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유시민. ㅣ 반전할까요
요 며칠 춘삼월이라 하여 햇살이 참 따뜻함을 느낍니다. 이런 당장이라도 꽃필 것 같은 날씨 앞에서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것이 영 답답하게 느껴져서, 밖에 다녀올 일이라도 생기면 일부러 차를 타지 않고 걷고, 근처 수성못 주변을 조금 걷다 옵니다. 퇴근시간이 마땅히 정해지지 않은 선거사무실에서 일하니까 이 정도 농땡이(?)는 괜찮을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공교롭게도 수성못 주변은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입니다. 수성못을 안고 있는 두산동에서 처음으로 글자를 익히고 친구를 사귀었습니다. 두산오거리에서 선거사무실로 올라가는 방향에는 제가 어릴 적 살던 집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저를 기억해주는 분들이 아직도 살고 계시지요. 제가 이 동네를 떠난지 18년이 되었는데도 말이죠.
처음 의원님께서 이 동네에서 출마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설마 했습니다. 대구출신이라는 것도 알고 수성구 중동분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제 몸뚱아리가 자란 이 동네의 분위기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대구란 곳은 유시민과 같은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인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한나라당을 구축하고 있는 세력 이외의 것은 별종 내지는 외계인 취급을 하는 곳이니까요.
이 곳 두산동에서 저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저한테라면 굉장히 끔찍히 대해주시는 분이었지요. 어리고 철없는 외손자가 장난감을 사달라면 먼길을 걸어 학교문방구에서 사다주고, 통닭이 먹고 싶다면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사다주었습니다. (그때는 배달이 안되었지요.)
외할머니는 술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험난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온 탓인지 밥보다 막걸리를 더 많이 드시는 분이었습니다. 독한 양주도 김치 한접시면 한병을 게눈 감추듯 비워버리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주당이었죠. 술에 취한 외할머니는 동네에서 싸움이 잦았습니다. 술이 들큰하게 취한 날 저녁이면 외할머니는 방에 들어와 담배를 피워대면서 오늘 당신이 삿대질을 하며 싸운 동네여편네의 욕을 어린 제게 쏟아내곤 했지요. 그런 외할머니를 저는 그러려니하고 살았습니다. 별다른 감정을 가질 것도 없었고, 그냥 일상적인 것이니까 외할머니의 캐릭터려니 했습니다.
외할머니의 레퍼토리는 동네여편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정부의 말을 듣지 않고 까불어대는 공장근로자들, 전두환 노태우 물러나라면서 욕을 해대는 철없는 대학생들. 거기에 영합해서 자신들의 지역이기주의를 더욱 공고히하는 전라도의 빨갱이들. 그들 모두가 외할머니에게는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런 테마들에 대해서는 분란이 일지를 않았죠. 그에 반하는 정치적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살아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린 제 기억에는 그런 정치적인 사안으로 외할머니가 다투고 들어왔던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은 수성못 주변에 갈 일이 있어 다녀오던 길에 자주 가던 구멍가게를 들렀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이제 할머니라고 불러야 되겠더군요. 18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한 거겠죠. 가게 안에 놓인 탁자에는 나이 지긋한 어른 두 분이 맥주를 주고 받고 있었고, 아주머니 몇분이 점심식사를 한다시며 커다란양푼에 나물과 밥을 쏟아붓고는 비비는 중이었습니다.
18년 전 동네를 떠나기 전에 보던 풍경이랑 하등 달라진 것이 없는 그런 모습이더군요.
어릴 적 봤을 때보다 세 배는 더 커졌을 제 덩치를 보며 어린 제 흔적을 기억해주는 아주머니의 기억력에 감탄하면서 가게 안에 앉아계신 어르신들과 18년전 제가 남기고 간 기억의 흔적들을 공유해보았습니다. 외할머니의 기억들, 유난히 싸움이 잦았던 동네친구놈의 기억들, 어느샌가 도로에 덮혀버린 도랑과 그 옆을 지나던 포도밭의 기억들.
많은 기억들이 오고가면서 자연스럽게 제 근황에도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숨길 것이라고 뭐 있었을까요. 순수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의도로 그 분들에게 말을 건 것은 사실이었으니 말입니다. ‘유시민선거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니 예상한 것보다는 덜 과격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격하지는 않은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그 어린날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인간취급도 하지 않던 외할머니의 독설들이 말이죠. 노무현의 이름은 또 한 번 잔인한 언어로 난도질 당했고, 유시민은 도매금으로 몹쓸 내지는 멍청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지요.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을 기억하는 그 분들, 이를테면 고향사람이라고 부르는 그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잔인한 말을 웃으면서 들어야하다니, 아이러니컬하다고 하기도 그렇고.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 처음 접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째서 마주칠때마다 당황스러울까요.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 인맥도 없으니 대통령감이 아니었다, 그 밑에서 장관감도 아닌데 장관질을 했다, 사람은 인맥이 중요하다, 데모만 하던 것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똑똑한 사람이고 말로는 당할 사람이 없는데 줄 좀 잘서지 그랬느냐, 돈도 없으면서 무슨 정치를 하느냐 내가 동네에서 통장만 25년째인데 깨끗하다고 그래도 다 선거는 돈으로 하는거다.'
