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의 공습, 벼랑 끝의 노동자들 글
가장 지독한 자본주의
투기자본들이 맘껏 노동자들을 유린하고 착취할 수 있는 것은 물론 IMF 이후 뿌리내리고 있는 주주자본주의 모델 때문이다. 흔히 ‘영미(英美)식 모델’이라고도 하는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80년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에 의해 본격적으로 확산된,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자본의 새로운 축적양식을 이르는 말이다. 새로운 모델이 초기자본주의가 표방했던 자유방임주의를 그 운동적 뿌리로 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라 불리지만, 자본운동의 양식을 표현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런 점에서 금융자본, 특히 증권을 중심으로 한 자본운동의 새로운 양식을 드러내는 주주자본주의라는 표현이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이 개념은 증권,금융 소유주, 즉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최고의 목표로 삼는 기업 및 경제운영방식을 말한다. 기업 경영의 목표는 주주들에게 최대의 배당을 안겨주는 것이며, 경영진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물건을 어떻게 생산하고 팔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배당을 안겨줄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더 많은 시세차익, 보다 적은 세금, 보다 적은 (임금)비용의 지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부문의 과감한 축소 또는 폐지를 통해 이루어진다. 미국에서는 가장 많은 노동자를 해고시킨 경영자가 최고의 스톡옵션을 받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고 있을 정도로 기업 내부에 훌륭한 노동력과 인적 자산 등을 보유하는 것보다 이들을 정리해고하여 보다 많은 배당금을 안겨주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주주자본주의적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기업의 중장기적 안정성과 성장전략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 기업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이나 그에 목매고 있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근로조건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나아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이라면 국가경제나 공공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주주의 이익은 종종 국가경제의 발전이나 사회적 가치와 대립되는 경우가 많아 중장기적으로 국가경제의 토대를 허물어뜨리고 사회 전체를 투기와 탐욕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수탈하고 착취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그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과의 일정한 타협이 필요하다. 생산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주자본주의는 단기차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기업의 장기적 전망에는 관심이 없다. 한시라도 빨리 시세차익을 극대화해서 다른 기업(먹잇감)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소 몇 년을 내다보는 중장기적 투자는 미련한 짓이다. 당연히 그 기업의 안정적 성장에 기본이 되는 노동력도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비용일 뿐이다. 과감하게 정리해고하거나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비용-임금 및 각종 복지비용 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최고의 미덕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주주자본주의는 역사상 어떤 자본주의보다 노동자에 대해 적대적이고 공격적이다.
먹튀식 투기자본의 천국, 피멍드는 노동자
외자들이 대부분 M&A나 주식투자 형태로 국내에 들어온 투기자본인 것이다. IMF 이후 수많은 해외매각 사업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은 매각을 둘러싼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기업을 인수한 이들은 대부분 인수합병 전문회사, 펀드를 중심으로 한 금융기관으로 착실한 기업운영으로 인한 이익환수보다는 단기간에 되파는 방법으로 이익을 노린다. 따라서 인수합병과 이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병행되며 결국 노동자의 희생으로 연결된다. (적대적) M&A에 성공한 기업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 정리해고를 단행하면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주식시장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1967년 외국환전문 국책은행으로 출범한 외환은행은 89년 민영화이후 개인과 기업금융 분야에도 진출하여 국내 324개, 해외 18개 지점을 두고 10여개의 현지법인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글로벌 은행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유동성위기를 겪게 된 외환은행을 처음 인수한 곳은 독일 코메르츠뱅크였다. 98년, 코메르츠뱅크가 외환은행 인수 후 가장 먼저 한 ‘사업’이 수익성이 낮은 지방점포 150여곳을 폐쇄하고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었다. 이후 명예퇴직과 정리해고가 연례행사처럼 이어졌고, 98년 2,500여명을 포함해 2004년까지 3,500여명의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야했다. 