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의 참화(慘火)가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가운데 정치권의 대처와 사태를 바라보는 정치적 시각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냉정하면서도 철저한 원인규명과 대책마련 보다는 정치 손익계산을 앞세운 책임전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숭례문 화재 다음 날인 1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 지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5년 동안 과연 해야 할 일을 얼마나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무리해가면서 이렇게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까지 초래됐는지, 정권 말기에 터져 나오는 여러 가지 안전사고에 관해서 할 말을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안상수 대표는 "이제 정권말기지만 청와대를 비롯해서 모든 공직자가 분발해서 앞으로 이런 대형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업무에 더욱 더 신경을 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겨냥했지만 이러한 주장은 당 안팎에서 논란이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 "서울시도 책임이 있다"
숭례문 관리 책임은 한나라당이 단체장을 맡고 있는 서울 중구청과 서울시에도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2일 '대시민 담화문'을 통해 "지금 숭례문 화재의 법적 책임을 두고 많은 논란이 오가고 있지만 포괄적으로 서울시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문화재청으로부터 문화재 관리를 위임받은 관할 구청에 대해 서울시라도 나서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지 못했던 점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12일자 <4800만 국민 지켜보는 가운데 불타 무너진 숭례문>이라는 사설에서 "국보 1호 관리를 위임 받은 서울시는 2005년 '숭례문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며 주변에 광장을 만들고, 2006년 중앙통로까지 일반에 개방했다"고 설명했다.
| |
 |
|
| |
▲ 조선일보 2월12일자 사설. |
|
| |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다. 조선일보는 "숭례문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됐지만 중구청 직원이 평일 3명, 휴일 1명씩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한다. 이들이 퇴근한 밤 시간엔 무인경비업체의 CCTV와 적외선 감지기에만 김시를 맡겨놓았다. 개방한 만큼 더 엄격한 보호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상식도 없었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정형근 "불순동기 의심, 국정원 등 합동수사본부 구성해야"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당연히 중앙정부가 책임이 있고, 지방정부도 책임이 있겠다. 그리고 문화재 관리청에도 책임이 있고, 소방당국도 책임이 크다"면서 "누가 이렇게 예산을 배정해서 관리인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됐나 생각을 해보면 행정부도 책임이 크지만 우리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형근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주장도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시기적으로 구정 초에 민족의 혼이 담긴 상징적 건물인 국보 1호라는 점에서 방화라면 방화동기가 의심스럽다. 혹시 불순동기가 게재되지는 않았는지 저는 검찰이 주도화해서 경찰, 국정원 등에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긴급히 구성하여 방화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도 이날 숭례문 화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전체적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게 걱정스럽다"면서 "(방화범은) 의도적이고 전문가 아닌가. 상당히 계획적인 것 같다"고 주장했다.
| |
 |
|
| |
▲ 강재섭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들은 지난 11일 서울 남대문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한나라당 |
|
| |
한나라당 '범행의도' 섣부른 해석
한나라당은 불순동기를 언급하면서 국정원이 합동특별수사본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경찰에 붙잡힌 범인은 토지보상과 법원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범이 정형근 의원의 얘기처럼 국정원이 수사를 해야 할 인물인지, 이명박 당선인의 얘기처럼 전문가로 볼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사회가 혼란스러운게 걱정스럽다"고 말했지만 대통령 당선인의 섣부른 주장이 사회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 전·현직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숭례문 참화의 책임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점이 하나, 둘 드러남에 따라 한나라당의 대응수위도 달라지고 있다.
나경원 대변인은 11일 논평에서 "어떻게 이렇게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기가 막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에 쓰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문화재 방재에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지적했다.
하루 만에 달라진 나경원 대변인 논평
나경원 대변인은 "현 정권 문화재 관리의 총체적 부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아닐 수 없다. 정권 이양기라 해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권'의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나 12일 논평에서는 "공무원을 그토록 늘리면서도 국보 1호를 지키는 공무원 한 사람 없었다는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번 참화를 계기로 전국의 목조 문화재를 비롯한 국보 문화재의 재난방재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국회도 문화재 방재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과 제도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정부의 책임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국회도 책임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책임전가, 역풍 자초
한나라당은 새 정부 출범을 보름 가량 앞두고 터진 이번 '국가 참화'의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아직은 참여정부의 임기 중이므로 이번 사건의 1차적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숭례문 참화를 놓고 정치 손익계산을 하는 모습은 국민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는 대통합민주신당 등 다른 정당들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 희생양을 만들어 놓고 자신은 빠져나가려 한다거나 이번 사건을 정치 이해득실에 활용하려 한다면 국민 외면은 물론 역풍만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미디어다음에 실린 <한나라당, '숭례문 화재는 노 대통령 때문' 비난>이라는 노컷뉴스 기사에는 12일 오후 4시 현재 865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 내용 대부분은 한나라당의 책임 전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이번 사건의 철저한 원인규명과 재발방지 대책마련, 이를 위한 책임 당사자들의 겸허한 자세가 아닐까.
| |
 |
|
| |
▲ 지난 11일 미디어다음에 실린 <한나라당, '숭례문 화재는 노 대통령 때문' 비난>이라는 노컷뉴스 기사에는 12일 오후 4시 현재 865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