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찾아낸 법칙에서 보듯이 사회 진보의 조건은 어울림과 평등이다. 현대문명은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암흑시대에 싹이 튼 이래 정치, 법적 평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예를 들면 노예제도의 철폐, 신분의 폐지, 세습적 특권의 일소, 자의적 정부 대신 의회 제도의 도입, 종교 문제에 있어서 개인적 판단의 권리 보장, 지위의 고하, 강약을 막론한 신체와 재산의 평등한 보장, 거주이전, 직업선택, 언론출판의 자유 확대 등이 있다.
현대문명의 역사는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된 역사였고, 개인, 정치, 종교적 자유의 투쟁과 승리의 역사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면 문명이 발전하고 이러한 경향이 압박받아 뒤로 밀리면 문명도 억제되었다는 사실을 보면 진보의 일반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부의 평등한 분배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부패한 민주정치는 부패한 독재정치보다(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겠지만) 국민성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부랑자, 극빈자 등 노동의 기회가 극히 제한된 계층 또는 구걸하지 않으면 훔치거나 굶어야 하는 계층이 선거권을 갖게 되면 파괴가 발생한다.
가난에 의해 고통받고 타락한 계층의 손에 정치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 옥수수밭에 풀어 놓는 것과 같으며 삼손의 눈을 빼고 국민생활이라는 기둥에 팔을 비끌어 매는 것과 같다.
공화정을 가장 야만적이고 잔인한 전제정으로 바꾸는 데는 헌법을 고치거나 보통선거제도를 포기할 필요가 없다. 씨저 이래 수세기 동안 로마 황제들은 원로원의 권위에 따라 통치권을 행사하는 척했지만 실제로 원로원은 황제에게 꼼짝도 못하는 기관이었다.
형식은 실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에 의한 정부는 자유라는 실질이 가장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형식이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보통선거에 의한 정부 및 이론상의 평등은 일정한 조건만 있으면 간단히 전제체제로 변할 수 있다.
이때 전제체제는 국민의 이름으로 그리고 국민의 힘에 의해 진전되며 이러한 힘의 원천이 일단 확보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특권을 못 누리는 계층에게는 설득이 통하지 않으며 또 이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에 있어 국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법이 없다. 이렇게 되면 홍수를 막을 수 있는 방파제도 없고 홍수를 피할 높은 언덕도 없는 상태가 된다.
권력의 승계가 세습이나 추첨(고대 공화국에는 추첨제가 있었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현명하고 정의로운 권력자가 더러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심이 타락함으로써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상태로 전락하는 예가 장구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부패한 민주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어진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이 나라는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
국민에 의한 정부가 최악의 전제정부로 변화하는 현상은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인데 이는 결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이 현상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눈 앞에서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
사람들은 투표권을 분별없이 행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이해시키기가 어려워졌으며 개혁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정치적인 견해차는 이제 근본 원칙의 차이가 아니게 되었으며 추상적인 사상은 힘을 잃고 말았다.
정당은 과두적 내지 독재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것이 모두 정치적 쇠퇴의 증거이다.
이 시대의 근본 흐름은 우리가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구시대의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봉건제도가 보편화되어 삼위일체의 삼위 중 두 가지 위가 영주와 봉건지주라고 생각할 정도의 시대도 있었는데 기술자 계층과 상인 계층의 발달로 인해 봉건제도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토지가 사유화된 현재의 사회조직속에서는 공업과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개별 노동자가 또 다시 주인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마치 로마제국이 붕괴될 무렵 자유민이 지주에게 예속되었던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에는 예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모든 산업에서 한 사람은 주인이 되고 나머지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 사람이 주인이고 나머지는 주인에게 봉사할 때 그 한 사람은 나머지를 통제하게 되며 투표와 같은 경우에조차 이러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철도, 일간신문, 전보 등을 지니고 있는 현대문명이 파괴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도 많지만 사회의 기초는 우리 눈 앞에서 서서히 와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문헌은, 우리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현재와 미래에도 미개상태에서 자꾸 멀어지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불어 넣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과거의 미개상태로 되돌아간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지적하기를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완성단계에 도달한 민주제도에 대한 일방적인 믿음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때 국가적 행복의 근원이라고 신뢰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생각있는 사람들도 민주주의의 위험을 이해하기 시작한 단계에는 와 있으나 아직 그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한다. 일반 국민은 부패의 증가에 익숙해져 있다.
특히 불길한 징조는, 사람들이 청렴한 공직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또 청렴한 공직자가 있다면 이는 자기의 기회를 이용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국민 자신이 부패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추세의 결과가 무엇이 될지를 분명히 알 것이다. 부패가 만성화되고, 공공심이 상실되고, 명예와 선행과 애국심의 전통이 약해지고, 법이 무시되고, 개혁이 가망없게 되면, 고통받는 대중 속에서 화산과 같은 힘이 생겨 어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하여 사회를 산산조각내고 만다.
이런 와중에서 강력하고 분별없는 자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맹목적인 대중적 욕구 또는 흉포한 대중적 열정을 대변하게 되며 이미 활력을 상실한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제쳐 놓게 된다. 이렇게 되면 칼은 펜보다 강해지고 야만적인 힘과 거친 광기가 교차하면서 문명은 혼수상태에 빠져 쇠퇴하고 만다.
(Progress and Poverty 中에서, Henry George, 1839년~18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