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연내에 1달러당 800원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는 수출이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가 큰 만큼 환율하락(원화 가치 상승)으로 인해 수출기업들의 채산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높다.
이러한 최근의 원화가치 상승에 대해 조선일보는 2일 ‘원고(高) 위기? 제자리 찾고 있다’는 제목으로 “그 동안 면모를 일신한 한국 경제의 위상을 어느 정도 반영”하는 현상이라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보도했다.
최근의 원고 현상에 대해 “25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10년 연속 흑자를 보이는 경상수지, 원화의 높은 구매력 등을 토대로 원화의 적정환율을 1달러당 850~950원으로 보고 있다”는 재경부와 메릴린치,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을 토대로 “현재 시장 환율이 적정환율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는 않다”고 전한 것이다.
최근 환율하락은 한국의 높아진 경제력 반영
조선일보가 인용한 또다른 국내 전문가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 김재천 조사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 개선을 했기 때문에 과거와 똑같은 잣대로 지금의 원고 현상을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도 “경상수지가 10년 연속 흑자를 내고 있고, 경제성장률이나 물가도 안정돼 있기 때문에 최근의 원고 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원은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여전히 잘되고 있고, 내수기업과 수출기업 간 영업이익률도 큰 격차가 없어, 최근의 원고 현상에 대해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속되는 환율하락이라는 악재요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수출 실적은 증가세가 다소 주춤하긴 했으나 여전히 두자릿수 증가세를 지속하면서 올 10월 월간 단위로는 사상 최고치인 347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0월 무역수지 역시 22억달러를 기록하면서 55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이전 원화 강세는 ‘맞지 않는 옷’
조선일보는 현재와 비슷한 환율하락 현상이 나타났던 10년 전에 대해서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신문은 “꼭 10년 전,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 평균 환율이 951원이었고, 1996년에는 804원이었다”면서 당시 “원화 강세는 우리 실력에 걸맞지 않은 사치스러운 옷”이었다며 최근의 현상과 대비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적자(231억달러)를 기록했고, 외채도 급증해 1997년 순대외채권(채권에서 채무를 뺀 것)은 마이너스 680억달러에 달했다.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00%를 넘고, 영업이익으로 은행 이자도 못 내는 기업이 수두룩했다”며 당시의 악화된 경제지표를 보여준다.
조선일보는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국민소득 1만달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입’이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환율을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했다”며 그 대가로 외환위기를 치르며 환율이 “1달러당 1962원대까지 치솟았고, 기업들은 그 뒤 10년 동안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 경제현상에 대해 불과 닷새 만에 정반대 분석
환율문제에 관한 조선일보의 보도를 자세히 소개한 이유는 이 신문이 불과 4일 전인 10월29일자에서는 우리 정부의 환율정책에 대해 비난하며 전혀 다른 ‘정치적 해석’을 내보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신문에 실린 글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정반대 견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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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하락을 ‘정책실패’로 규정하며 참여정부가 ‘환율 곶감’을 빼먹었다고 비판한 10월28일자 조선일보 특파원 칼럼(오른쪽)과 정반대로 환율하락이 우리 경제의 달라진 체질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조선일보 11월2일자 경제섹션 프론트 기사(왼쪽) |
이날 칼럼에서 김기훈 조선일보 뉴욕특파원은 참여정부의 환율정책이 실패했으며 이 때문에 수출 중소기업들의 고통이 깊어졌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도 한때 외환시장 개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통화량증가와 금리인상 부담으로 손을 떼고 말았다. 정책실패로 가뜩이나 가라앉은 경기가 금리상승으로 더 악화될까 우려해서다”라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라는 “실적”을 경제성적표에 올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화절상을 허용했다”고 주장했다. 참여정부가 “국민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지렛대”로 ‘환율 곶감’을 빼먹었다는 비판이다.
