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한 아버지가 주름이 깊게 파인 걱정스런 얼굴로 병원 앞에 서있었어 .
발치에는 아들이 누워 있었지 .
열두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아이의 사지는 정말이지 거미다리처럼 너무도 가늘었어
그 아이들 보면서 너를 떠올렸지 .
현지 의사가 그 아이를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너무 늦어서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었던 거야. 아이의 아버지는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의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어 .
의사는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지.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였어
결국 그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더니 가만히 아들을 안고는 터벅터벅 걸어 갔어
그땐 정말 가슴 아팠어 .
이 책에 나오는 한 부분이다.
이 책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요인들을 아들과의 대화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1을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는 사실.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해서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기아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매년 평균 서울시 인구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맹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곡물이 부족해서 누군가는 굶어죽는다면 할수 없지만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 만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식량은 넘쳐나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의 농간과 그들의 정치자금에 넘어간 정치권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국적 기업들은 시장을 통제 하면서 매점매석을 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시장왜곡 때문에 갈수록 환경은 파괴되고 있다.
세계 제2위의 식품회사인 스위스 네슬레와 관련된 예를 들어보자.
칠레에서 일어난 일이다.
1970년 아옌데는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 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당시 칠레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은 아이들의 영양실조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스레는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네슬레는 칠레의 농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당연히 네슬레는 협력을 거부했다. 아옌데정부는 네슬레에게 우유 구매를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거부당했다. 이때부터 아옌데 정부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 오늘 날 많은 이들이 차베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당신은 아옌데처럼 당하면 안 된다."
한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 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아무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대통령 상카라가는 토지개혁과 인두세 폐지 등으로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지만 부패한 이웃 아프리카권력자들과 다국적기업, 프랑스 일부 정부세력과 결탁한 자신의 참모에게 상카라는 살해당하고 부르카소는 다시 굶주림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강력한 무기를 지닌 약탈자들이 오기 전에는 전만해도 아프리카의 농민이나 목축민들은 현지의 권력자에게 상납하고 자신들이 소비하게 충분한 식량을 생산했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아프리카는 기아에 빠지게 되었다.
유럽의 권력자들은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하게 했다.
식민지 차드에서는 종주국 프랑스의 직물공장에서 쓸 면화를 가나의 삼림지대인 아샨티에서는 영국의 초콜릿 공장을 위해 카카오 농사를 지어야 했고, 부룬디와 르완다에서는 차농사를 지어야했다.
누가 정의를 논할 것인가?
신자유주의 즉 시장원리주의는 국가도, 규범도, 민족주체성도 모두 필요가 없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로 한가를 따지지 않는다
단 한가지 원칙 그것은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다.
차드, 에디오피아, 아이티 같은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죽어가도 그들은 눈 하나 깜작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눈을 돌릴 뿐이다.
배고픈 자들의 고통은 국제 적십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유일한 수출품목은 가축들이다.
흑인농민들과 유목민들은 수백만 마리의 낙타, 소, 양, 염소들을 가지고 있다.
다국적 회사들은 국립수의사국을 민영화 할 것을 요구하고 결국엔 구충제나 가축의약품을
비싼 가격에 팔아 결국 농민들을 몰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길, 콘아그라, 스미스필드, 타이슨, 같은 대기업들이 고기들을 팔아 먹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물을 팔 돈이 없고 씨앗을 살 돈이 없다.
거대자본에 막혀 그들은 오늘도 배고픔으로 사랑하는 아들 딸, 부모들을 잃어 버려야 한다.
물론 배고픔의 원인이 다국적 기업 말고 전쟁, 정치 권력의 부패,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위 정책 때문에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여전히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저자는 말한다.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돈이 있는 자는 먹을 것을 얻고, 없는 자는 굶주린다는 사고방식.
이것은 그냥 방치되어서는 안 되는 정글 자본주의다. 기아에 관한한 시장의 자율성을 맹신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못해 죄악이다. 기아 문제를 시장의 자유로운 게임에만 방치할 수는 없다.
세계 경제의 모든 메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한 가지 대 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국제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규범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굶어죽는 것이 게으르거나 기후조건이 나빠서 인줄 알았지 그 내면에 지저분한 다국적기업과 부패한 정치 권력자들이 연관되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책을 덮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밥 한끼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돈 몇 천원이면 지금도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에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