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 1편
대선 결과 분석부터 제대로 해보자
새정부 출범이 얼마남지 않았다. 동시에 노무현 대통령 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 한번으로 정치는 끝났는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이 시작됐다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준비하여 미래의 추동력을 확보할 것인가? 그 해답은 지난 역대 대선 결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하나의 글에 담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아서 시리즈로 싣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편으로 대선결과 분석편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 통계
먼저 역대 대선결과 통계부터 보자.
● 선거인 수 (괄호는 투표자 수 및 투표율)
2007년 17대 37,653,518 (23,732,854 - 63.0%)
2002년 16대 34,991,529 (24,784,963 - 70.8%)
1997년 15대 32,290,416 (26,042,633 - 80.7%)
1992년 14대 29,422,658 (24,095,170 - 81.9%)
1987년 13대 25,873,624 (23,066,419 - 89.2%)
먼저 선거인 숫자를 보면 87년을 기준으로 20년간 1200만명 가까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투표율은 계속 하락을 거듭해 2007년 투표자 숫자와 87년 투표자 숫자가 비슷하다.
선진국일수록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과연 그렇게만 해석할 수 있을까? 오히려 ‘정치무관심층’이 증가한 데 대해 그 이유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이 부분은 뒤에 설명이 나오는 관계로 여기서 따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흐르는대로 글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각 후보자의 득표수와 득표율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오늘 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통계를 유심히 머리에 담아놓고 글을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역대 대통령 후보자들의 득표수와 득표율이다. 밑줄친 부분은 당선자를 표시한 것이다.
● 역대 대선 후보의 득표수와 득표율
<13대>
김대중 6,113,375 (26.5%)
노태우 8,282,738 (36.6%)
김영삼 6,337,581 (28.0%)
김종필 1,823,067 (7.9%)
<14대>
김대중 8,041,284 (33.8%)
김영삼 9,977,332 (42.0%)
정주영 3,880,067 (16.1%)
박찬종 1,516,047 (6.3%)
백기완 238,648 (0.9%)
<15대>
김대중 10,326,275 (40.3%)
이회창 9,935,718 (38.7%)
이인제 4,925,591 (18.9%)
권영길 306,026 (1.2%)
<16대>
노무현 12,014,277 (48.9%)
이회창 11,443,297 (46.5%)
권영길 957,148 (3.8%)
<17대>
정동영 6,174,682 (26.1%)
이명박 11,492,389 (48.7%)
이회창 3,559,953 (15.1%)
문국현 1,375,498 (5.8%)
권영길 712,121 (3.0%)
이 통계에는 많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통계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87년 13대에서 97년 15대 대선 결과 분석
굳이 과거의 대선결과를 분석하는 이유는 가장 최근의 2002년과 2007년을 해석하기 위함이다.
먼저 87년 대선은 ‘지역분할 구도’에 의한 선거임은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3대>
김대중 6,113,375 (26.5%) - 호남
노태우 8,282,738 (36.6%) - 대구경북
김영삼 6,337,581 (28.0%) - 부산경남
김종필 1,823,067 (7.9%) - 충청
이 통계를 유심히 봐야 하는 지점은 김대중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득표수 합계 때문이다. 김대중 후보가 얻은 610만여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맹주들의 표를 합산하면 1640만표 정도가 나온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이 결과는 호남고립주의의 상징적인 숫자 비교다.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김대중 후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2007년 대선결과를 한번 보자.
<17대>
정동영 6,174,682 (26.1%)
이명박 11,492,389 (48.7%)
이회창 3,559,953 (15.1%)
문국현 1,375,498 (5.8%)
권영길 712,121 (3.0%)
공교롭게도 정동영 후보가 획득한 득표수는 87년 김대중 후보의 득표수와 거의 일치한다.
● 김대중 611만표 vs 정동영 617만표
동시에 한나라당 진영의 득표수를 보면, 이명박 1149만 + 이회창 355만 = 1504만이다.
87년 대선과 비교해서 보자.
● 1987년 13대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2007년 17대 정동영 617만 vs 범보수세력 1504만
87년 김대중 후보와 2007년 정동영 후보의 표 차이는 불과 6만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007년 대선에서 소위 민주개혁세력은 정확하게 87년 수준으로 몰락한 것이다. 동시에 호남고립주의가 재현됐음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연결고리를 찾아가보자. 이를 위해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역대 대선결과를 먼저 살펴본다.
● 13대 김대중 611만
● 14대 김대중 997만 (+286만)
● 15대 김대중 1032만 (+35만)
● 16대 노무현 1201만 (+129만)
● 17대 정동영 617만 (-584만)
87년 13대부터 2002년 16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민주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각 시기별로 유권자 숫자의 추이를 들여다보자. 먼저 1992년 14대 대선에서 286만표가 증가했다. 이 유권자들은 어디에서 온 유권자들일까? 그 해답은 90년의 3당 합당에 있다.
다 알고 있다시피 90년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은 김종필의 공화당과 함께 노태우의 민정당과 합당하게 된다. 이때 김영삼의 ‘투항’으로 인해 영남지역의 민주개혁세력은 그 뿌리를 통째로 상실하게 되었다.
