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에 눈을 떴다. 숙취를 깨우려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오늘은 12월 19일.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벗어 놓은 옷을 그대로 걸쳐 입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본 집사람이 물었다.
"투표 안해?"
"나 오늘도 출근해야 돼."
동문서답으로 갈음하고 현관을 나왔다.
아직 덜마른 머리카락인지라 찬공기를 맡으니 머리가 더 맑아졌다.
그러나 속은 쓰리다.
행단보도 건너 초등학교로 가는 길 옆에 우리시대의 자화상 12명이 웃고 있었다.
투표소에서는 마주치는 눈빛이 없었다. 서로간에 번호만 확인할 뿐이다.
기표번호와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1번에서 12번까지 찍어야 할 번호.
들어왔던 곳으로 다시 나갈 때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무의미한 행위를 한 것 같은데 그 결과를 감수하려니 다시 속이 쓰리다.
강변역 입구에서 뜨거운 오뎅 국물로 속을 풀었다.
뜨거운 국물이 위 속을 감도니 이제서야 깨어난듯 꿈틀거린다.
그러곤 토스트 하나를 주문해 빈 속을 채웠다.
집어 든 무가지를 전철 한켠에 기대어 읽었다.
더 빨리 빈자리가 난 것 외에는 일상에서와 다를 바 없는 12월 19일이다.
그러나 오늘은 역사가 되어 기록될 것이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는 위대한 시인의 노래는 귓전에서 감돌지만 어째 내가 읊기에는 웬지 어색하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시민광장을 열었다.
어제 저녁부터 밤 새도록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아무래도 속 쓰린 밤을 보낸 분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글 속에는 저마다 선거와 투표에 대한 소회를 담았다.
까칠한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읽자니 다시 속이 쓰리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지.
사랑해야 하기에 슬픔과 노여움을 속으로 삼켜야 겠다.
그런데 12월 19일,
오늘이 지나면 쓰린 속이 괜찮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