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시민광장 회원님들도 읽어주셨으면 해서 올립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많은 국민들은 이 우문에 어떤 답을 갖고 있을까? 아마도 묻는 필자를 이상하게 볼 사람이 많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문을 던져보는 것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말로 과문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되고, 우리보다 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보여주고 있다는 나라에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모습을 찾아보긴 꽤나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제대로 답을 할 줄 아는 국민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데도 많은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 '믿고' 있으며,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필자를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니, 이것도 아이러니이다.
그럼 최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18대 국회의원을 뽑을 총선이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각 정당에서는 총선에 출마할 후보자들을 선별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자 단체와 연계되어 있는 민주노동당과 그 당에서 떨어져나온 또다른 진보색채의 당 정도를 제외하고는,
지금 대한민국 정당들이 보여주고 있는 '후보자 선별 절차'는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한한' 짓들이다.
특히 원내 제1,2 당들인 거대 정당들은 공히 자기당 당원도 아닌 사람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위촉하고, 그들에게 적어도 겉으로는 공직 후보자 선출에 대한 전권을 맡겼다. 그리고 이들 공천심사위원들은 자기들끼리 사무실에 모여서 이런 저런 근거자료들을 바탕으로 지역구 출마 후보자들을 정하고 있다. 필자 이런 식으로 공직 후보자를 뽑는 우리보다 정치적으로 앞서 있다는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다른 '진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하지 않는 '희한한 짓'임에 분명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절차로 인정해 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48년 8월 정부가 수립된 이래 그리 길지 않은 세월동안 수많은 정당들이 명멸해갔다.
그러나 대체로 그 정당들은 서구적 의미에서의 정치 결사체인 정당이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울 정도의 정치적 붕당에 가까웠다.
권력을 쥔 자와 그 권력에 대항하는 자들 중 몇몇의 우두머리가 자신의 권력들을 동원해서 마련한 돈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그 모아진 사람들을 자기의 '부하'처럼 거느리면서 꾸려온 임의의 정치단체가 바로 우리의 정당 아니었던가?
당연히 그 시절에는 공직 후보자 선출권이 바로 그 정당의 '우두머리들'에 있었고,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천을 받기 위해서 그 우두머리들에게 정치적 '충성'도 바치고, 경제적 '이익'도 바치는 등 전근대적 행태가 당연시되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원년이라 할 수 있을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생겨난 정당들도,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구태에서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1노3김으로 대표되는 87년의 경쟁자들은 스스로가 지역맹주를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심복을 고르는 기회로 선거를 활용했다.
정당은 여럿 있었으나, 당원 개념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고, 당의 권한은 당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의 보스로부터 나오는 게 당연시 되었다는 점에서 87년 체제 이후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정당들도 여전히 구태정당이었던 셈이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느리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시도들이 있었다.
대통령 후보 선출은 거의 모든 정당이 경선의 형식을 띄면서 당원들의 선택권을 일정부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부 지역구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과정에서 경선을 도입하는 경우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념적 배경을 갖고 있는 계급정당이 아닌 일반 대중정당으로서 이런 상향식 민주주의 - 사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상향식이다. 하향식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서구의 정치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 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첫 사례는 아마도 지난 정부하에서 여당의 지위를 누렸던 열린우리당이 우리 근대 정치사에서 최초일 것이다.
지난 17대 총선을 거치면서 원내 과반의석을 획득했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때부터 대중정당으로서는 획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공식적으로 당권을 당원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전'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17대 총선의 공천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당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경선을 많은 지역구에서 실시하였다. 그 결과 현역의원이 무명의 지역 정치신인에게 경선에서 패배하기도 하고, 그 현역의원이 경선에 승복하면서 매스콤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기도 하는 등 정당 민주주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만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원래 새로운 시도는 전염되는 법이다. 이 새로운, 그러나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반화된, 모습에 자극받은 야당들도 일부 지역구에서 이런 방식의 상향식 후보 선출 절차를 밟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정당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불완전하게나마 비로소 '진짜 민주 정당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움직임은 불과 4년만인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나라 대중정당의 역사상 가장 '민주주의 본연의 모습과 비슷했던' 열린우리당은 100년 정당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붕괴와 더불어서 이 '상향식, 그러니까 진짜 민주주의 정당' 역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선진 민주주의 정당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공천시스템'이 그 자리를 메웠다. 바로 '당원도 아닌 사람들을 포함한 몇몇이 모여서 공직후보자들을 선별해 내는' 방식 말이다.
정당은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매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는 정당에 의해서 수렴되고, 그 정당들은 정부의 운영권을 두고 경쟁하며, 의회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일반적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당들은 민주정당이 아니다. 이러니 어찌 대한민국을 진짜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며, 그 다음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상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다. 민주 정당이려면, '무슨 무슨 당은 민주 정당이며, 이 당의 권력은 당원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명시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운영되어야 함에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운영되는 정당은 일부 계급정당을 제외하곤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민주정당 하나 없는 나라인 셈이니, 어찌 민주주의 국가라 하겠나?
20년 가까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보스 정당의 폐해가 사라지는 듯 했으며, 당의 권력이 당원에게 돌아가는 듯 했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그래서 희망이 보였다. 오랜 기간 노력 끝에 겨우 결실을 맺나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 걸린 일이 무너지는데 불과 4년도 안 걸렸다. 역시 공들여 쌓기는 오래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한순간인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래서 지금 무너지고 마는 양상이다. 다시 쌓으려면 아마 꽤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듯 싶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필자는 최근 매우 우울하다. 우리나라는 과연 언제나 진짜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인지, 너무 보고 싶다.
사족: 최근 보니 어느 정당에서 어떤 특정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당명을 사용하려 한단다. 이 역시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나라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해괴한 행태이다. 필자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을 혐오한다. 말장난으로 수없이 많은 죄없는 사람들을 옥에 가두고, 고문하고, 죽인 유신정권이 만들어낸 이 용어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그의 딸을 숭모함을 노골적으로 표명하는 이런 정당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만들어진다는 것 역시 우리나라가 아직 민주주의 국가가 되려면 한참 멀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스톡홀롬 신드롬에 빠진 일부 국민들이 그래서 때로는 측은하고 불쌍하며, 때로는 안타깝고 허무하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