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우리 삶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라는 단어가 사전에서처럼 현상의 표현에 머물러 “통치와 지배, 이에 대한 복종, 협력, 저항”이라는 식으로만 간단히 요약될 수 없듯이, 대립과 분쟁의 조정, 공동생활에의 통일적인 질서 유지 작용 등을 위한 규범의 제정 및 이의 통제를 위한 공권력의 부여 등을 포함하는 정치의 결과적 현상은 물론, 이념적으로나 이해 관계에 따라 형성된 대립 집단들이 경쟁을 통한 주장의 관철 및 복종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적 의미에서까지 생각해 보면 정치라는 단어만큼 많은 의미를 우리에게 주는 명사가 없을 듯 하다.
이렇게 인간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행하여져 온 정치를 학문으로 연구한 것도 이미 오랜 일이고, 현대의 정치학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그들 스스로 정치적 문제를 분석하는 훈련 및 통찰력을 부여함으로써 스스로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을 돕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로서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학의 지식을 이용함으로써 정치체계를 이해하고,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라는 것이다.
어제 뉴스에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합당 결의에 대하여 보도가 나왔다.
원래 하나였던 당이 열린우리당의 창당으로 분열되었던 것이었지만 헌정사상 최초의 탄핵 광풍으로 국회의원 구성원의 변동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로민주당이라는 지탄은 면하기 어렵다 하겠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민주당에의 배신 운운하는 차원에서 해석될 일이 아니라 여성 국회의원의 머리채를 잡아채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던 패거리 문화에 찌든 지역주의 세력과 새로운 민주 정당으로의 개혁을 바라던 세력간의 당내에서의 정치 행위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결과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2002년 대통령 선거의 산물로 우리 사회에 정착한 것이 하나 있다면 생활정치라는 말일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업을 유지하면서 정당의 당원으로 참여하는 생활정치는 사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생활정치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 필요도 없이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서 보면 일반인이 정치에 관여하는 일마저 터부 하는 의식이 깊기에 새로운 현상으로도 비쳐졌을 것이다.
이후 기간당원제의 폐지와 열린우리당의 소멸은 생활정치가 정치 일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입지를 완전히 막았다고도 해야 할 것이지만 현재 한나라당과 민노당 등에서는 제각각 이름은 달라도 당원이 당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을 비교해 보면 대통합민주신당이야말로 전 근대적인 정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정국에서 한나라당의 당원 또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 가기 싫은 생활정치인들은 현재 여러 가지 방향으로 그 에너지를 모으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새로운 당의 창당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거대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새로운 당을 생활정치인들이 주도한다고 한들 정치적 결과를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는 비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지난 5년 여의 생활정치가 우리 사회를 정치적으로 성숙시켰다고 하는 점에서 보면 실보다 득이 큰 일이 아닐까 한다.
또한 생활정치를 통하여 직업적인 정치인으로 탈바꿈한 사람들이 없지 않기에 또 다른 직업 정치인으로의 진입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정치에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생활정치가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적인 진단도 가능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참여정치연구회, 참여정치실천연대를 통하여 생활정치의 보다 집요한 노력을 경험한 바 있다.
이 것은 일반인의 생각을 정치권에 전하기 위하여 보다 강화된 결사체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본 정신이 위협받고 또한 주장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도 비효율적인 측면은 물론 세력의 미약함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오늘날 돌이켜보면 결국에는 스스로 해산하는 아픔을 감내해야만 했던 과거의 산물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 또 새로운 모임 등에 대하여 생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논의들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치결사체란 정당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이념적으로 또는 방법론적으로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였을진대 정당과 모인 동기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이를 일컬어 결사체라 함은 보다 협소한 이념적 지표와 방법론적 합의에 의한 모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정치결사체 구성원들만으로 당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면 모든 구성원은 어떤 당이든 간에 정당의 당원이어야 하고 이들의 이념과 방법론은 정당 내에서만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기에 가능하면 정치 권력을 갖고 있는 정당 내에서 이들의 활동이 이루어져야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할 것이다.
