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한다는 것.
노무현을 따라, 유시민을 따라... 노무현은 유시민으로 완성된다는 믿음 하나로 걸어 온 길. 어느덧 7년이 되어 갑니다. 짧지 않은 세월이었기에 새삼 짚어보니 참 많은 곳을 거쳐 왔네요.
노사모, 노하우, 조아세, 개혁당, 시민사랑, 서프라이즈, 열린우리당, 참정연, 그리고 인터넷진지와 시민광장까지... 구력이 웬만한 노빠 그리고 유빠라면 아마 대략들 비슷하시겠지요.
조금씩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곳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고, 경험 속에서 축적된 유산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른바 참여 커뮤니티 혹은 참여정치 네트워크에서, 좋은 상식과 원칙이 무엇인지, 나쁜 습관과 폐해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들입니다.
아주 많은 분들이 그 과정과 결과를 직접 겪고 지켜보면서,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정의한 것들이기에 종종 유용하게 인용됩니다. 만약 곤혹스럽게 느껴지거나 혼란스러워 보이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라면 더욱 그렇죠.
'언제나 즐거운 참여정치'입니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재미난 일 많이 만들며 즐겁게 지내는 그런 시민광장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진지하되 경쾌하게!' 다가올 대구총선을 위해서 많은 '말'과 어려움 속에 많은 분들의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던 2007년 11.24 팔공산 대구총회에서 유시민 의원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새삼스럽게 하신 이야기가 아니죠. 2002년부터 지금까지 말로든 글로든 일관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래에 김반장님이 인용해 주신 것처럼 얼마 전 유벗창립식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민광장의 유티즌들을 일컬어 '아주 독특한 취향의 취미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는 너스레까지 곁들이면서 말이죠.
'개미들의 유쾌한 정치반란', 우리가 처음 참여의 장정을 시작할 때 우리 스스로 내걸었던 슬로건입니다. 꿈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이미 그것만으로도 재밌지만) '늘'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다가 '가끔은' 진지하게 실천도 할 수 있는 그런 정치, '즐거운 참여정치'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씩씩한 유시민이고, 언제나 즐거운 유티즌'입니다.

'아무런 댓가가 없는 자발적인 참여'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금전적인 '보상'도 '자리'도 없습니다. 오로지 스스로 가져가는 '재미'와 '감동', 함께 나누는 '성취'와 '보람'만이 참여의 댓가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정치를 위해서,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정치인을 위해서, 온전히 자신의 돈과 몸과 마음을 기꺼이 던져서 참여하는 것, 그것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바닥'의 불문율입니다. 그래서 생긴 말들이 '돈빵', '몸빵', '십시일반 자력갱생', '즐거움이 힘', 그런 것들이죠. 그 반대의 말들이 '궁물', '동원', '자판기' 등이고요.
때로 후원이나 협찬을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다가 까칠하다거나 융통성 없다는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새겨야 할 것은 오로지 '자기 돈 내서 자기 몸으로', '손 든 사람이 책임지고' 한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그 '자발적인 참여'의 현장에 더 많은 참여를 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즐거움의 보상 뿐입니다. 투박하게 말하면 '다 저 좋아서' 하는 거고 '그게 다 즐거우니까' 스스로 하는 겁니다. 독립운동도 즐거움과 감동이 없으면 못 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참여입니다.
생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강제' 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가정이 있고 일터가 있는 생활인들입니다. 자신이 처한 형편과 여건에 따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방법으로 참여합니다. 매 순간마다 더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고 덜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지만, 참여의 가치는 모두 같은 것이고, 이번에는 이 사람이 다음에는 저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곳을 메우며 참여의 총량을 만들어 갑니다.
지금 잠수타고 있는 유능한 일꾼이 있을 때, 조용히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필요한 순간에 대략 다 나타나더군요. 하루 이틀 안에 승부를 볼 수 있는 단기레이스도 아니기에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때로 자뻑이야 할 수 있겠지만 남들보다 더 오래 더 많이 참여했다고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새내기는 늘 고마울 뿐 누구도 참여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왜 나보다 덜 치열하냐고 왜 남보다 덜 참여하냐고 핀잔 주거나 압박하거나 윽박지를 수 없습니다.
우리들끼리 말로 '삐끼', '앵벌이'... 절박하게 호소할 수는 있지만 더 헌신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발적인 참여를 더 끌어내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위기감을 불어 넣는 것으로는 하향적 동원이 가능할 뿐이고, 즐거움을 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상향적 참여가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면' 바느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상황이 긴박할 수록, 참여가 절실할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2007년 대통령후보 경선, 울산과 춘천 현장을 떠올려 보십시다. 지금보다 긴박감과 긴장감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던 순간입니다. 그날, 연설현장에 있던 사람들이나 시민채널의 생방송을 지켜 본 사람들이나 우리 모두 얼마나 즐거웠습니까?
죽은자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도 산자들의 '축제'로 그 의식을 치루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달라야 합니다. 저들의 방법과 같아지지 못함을 초조해하는 것은 그렇게 도움되는 일이 아닙니다. 총동원을 하달하는 '격문'은 늘 우리를 긴장시키지만, 우리 모두를 그 현장으로 이끌어내는 길은 안쓰러울 정도의 씩씩함과 즐거움으로 '참여'를 기획하고 호소하는 것, 그길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부디, 즐겁게 동원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