변죽을 울리는 언어, 돌림노래처럼 뒤따라가고 반복되는 언어.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제 갓 환갑을 맞은 그 분. 노무현과 그 똘마니 유시민에 대해 화를 토해내던 그 분은 외할머니의 독설에 맞장구를 치던 동네사람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동네에 보면 몇 십 년 동안 야당질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앞에서 노무현이고 김대중이고 욕하면 클난데이.' 십년동안 정권을 잡았어도, 그 분 눈에는 한나라당이외에는 야당이었나 봅니다. 영원한 여당 한나라당.
박카스 한 병을 비우고 씁쓸한 기분을 삼키면서 가게를 떠났습니다.
그런 철옹성에서 유시민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기억해달라며 그 속에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저녁인가 살짝 소매를 걷어 부친 그의 오른팔에는 파스 두 장이 붙어 있었지요. 매일 천장에 가까운 명함을 돌리고 악수를 해대니 팔이 성할 리가 없었겠죠. 지칠대로 지쳐있을 법 한 데도 하루 왠종일 돌고 들어온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지친 기색이 없습니다. 오늘도 몇 명의 호감을 얻은 것 같다며 사무실 식구들에게 어린아이처럼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분명히 지쳤을텐데. 어릴 적에 알던 동네 사람과 30분 이야기하는 것도 지치고 힘빠지는 일이었는데. 그래도 이게 옳은 길이겠거니하고 그는 걷고 있습니다. 이 얼어붙은 곳에 따뜻한 봄빛을 채워주기 위해서 말이죠. 그 봄에 예쁜 꽃 한송이가 굳세게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힘내라,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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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부터 함 바꿔보세요 l 늦겨울
서울에서 모임을 하고 동대구 고속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탔습니다. 50대로 보이는 개인택시였습니다.
겨울 : 아저씨 어제 한나라당 공천 우애 됬습니꺼?
기사 : 잘 모르겠심더 내가 아는 안택수는 떨어졌다 카데예...
겨울 : 당연히 박근혜 지지하는 의원들 많이 날아갔을 겁니다. 뻔한 거 아닙니까?
기사 : 정치에 관심없어예... 다 그넘이 그넘 아님니까? 민나 도로보데스 (일본어로 모두 도둑놈이다.)
겨울 : 어 아저씨 일본어도 아시네... 이야 (칭찬해 줌) 아저씨 보통 넘네예... 그런데 아저씨 지역구에는 누가 나왔심니꺼?
기사 : 유시민이 나왔다카데예... 심인고 나왔고 집이 중동이라 카데예... 참 똑똑하고 바른말 잘 하는데 대구정서가 이래가 되겠심니까?
겨울 : (속으로 잘 걸렸다 생각하고) 수성초등 대륜중학교 나왔자나예... 대구사람 아님니껴. 아저씨부터 함 바꿔보지예... 그러는 아저씨도 선거 때마다 늘 같은 당 그 사람 찍었자나예... 그래 놓고 늘 욕하고 경제가 어렵다카고 그 찍어준 넘들은 목아지 힘주고 콧배기도 안 보이자나예... 늘 나오면 무조건 찍어주니... 대구시민을 우습게 보는거 아님니꺼... 다 대구사람 책임입니더... 나도 대구사람이지만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아저씨부터 이번에 생각 함 바꿔 보이소. 예?
기사 : ........ 우리 지역구에 국회의원이 누구지예?
겨울 : 아직 그것도 모름니꺼. 주호영이 아님니까? 맹박 선수 옆에 졸졸 따라다니는...
기사 : 아 걸마입니꺼.
겨울 : 그 사람은 판사도 했고 줄도 잘 섰으니 떨어져도 내각이나 청와대 갈 거 아닙니까
기사 : 그렇지예 우애해도 좋은데 가겠지예
겨울 : 아저씨 사실 저 이러이러한 사람인데요. 옆에서 지켜보니 안타깝심더... 조직이 있나 돈이 있나... 신문이 바르게 써주나... 일산에 있으면 등 따시고 배 부를건데... 그래도 고향이라고 찾아왔는데... 인재는 인재 아닙니까. 옆에서 봐도 정말 배울거 많아예...
기사 : 정말 그렇습니꺼
겨울 : 정말입니다. 아저씨 같은 분들이 좀 마음을 바꾸고 솔선하시면 세상이 좀 안 바뀌겠습니까. 맨날 똑같은 사람 찍어 놓고 욕하고 또 그놈 찍고... 이래가 되겠씁니껴... 예?
기사 : 우리집도 4표인데...
겨울 : 아저씨 부탁합니다. 잔돈 필요없서예...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시고 꼭 좀 저 했는 말 잊지마이소...
기사 : 예, 4표는... 책임... 고맙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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