원화가치가 올라간 것이 우리경제의 달라진 면모에 걸맞는 현상이라는 11월2일자 기사와는 달리 이날 칼럼은 “정부가 적절한 외환대책을 쓰지 못해 외환시장에서 일방적인 원화절상 심리가 형성됐다. 정책 실패로 수출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깊어졌다”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국민소득을 올릴 수 있는 최대의 지렛대는 환율”이라면서 다음 정부에 대한 걱정도 빼놓지 않았다. “참여정부처럼 대폭적인 원화절상을 허용했다가는 수출 중소기업들이 모두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라고 주장한 이 칼럼은 참여정부의 경제체질 강화노력은 아랑곳 않고 “참여정부가 방치하고 악화시킨 중소기업과 서민 문제를 경제체질 강화로 정면돌파해야 하는 힘든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표현했다.
경제 체력 반영한 환율을 정책 실패로 호도
지금의 환율이 ‘정책실패’라는 조선일보 특파원 칼럼의 주장과 현재의 환율이 ‘경제체력’을 반영한다는 조선일보 경제기사 가운데 어떤 것이 진실인가.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원화가치의 상승은 경상수지 흑자와 외환보유액 증가 등 우리 경제체질 강화의 결과다. 금리나 환율 등은 기본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며, 시장이 성숙될수록 환율에 개입하는 정부의 역할은 가능한 최소화되기 마련이다. 조선일보 칼럼은 마치 환율시장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원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것이 절대선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이 일방적으로 환율 덕분이라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기획예산처가 올 1월 내놓은 ‘주요국 1인당 GDP 2만 달러 달성요인 분석’이라는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GDP 증가에 대한 환율하락의 기여도가 일본, 이탈리아, 독일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일본은 1인당 GDP가 1984년 1만476달러에서 1988년 2만3972달러로 상승하는 기간 동안 환율하락률이 무려 46.0%였다. 이탈리아는 1986년 1만 달러를 달성한지 5년 만인 1991년에 2만152달러를 기록했으며 그 기간 환율하락률이 16.8%였다. 독일은 1979년 이후 11년 만인 1990년에 2만1513달러에 올라섰으며 그동안 환율하락률은 11.9%였다.
경제현상 놓고 정치적인 ‘장사’ 그만둬야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1만 달러를 달성했던 1995년의 환율(달러당 771원)과 올해(달러당 929원) 환율을 비교할 경우 역으로 환율이 20%나 올랐다. 이수원 기획처 재정정책기획관은 “1995년부터 올해까지의 1인당 연평균 경상GDP 성장률 7.2%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환율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2만 달러 달성 시기가 3년 정도 늦춰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 증가에서는 환율효과를 상쇄할 정도로 경제성장률의 기여도가 높다는 뜻이다.
따라서 조선일보 2일자 기사에서 “최근의 원고 현상이 체질 강화된 우리 경제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힌 여러 기관의 전문가들 견해가 모두 허언이 아니라면, 김 특파원의 10월29일자 칼럼은 오히려 ‘제자리를 잡아가는’ 환율을 명목으로 참여정부를 무조건 비난하려는 근거없는 ‘정치적 환율 장사’에 불과하다.
단일 사안을 놓고 하나의 언론사 안에서 똑같은 목소리만이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실체적 진실은 외면한 채, 환율이라는 경제적 현상을 가지고 정치적 이미지 덧씌우기를 한 인상이 너무나 깊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론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라면 최소한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이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주장을 내놓는 것은 낯뜨겁다.
물론 정책입안자나 경제전문가들은 미국 등 각국의 경기추세와 국제유가, 환율 등의 경제 지표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면서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화가치 상승에 대해서도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하거나 지나친 속도로 일어났을 때 수출과 경제전반이 받을 수 있는 타격을 최소화 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지면에서조차 불과 며칠 사이에 논리가 뒤집힌 조선일보 특파원 칼럼처럼 근거가 희박한 내용을 과장된 수사로 떠벌려 정부정책을 흔들고 여론을 호도하는 ‘시대착오적 정치 장사’의 행태는 우리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