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이념적 스펙트럼이다.
타인의 눈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규정한 것이다.
이념적 스펙트럼을 본인 스스로 규명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일관되게 행동 수 있는 실천력이 담보되어져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나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묻는다면 나는 결코 자신이 없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것들의 구체적 실천 방안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해서도 아니다. 단지, 그 이념적 스펙트럼대로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삶 전체를 지배하는 사상이며 가치이다. 때문에 한 개인에 대한 전체적인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사회를 작동하는 다양한 분야들속에서 다양한 가치판단이 요구되고 이러한 선택의 과정에서 개인을 규명할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진보자유주의적인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주지만 여타 다른 분야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흔하게 존재한다. 경제, 문화, 사회, 종교, 민족, 정치, 인권, 성, 장애 등등, 인류가 만든 모든 문명들 속에서 나타나는 개인의 특성을 포괄적으로 판단함으로써 비로서 한 개인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발칙하지만 나 역시 유시민처럼 진보자유주의자이기를 꿈꾸고 살아간다.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공화국 국민으로써 나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진보자유주의자 정도로 인식되어진다면 나에게는 크나큰 영광이 아닐수 없다. 이것은 진보자유주의자라는 이념이 가치적으로 옳다기 보다는 그냥 내가 그것을 추구하면서 살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 즉, 내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대로 계획하고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그것을 규명하기에는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실천력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유시민이 부러운 또 하나의 이유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란 "과거의 그릇된 관행이나 제도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쳐나가는 태도"이다. 이것을 일관되게 실천할 수 있을지 이것이 문제로다. 또한 자유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타인의 견해라도 그 견해를 발표할 기회만은 옹호하는 것"이다. 이 또한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침 없이 일관되게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