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주의를 던지고 미래로 나아가자!
져서 죽느니 죽어서 이기자!
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 최재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궁즉통 사즉생(窮卽通 死卽生)’이다. 절망을 떨치고 일어서는 희망은 불퇴전의 자세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3등이라는 현실을 절치부심하며 받아들이는 일. 하지만 궁극적으로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일, 당장 절실하다.
그렇다. 우리는 3등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확실히 진다. 우리 스스로 범민주개혁세력의 본류라고 규정했듯, 우리의 패배는 길게는 민주세력 50년 역사의 패배이며 짧게는 민주정부 10년의 패배를 의미한다. 우리는 예견된 패배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욕된 아픔을 감내할 각오를 시작해야 한다.
민주정부 10년을 세운 피와 땀을 잊고 있다
현실을 보자. 참담할 뿐이다. 역사적 책임을 다하려는 동지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한민국 민주주의史의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투신하려는 의인은 없다. 그저 보신이다. 그저 안주일 뿐이다.
애초 군부독재와 공작정치 속에서 우리 민주개혁 세력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맨손이었다. 오로지 지켜야 할 가치만이 존재했다. 민주와 공정한 시장경제와 사회적 연대와 남북화해가 그것이었다. ‘민주정부 10년’은 그저 온 것이 아니다. 이런 가치를 존중했던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있다.
우리의 모습을 보자. 비육지탄(髀肉之嘆)이다. 허벅지엔 살이 붙고 눈에는 빛나던 광채가 사라졌다. 민주세력을 기득권 세력으로 인식하는 시민들에게 변명할 말조차 소진됐다. 권한을 갖고도 책임지지 못했다. 얼마전까지도 오만과 독선은 이명박 후보의 것이 아닌 우리의 몫이었다.
패배주의에 빠져 고사(枯死)할 것인가
40 대 0. 우리는 시민의 손을 놓아버렸다. 내가 옳으니 나를 따르라며 앞서 달려 버렸다. 시민들의 신뢰를 보살피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줄곧 패배했고, 패배할 때마다 분열했다. 분열할 때마다 기회주의가 득세했고, 기회주의가 번져갈수록 무기력에 빠졌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 순서로 진행됐을지도 모른다.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지독한 패배주의’는 분열과 기회주의와 무기력증의 혼합물이다. 패배주의는 자존과 염치를 갉아먹는다. 그토록 패배를 당하고도 아직도 만연히 ‘한방’을 기대하는 ‘한탕주의’가 존재한다면 이는 또한 ‘패배주의’의 독한 부산물이다.
이제라도 패배주의의 미망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자. 이대로라면 향후 오 년간 아니면 더 오래도록 ‘수구 꼴통보수와 원시적 정글자본주의의 결합’이라는 끔찍한 세상에 살아야 한다.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회적 기제의 대부분은 그들의 편이다. 프로파간다에 의해, 권력에 의해, 범민주세력은 분열을 강요당하고 끝내는 정교한 공작 앞에서 고사(枯死)할 것이다. 극단적 보수일색의 획일주의, 시장만능주의, 성공지상주의, 남북냉전과 대결구도가 판을 칠 것이다.
시민들의 분노를 사회경제적 기본권 강화로 달래드리자
그렇다. 죽지 않기 위해 이겨야 한다.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지금이라도 시민들의 질타와 조소를 받아들이자. 시민들이 내뱉은 가래침을 부끄러워 말자. 가래침이 떨어지는 그곳, 냉소와 경멸이 꽂히는 그곳, 바로 그곳이 새롭게 우리가 일어서야 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지금 이중전선에 직면해 있다. ‘수구 꼴통보수와 원시적 정글자본주의의 결합’이라는 괴물과의 싸움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지상명령이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전선은 하나다. 수구 꼴통보수, 원시적 정글자본주의와 상대하는 데 매진하면 할수록 우리는 ‘우리의 구태’를 벗어던질 수 있다. 이슬비에 옷 젖듯, 젖어든 기득권과 이기주의, 어느새 빠져버린 구태의 함정, 새는 알에서 깨어나야 한다. 옳지 않은 세력과의 가차 없는 싸움, 창조적 파괴와 비판적 극복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루즈벨트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불안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주창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자유를 원한다. 절대적 빈곤층을 해결하고, 극단적 경쟁사회를 해소하며, 권력의 힘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선용하되, 사회를 정글로 만들지 않는 것. 바로 우리들, 전통적 민주세력과 합리적 진보세력만이 만들 수 있는 미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겨야만 한다. 아직은 우리만이 해낼 수 있는 소명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도 누구는 집과 밥과 일을 구하지 못해 죽어간다. 지난 54년간 계속된 전후체제를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 청산해야 한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핵 공포, 전쟁 공포,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살아야 하나. 일극지향의 문화, 승자독점의 사회를 끝내고 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를 열어 제쳐야 한다.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고 적정 절차가 뿌리내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승리는 우리의 소명이다
대선은 져도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누가 우리를 뒤돌아보기나 할까. 패배의 쓴잔을 어찌 그리도 이기적으로 해석할까? 대통령에 대한 견제심리로, 혹은 지역주의의 결과로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래서 지역구 관리나 하겠다고? 이건 비극이다. 나는 이런 가설을 믿지 않는다. 역사적 책임의식이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국회의원직 마저도 사유화하려는 이런 가정적 발상법을 결코 믿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소명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오로지 한 길밖에 없다. 이는 패배주의를 버리고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길이다. 져서 죽느니 죽어 이기자. 그리하여 승리의 기쁨을 온전히 시민께 돌려드리자. 우리가 아무리 무기력하고 못났어도 한나라당 보다는 낫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