14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추가로 획득한 286만표는 바로 3당 합당에 반대한 영남지역 유권자들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게다. 87년에 분열했던 민주개혁세력이 김영삼의 투항으로 인해 반사적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286만을 기억해두시기 바란다.
그리고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14대에 비해 35만표를 더 얻게 된다. 이 35만표의 실체는 잘 알고 있듯이 김종필의 자민련과 연대한 결과물이다. 물론 김종필 효과가 35만에 불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던 유권자들은 김대중 후보를 위시한 민주개혁세력을 결코 지지하지 않았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 각 대선에서의 변수들, 박찬종, 이인제
이 시기에는 중요한 변수들이 나온다. 92년 정주영과 박찬종, 97년 이인제가 그 주인공들이다. 92년과 97년 대선 결과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13대> <14대> <15대>
김대중 611만(26.5%) 김대중 804만(33.8%) 김대중 1032만(40.3%)
노태우 828만(36.6%) 김영삼 997만(42.0%) 이회창 993만(38.7%)
김영삼 633만(28.0%) 정주영 388만(16.1%) 이인제 492만(18.9%)
김종필 182만(7.9%) 박찬종 151만(6.3%)
13대부터 15대 대선 통계는 매우 중요하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결과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결과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시작된 이후 역대 대선결과의 축적물이 바로 2002년과 2007년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나온 결론들을 다시 놓고 보자.
● 호남 610만 vs 비호남 1640만
● 김대중 후보의 증가한 득표수 286만
13대 14대 대선에서 중요한 변화가 몇 가지 있다.
단순 합산을 하면 14대 대선에서 김영삼은 ‘비호남 1640만표’를 고스란히 가져가야 말이 된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랬을까? 13대 대선에서 드러난 노골적인 지역투표에 대한 반감이 14대 대선에서 작용했다는 점이다.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빼놓고 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지역주의의 완화가 14대 대선결과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13대와 비교한 상대적인 정의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비호남 1610만 vs 14대 김영삼 997만 (643만 증발)
이 차이는 대략 643만 정도다.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지역주의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진 유권자가 이렇게 늘어난 것이다. 이 숫자는 나중에 밝히겠지만 소위 ‘부동층’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643만의 유권자는 어디로 갔을까?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이 분할했다.
● 김대중 286만 +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825만
합산하면 825만이니까 김영삼이 상실한 643만과 대략 160만표 차이가 난다. 이 160만표는 신규 투표자수의 자연증감분이다. 13대에 비해 14대에서 새롭게 투표권을 얻은 유권자들이 350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정리가 크게 틀리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여기서 김대중이 흡수한 286만표는 원래가 민주개혁세력 지지자들이다. 다만 그 지역의 패권자였던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해 김대중 지지로 옮겨왔을 뿐 본질적으로는 한 뿌리다.
그렇다면 이를 제외한 유권자 수를 보자.
●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539만, 바로 부동층의 실체
이 539만표는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13대 대선에서 드러난 지역주의 투표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바로 ‘민주평화통일개혁세력 vs 반세력’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의 심리가 정주영과 박찬종을 불러들였다고 보는게 합당할 것이다.
어찌됐든 확실한 것은 13대 대선이 지역주의 투표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이후 대선은 점차 지역주의 투표성향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539만이라는 유권자가 바로 실체가 아리송했던 ‘부동층’ 바로 그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있는 유권자들이 항상 제 3지대의 후보를 선호했다. 그것은 이인제의 등장에서도 동시에 발견된다.
97년 대선에서 이인제가 올린 득표수는 492만(18.9%)였다. 거의 비슷한 수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동층의 대략적인 숫자가 500만은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세력도 싫고, 김대중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세력도 싫은 사람들의 숫자라고 봐야 한다. (문국현이 노린 지점이 바로 이 500만에 있다)
정주영 388만 + 박찬종 151만 = 539만
이인제 492만
한나라당의 득표수 변화 추이
여기서 잠깐 민정당으로 시작해서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세력들의 득표를 살펴보자. 대비할 수 있도록 민주개혁세력 득표수와 비교해서 보자.
민주개혁세력 보수세력
13대 김대중 611만 노태우 828만
14대 김대중 804만 김영삼 997만
15대 김대중 1032만 이회창 993만
16대 노무현 1201만 이회창 1149만
17대 정동영 617만 이명박 + 이회창 1504만
먼저 위의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는 몇가지 중요한 점을 밝혀보고자 한다. 먼저 양 진영의 고정지지층 숫자다.
범 보수세력의 득표수가 1500만을 넘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보수화된 것일까?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그렇다면 2002년 대선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07년이 보수세력의 승리이고, 2002년은 민주개혁세력의 승리였을까?
애석하게도 이런 해석은 대단히 정치세력 중심의 해석이다. 누구의 승리라는 식으로 해석하게 되면 민주개혁세력의 반토막난 지지율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범 보수세력의 지지율 급증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이 해석은 철저하게 유권자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으며, 무엇을 기준으로 선거에 임한 것일까? 이걸 찾아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2편은 다음에 쓴다. 유권자들의 투표성향 변화를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해답을 찾아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