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민당은 절반에 가까운 의석수를 준다고 해도 대운하를 막을 수 없다. 과반 이상을 가진 집권 여당이면서 개혁 입법을 다 물거품으로 만든자들이 과반 이상 가진 한나라당을 막는다고?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누가 믿겠는가?
대운하 막을 테니 통민당을 밀어달라는 소리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정동영을 찍어달라고? 우리는 저들의 정치 놀음에 또 협박을 당하면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저들이 눈짓으로 서로 짜고 치는 판인지 우리가 어떻게 아나? 우리는 계속 털리고 있는 것이다.
대운하 시행은 통민당의 의석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대운하는 이명박 정부와 시민주권 세력의 한판 승부일 뿐이다. 시민주권운동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시민주권운동은 민주주의의 맹점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이 맹점을 보안하는 것이 바로 시민주권운동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이다. 그런데 다수결이 정의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다수결로 권력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히틀러의 나치를 생각해보라. 다수결로 권력을 얻은 자의 행위는 합법적인 것이지만 불의를 행할 수 있다. 이 때 합법적인 권력에 대해서 정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민주권운동이다.
대운하는 합법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분명히 대운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것을 막는 것은 불법적이며 비민주적인 처사이다. 그렇기에 여소야대의 국회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정치적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통민당이 막을 수 없다. 정동영이 막을 수 없다.
오직 막을 수 있는 길은 이젠 국민들이 이 사안에 대해서 직접 나서는 방법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정치 논리가 아니라 시민주권의 논리와 사실과 정의의 논리를 가지고 막는 방법 밖에 없다. 국민들이 피곤하게 됐으나 이 땅에 시민주권 개념이 움트고 확립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정치 논리로 자기들끼리 짜고치던 판이 완전히 바뀌어 새로운 패러다임이 성립되는 순간인 것이다.
대운하를 통민당의 국회의원들이 막는 것이 더 강력하겠는가, 아니면 천성산의 한 스님이 막는 것이 더 강력하겠는가? 이명박 정부의 밀어 붙이기가 더 셀 것인가, 아니면 시민 노무현의 하천 청소 빗자루가 더 셀 것인가? 남은 것은 이것 뿐이다.
통민당이 아직도 정치 논리로 표를 주시면 막겠다? 그 말을 누가 믿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무소속 국회의원 한 사람을 믿겠다. 그는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소속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면서도 정치 세력간의 대치와 거래의 정치 논리가 아닌 국민의 대표로서 시민주권운동원으로 활동하고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대구의 무소속 출마자 유시민의 마지막 유세를 응원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