에를 썼다. 이 멍에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잘못된 판단으로 정치생명의 끝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독자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현재 친노라는 틀로 독자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앞으로 문국현이 신당을 창당을 하게 되면 개혁과 진보라는 타이틀을 친노에게서 뺏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친노라는 말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노라는 말은 한나라당과 같은 반 개혁세력, 그리고 정동영이나 손학규 같은 기회주의 세력이 판을 칠 때나 유효한 틀이다. 세력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친노로는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세 번째 방법은 문국현과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다. 내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은 조용히 자숙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살길은 이 길밖에 없는 듯하다. 이해찬은 늦었지만 유시민은 아직 능력을 펼쳐 보일 시간이 많다. 정체성 또한 문국현과 비슷한 만큼 새로운 당에서 장차 큰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움 그리고 희망
써 놓고 보니 꽤 긴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현실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에 쌓여 있다. 그토록 지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 세력들이 소멸하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바라만 봐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희망은 남아 있다고 본다. 우리는 노무현이라는 사람 자체를 지지했던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가 가진 정체성을 지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만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지금껏 해왔듯이 역사의 발전 방향에 따라 우리가 할 일을 해나가면 된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은 다시 살아 나 역사속에서 재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노무현을 다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를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난 역사와 대중을 믿으며 앞으로의 대선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결국 노무현의 정신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럼 이만 난 시민 광장을 떠난다. 읽느라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