친목회가 아니고 정치결사체가 아니라면 어떤 모임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반복적인 충원을 통한 정치결사체의 확장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정략적인 목적으로 이용되고 또 이념적 분화 또는 곁가지 같은 작은 일들의 반복으로 결사체는 분열되었으며 이렇게 분열된 대오는 결국 기존 정치권에 국민의 의사를 강력하게 전달하는데 실패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에 이제 이런 모임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사욕에 눈먼 기존의 일부 정치 세력에게는 생활정치인의 집단이란 밥그릇을 위협하는 적대적 존재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를 억제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세력의 확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논의를 하는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정당의 개혁을 통한 민주주의의 완성이며 이렇게 보다 완성된 민주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평화를 정착하는데 기여하고 사회의 불합리와 부패를 개혁하는 등의 현실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사회 구성원의 의식구조를 개혁하여 퇴보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정착을 실현하고자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의 장이란 굉장히 광범위한 사회 현상의 용광로라 할 수 있다.
만약 새로운 가치 중심의 정치결사체가 구성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 집단은 바로 국민의 요구 사항을 직면하게 되고 이를 효율적으로 정치의 장에 전달하는 의무를 지게 될 것이다.
그나마 가치 지향의 결사체는 모든 정치 사안에 대해서 이념적 판단에 따른 정치적 의사를 표현함으로써 그 최소한의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힘이 미약한 정치결사체의 정치적 목표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가진 국민은 이 결사체를 대안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은 일면 무책임한 존재이기에 정치결사체에 대하여 요구할 권리는 있으나 책임질 의무는 없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치결사체는 그 존재이유마저도 불분명할 것이다. 수많은 국민의 요구 중에서 실현해 낼 수 있는 매우 협소한 목표만을 지향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렇다면 이는 이익단체와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정치결사체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광범위한 정치의 장에서 결사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가치 중심의 조직이어야 하고 대중 지지기반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인적 토대를 정치권에 구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당원이 주인 되는 진정한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 패배의 원인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파고 들어가 보면 결국 대중 지지기반이 허약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일 것이다.
수많은 종이당원과 유령당원이 당원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었다면, 이를 막아낼 진성당원의 수가 역부족인 상황에 처했을 때 지지기반에서의 적극적 참여로 막아줄 수도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랜 독재와 냉전 상황 속에서 겪은 정당에의 불신과 지역 토호들의 선거 이용을 위한 종이 당원을 경험해서인지 우리 국민의 당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상황에서 기간당원제는 충분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했고 이는 결국 지지기반이 당원으로 참여하는 걸림돌로 작용함으로써 당내 투쟁에서 동원된 당원들과의 숫자 싸움에서 진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결사체는 확고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가진 정당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정치결사체여야 할 것이다.
모든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은 과연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대로 된 주권의 행사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에의 접근과 이를 통한 각 개인의 판단력을 그 근거로 행사되어야 할 것이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정보에 접근하고 있는가, 또한 이를 위하여 언론과 기득권 세력이 미래에 있어서도 이 것을 확보해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암울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결국 민주화된 정당, 그 것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 정당의 민주화만이 이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국민 노릇하기도 힘든 세상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제 우리 국민은 언론과 기득권층에 의하여만 듣고 판단하는 단계에서 정당에 참여하고 정당의 운영에 관여함으로써 정보의 취득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크기가 작든 크든 정치결사체는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인 결과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고 들면 조직의 구성원의 수, 구성원의 역량, 지향점에 따라 일할 수 있는 방향과 현실적인 능력 발휘의 방법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런 정치결사체는 대중적 지지기반 확보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난 5년 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나름대로 인적 구성에 있어 다방면에 연결할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정당 내부 또는 개별 정치인들에 대하여도 접촉할 수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기성 정치인이 생활정치의 확대와 당내 민주주의 완성에 대한 거부감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정치인들은 물론, 최고위층의 정치인 중에서도 생각해 보면 실로 많은 수의 정치인들이 결국 우리 사회의 변화를 예상하고 있고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려 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국 당내 민주주의가 훼손되면 정상적으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는 굴욕적인 정치 행보만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보에 봉사해야 하고 지역주의에 기생하지 않고는 자신의 정치적 성장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왜 모르겠는가?
