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유태계 독일인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n, 1900~1980)이 미국으로 망명한 후 쓴 책으로, 1941년에 발간되었다. 이 책은 특히 나치즘이 대두하게 된 원인을 사회 심리학(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의식이나 행동을 연구 대상으로 하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주목을 받았다.
프롬은 자유를 소극적 자유(~로부터의 자유, free from)와 적극적 자유(~을 향한 자유, free to), 두 종류로 나누었다. 소극적 자유는 어떤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찍이 중세 이후 서구 사회에서 개인이 획득한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이런 소극적 자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인간은 소극적 자유를 얻음으로써 고독과 무력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런 모든 것을 극복하고 적극적 자유를 획득할 때에야 비로소 참된 의미의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적극적 자유는 소극적 자유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자유로, 개인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유대 관계를 찾아낼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자유이다. 적극적 자유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곧 참된 자아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 근대로 들어오면서 인간은 자연의 속박,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소극적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 개인에게 고독과 불안의 공포를 가져다주었다. "인간이 왜 고독을 두려워하는가"에 대해 프롬은 "인간은 본래 남과 협력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 이며, 또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데 있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모든 경제 활동의 목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었다. 자본가건 노동자건 간에 인간은 모두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현대에 와서 인간 관계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 "기계적" 또는 "소외적" 관계가 되면서 사람들은 한층 더한 고독과 무력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무서운 고독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오로지 모든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하나로 뭉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새로운 유대감을 키워 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자유를 포기하고 어떤 강한 힘에 종속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려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독과 무력감에 떠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며, 또 다른 길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경우, 즉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나아갈 수 없는 경우에 인간은 참을 수 없는 고독과 무력감의 상태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 한다.
이와 같은 도피는 대체로 권위주의적 성격(지배-복종의 관계를 맺으려는 성격)과 자동 기계화의 측면으로 나타난다. 권위주의적 성격의 경우, 독일인들이 히틀러로 대표되는 나치즘에 복종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경우 1차적 속박에서 벗어난 개인이 고독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2차적 속박을 구하는 것이다.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권위에 복종하여 그 희생이 되는 데에서 기쁨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 즉 유태인들을 멸시하고 학대하며 욕구 불만과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심리가 여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동 기계화의 상태로 나아갈 경우는 자아를 상실한 개인이 그 상실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의 기대에 따라 자동 인형(주체적 판단 없이 유행이나 광고에 따라 수동적으로 소비 생활을 하는 대중들의 삶을 비유한 말이다.)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어 행동함으로써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거기서 안정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안정감을 잃지 않으려 더욱더 남의 기대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독일 나치즘은 물론이고, 미국 같은 민주주의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투표를 할 때만 주권을 가진 존재로 대접받고, 선거가 끝나면 자신이 뽑은 그 권위 체제에 복종해서 살아가는 민주주의 체제 역시 자동 인형화를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러나 프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적극적 자유를 실현할 방법도 제시하였다. 즉 인간이 자발적으로 사회 과정에 참여하여 개인의 자유화 개성화가 억압받지 않는 완전한 민주 사회를 이룰 경우, 적극적 자유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먼저 사회 기구와 제도의 개혁을 통해 사회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독서평설 에서 ---
아마도 1987년 대학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읽었던 책인것 같네여.^^
중학교때의 엄격하신 부모님의 영향으로 갑갑함을 미친듯이 싫어했던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혼자서 자취생활을 하게되자 무의식적으로 중학교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더라구요. 자유를 주면 불안해하고 속박하면 자유를 그리워하는 속성을 가진 게 인간인지 명쾌한 해답을 얻고 싶어서 읽어 봤던것 같습니다.
2007년 12월, 대한민국의 선택이 아마도 "적극적 자유"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꿈꾸는 구성원들의 집단행동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완전한 민주사회를 위해서 사회 개혁에 대한 열정과 참여를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 될때까지 진보적자유주의자들의 꿈을 멈출 수 없기 떄문입니다.
2008년 우리 시민광장이 자유로부터 도피를 꿈꾸는 이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찾아주는 "유토피아"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