이는 론스타 역시 마찬가지이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얼마 안 돼 1,000여명의 노동자들에게 해고통보를 하고, 있지도 않은 부서를 만들어 전보발령을 내는 등 탄압을 가하면서 몰아붙여 왔다. 론스타의 무자비한 탄압과 해고조치는 혀를 내두를 지경으로, 외환카드의 경우 휴대폰으로 해고통보를 하는 등 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240여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시켰다. 론스타의 이와 같은 행태는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마치 투자의 방정식과도 같은 것이어서, 론스타 가는 곳에 정리해고가 반드시 따라다니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일단 인수합병이 마무리되고 구조조정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온 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이윤이 작아질 경우 언제든지 값이 싼 나라를 찾아 이동하는 이들 초국적 (투기)자본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일방적인 자본철수의 위협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에게 자본철수는 ‘자본회수’에 불과하지만 노동자에게는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본철수의 위협 앞에 전전긍긍할 수 밖에 없으며, 많은 외자 기업들이 이를 악용하여 근로조건을 저하시키거나 노조를 탄압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IMF 이후 수많은 외자 기업에서 합의각서 파기, 탈퇴 강요, 노조 해산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가 발생했으며 자본철수 위협 앞에 수많은 노조가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들 사업장은 대부분 인수과정에 노조가 참여하여 고용승계 및 보장, 노조 및 단협 승계 등을 담은 각종 이름의 협약을 체결하지만 인수작업이 끝나고 나면 이 협약서는 한낱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주주자본주의적 기업 경영의 최고 목표는 ‘주주이익의 극대화’이다. 고배당 등 보다 높은 수익을 요구하는 주주들의 압력은 기업 내 유보자금을 최소화하고 수익성이 낮은 부문의 폐지, 각종 비용의 절감으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단기차익 극대화 노력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이해와 대립하게 된다.
또 하나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주주들은 기업 내 유보자금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자신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 역시 노동자들의 이해와 연관되어 있다. 한 기업이 생산을 하여 물건을 판매하게 되면 자금이 유입되어 이 자금의 어느 정도를 주주에게 지급하고 어느 정도를 다시 생산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데, 재투자를 위한 자금을 유보 자금이라 한다.
기업 내 유보자금을 최소화하여 주주 배당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기업의 재투자를 축소하거나 투자 확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고용없는 성장’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되고 있는 지금 고용기여율이 낮은 기업의 대부분이 바로 이러한 문제로 투자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주자본주의는 당장의 노동자 이해만이 아니라 미래의 이해마저도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투기자본 앞에 무기력한 노동운동
이처럼 투기자본의 공세에 기업이 무너지고 노동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 진영의 대응은 수세적이고 사후약방문 격으로 대처하면서 커다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대부분의 매각 사업장들이 투기자본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쉽게 그들에게 맡겨 버렸고 이로 인한 고통에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세계적 기준이라는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수많은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양산되었고, 상대적으로 안정적 고용조건을 확보하고 있던 대기업과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의 경우 그 ‘상대적’ 안정성으로 인해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 앞에 노출되기 시작한다. ‘정당한’ 투쟁마저도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기주의적 투쟁으로 매도되기 일쑤였고, 노동운동 역시 그 이데올로기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초국적 자본의 공세로 인한 경제파탄, 기업 부도 등으로 인한 실업 및 비정규 노동자의 급속한 확산, 기업별 노조체제와 경제투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조건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의 공세는 일차적으로 금융노동자, 공공부문 노동자를 타겟으로 삼았다. 금융과 공공부문의 사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상대적 안정성이 기득권으로 매도되었고, 이들 부문의 구조조정은 경제 회생의 기반인 것처럼 호도되었다. 이러한 국민적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금융부문이 통째로 외국자본에 넘어가고, KT 등 국가기간산업의 사유화와 공공부문의 해체로 귀결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지만, 국민적 동의를 확보하지 못한 조건에서 고립적 투쟁을 넘어서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