능력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할 기회가 당내 민주주의 완성에 있다는 것은 사실 상식 수준에 속하는 판단일 것이다.
현실 속에서 생활정치인의 도움을 바라고 도움을 받은 정치인들도 있지만 이들이 이에 만족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에서 선거란 정치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계산적이기 때문에 들인 노력에 비한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표를 못 가져오는 생활정치? 액세서리에 불과한 팬클럽 수준의 생활정치? 이 것은 때로 비효율로 인식될 수 있다 할 것이다. 자원봉사 조금 지원받고 시간들이고 식사하고 고개 숙여야 하는 것이 어떤 수준을 넘어가면 누가 이를 반가워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문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의 생활 정치 문화는 십시일반 자급자족의 문화가 정착되어 돈과 결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큰 부작용을 아직까지는 주지 않았지만 새로운 인적 자원의 투여를 통한 물갈이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이 또한 기대가 난망 해질 전망이다.
생활 정치 속에서 정치 의식이 고도화된 인적 자원은 희망에 따라 기성 정치권으로 진입하거나 제반 다른 분야로 전문화되어야 하고 이를 대체한 새로운 생활 정치 참여자가 국민 속에서 자라나 계속적으로 충원되고 확대되어야 이런 문화는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문인은 바로 돈과 직결된다고 할 것이다.
생활 정치의 옷을 입고 있지만 정치권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각각의 개인이 점차 표를 움직일 수 있고, 점차 시간의 투자도 많아진다면, 또한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능력과 노하우로 정치적 행위에 기여할 단계에 진입했음에도 이를 봉사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부담은 기성 정치인에게도 이제 경쟁의 상대로 생각해야 할 정도로 변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도 정치인을 돕던 자원 봉사자가 정치적 동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아 오지 않았던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이렇게 성장하는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도태되고 변절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기에 이 자리를 메워줄 새로운 참여는 보다 절실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이제 절실한 과제는 우리가 지난 5년간 해온 일을 메워줄 국민의 참여를 만들어내는 일일 것이다.
정당과 정치가 주는 혐오감을 일신하고 이 혐오감을 스스로 참여하여 해소할 수 있음을 국민에게 알리고, 쉽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통로의 역할은 누가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아이는 자라나서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을 다니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 참여는 과연 이런 절차를 밟고 있는가 고찰해 보면 우리 정치의 난맥상의 원인을 진단해 볼 수 있다.
평생 정치와는 담쌓고 살았던 사람이 어느 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참여하는 계기와 통로가 어떤가 생각해 보자. 정치학 공부했다고 현실 정치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듯이 정치의 장이 사회 모든 분야의 용광로임을 감안해 보면 각계 각층의 참여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 정치권은 이를 어떻게 수혈해 왔는가?
각자의 생활 터전에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가정을 돌보는 가운데 틈틈이 당원으로서 정치적 수업을 받으면서 개인의 정치적 판단력을 확실히 한 후에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정파적 이해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참여하는 절차의 합리성이 결여된 우리 정치권은 병든 정치권이다.
이제 우리가 나서 정치 참여에의 절차적 첫 단추를 꿰어 주어야 할 때이다.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만들고 이를 통하여 쉽고 재미있게 우리 정치의 현실을 이해시키고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즐거운 경험인지에 대해서 맛보기를 보여주는 작은 실천이 우리 정치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접근 초기에 올바른 경험을 통하여 성장한 수많은 국민이 대중적 지지기반이 되고, 결사체의 일원이 되고, 나아가 정당의 당원, 정치인이 되게 하자. 이게 바로 우리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이끌게 할 큰 힘이 될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와 같은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조직.
대중 지향 의식으로 매체를 확보하고 여론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조직.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자립하여 운영할 능력이 있는 조직.
이 태어나 다시 투쟁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시민 속으로 운동해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글을 마친다.
이 아름다운 조직이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