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깨지기전 제가 썼던 글인데 다시 읽어보고 회한도 되고 느낌이 새로와서 다시 올려 봅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과 모세의 기적
출애굽기에는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지 모세를 통해 세밀하고 박진감 있게 묘사되어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에서 믿음의 아버지로 불리운다.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구원에 대한 그 약속이 있기 600여 년 전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횃불로 아래와 같이 언약 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장치할 것이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에 그 같은 약속을 하셨을까?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100세에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 낳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고 마침내 아들을 낳자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아브라함을 통해 그가 얼마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지를 알고자 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의 집에서 3일길. 번제라는 것은 모든 살을 각(포)을 떠서 나무에 올리고 불로 태우는 것이니 아브라함은 이삭을 그렇게 죽여서 각을 떠야했다. 3일 길을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아브라함은 믿었다. 설령 내가 이삭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내 후사가 된다고 했으니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살려주실 것이다. 그래서 그 일을 감행하려고 나무를 벌려놓고 이삭을 결박하고 죽이려는 순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급히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고 멈추게 한 후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하시고 풀숲에 있는 수양을 대신 드리라고 하셨고. 그에게 번성케 되는 복을 주시고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구약은 메시아의 초림에 대한 하나님에 약속이 제사장과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지며 그것이 이스라엘의 역사가 된다. 그약속의 징표, 모형을 통하여 실제를 증명하고 길을 찾기전 까지는 지도가 필요하듯 그렇게 구약은 그 약속을 곳곳에서 예언하고 예수님의 초림을 예비하는 예언서인 것이다. 출애굽기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탈출하는 액소더스이며, 자유의 책이다.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얽어매고 있는 악한세력과 강력한 속박을 깨뜨리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과 자유를 주신다. 하지만 자유는 대가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아주 비싼 구속의 핏값을 치르게 하셨다. 출애굽 직전에 죽임을 당한 유월절 어린양은 장차오실 메시아 예수를 상징한다.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놓으면 그 집안의 남자아이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모두 보장 해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그 영광의 탈출을 이끄는 리더였다. 나일강에 던져지고 파라오의 공주에게 다시 건지고 이집트의 왕자로 마흔에 가장 높은 학문과 지혜를 깨치고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마흔해 순례자의 길과 광야의 길을 익혔던 바로 그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자기백성을 이끌었다.
"가라, 가서 백성을 구하라"호렙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여호와는 모세에게 명했다. 하나님 능력의 지팡이를 짚고저 강대한 파라오를 굴복시키고 4백년 노예의 굴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고~
장엄한 영광의 탈출을 가로막은 홍해를 둘로 나누고 광야를 가로질러 시내 산에 이르러 비로소 자유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지어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이른바 모세의 기적을 통한 하나님의 언약이 그 백성에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출애굽에 성공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미래가 진정 자유에서 벗어난 행복함 그 자체였을까? 그들에게는 그자유의 대가로 끊임없는 두려움과 고난과 역경이 계속되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상황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과 모세를 그때마다 원망했다.
홍해를 건너기 전에 애굽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해서 애굽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원망하였고
애굽에서 나온 후 신광야, 가데스에서 만나만 먹다가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떡을 생각하고 그때가 재미있다고 하면서 그들을 여호와께서 주리게 하신다고 원망하였고,
가나안땅 정탐을 갔던 12 명중 10명이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커서 능히 그 백성을 치지 못 할 거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우리가 갈 곳이 어디냐고 원망하였고
신광야를 떠나 르비딤에서 장막을 쳤을 때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게 하냐면서 파종할 곳도,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면서 원망하였고
에돔땅을 우회 하려다가 길로 인해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던 때 물도 없고, 우리마음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면서 원망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가르셔서 걸어 건너게 하시고 애굽사람들을 물로 쓸어버리셔서 구원 하셨고,
메추라기 고기를 물릴 때까지 먹게 하시고,
가나안땅을 주실 거라고 믿었던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원망했던 20세 이상의 계수된 사람들이 다 광야에서 죽을 때까지 40년간 광야를 헤매게 하셨고,
반석을 쳐서 물을 주시고
불뱀에게 물리고 놋뱀을 본 자만이 살아나게 하셨다.
불평한 원인을 성경에서는 탐욕과 상황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적을 보고도 여호와를 시험하여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하여서 여호와를 멸시해서 거역했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한 여호와를 믿지 못하고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한 언약을 믿지못하고 불순종한 것이다. 바로 밑에서 고통과 신음과 압제로 인해 그들이 울부짖었던 때를 잊고 그들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의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그들은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광야에서 다 죽고 여호수와와 갈렙만 그 땅을 밟았다.
열린우리당을 통해 구태정치에 탈출에 성공한 대통합신당은 이미 가나안 땅을 밟을 능력을 상실했다.
통합신당 내의 쇄신이 처음에는 친노배제 노무현 색깔빼기로 진행되더니 당 안팎에서 강력한 도전을 받자 슬며시 참여정부내 핵심인사 책임론으로 번졌다. 그리고 모세의 지팡이를 통한 장엄한 홍해의 갈라짐의 기적을 보고 다시 길이 열릴것이라고 착각하여 손학규를 대표로 뽑고 시퍼런 홍해 앞바다로 뛰어드는 생쇼를 하였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통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통을 참기 어려워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원망의 수준을 넘어 아예 홍해를 가로질러 거꾸로 되돌려 버린것이다.
반독재 투쟁을 외치며 장렬히 죽어간 민주화의 영령들의 피값과 민주정부 수립을 염원했던 5.18광주항쟁 열사들의 피값, 그리고 6.10항쟁에서 쟁취한 직선제 개현을 쟁취하기 까지 무수하게 흘렸던 수많은 민중들의 피값을 생각한다면 통합 신당의원들은 분명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를 흔들었던 동교동계, 후단협 당시 민주당내 당권파들은 민주주의 정신을 이어받은 개혁세력이 아니다. 그들은 짝퉁일 뿐이다. 민주주의 기본을 짓밟고 수많은 민주화 영령들의 고귀한 정신을 짓밟은 가짜 일 뿐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상생을 부르짖으며 한나라당과 배꼽을 맞추고 세력없는 참여정부 계승세력에 대한 끊임없는 모함과 증오를 일삼았던 정동영계, 그리고 무능의 대명서 김근태의 민주화 운동파들은 열린우리당을 깨고 다시 지역주의 부활을 외친 배신자 들이다
개혁세력의 살길은 선명한 진보정당을 창당하는 길만이 유일한 것이다.
비민주적인 정당구조를 개혁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수준 높은 정책의 부재와 민의를 왜곡하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정치개혁, 누구나가 평등하게 경쟁하고 투명하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선진경제, 그리고 민족의 염원인 남북화해를 통한 평화번영의 시대를 여는 것이 새로운 진보정당 에게 주어진 시대와 국민의 명령이다. 그 백년정당의 꿈을 이룰 때까지 뒤돌아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앞만 보고 오직 국민만을 믿는 것이 이죽음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의 꿈을 위해서 중지를 모으고 힘차게 다시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