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에도 올린 글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정당은 서울의 '비호남 개혁표'만 얻는 게 아니라, '호남의 비지역주의표'까지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전국정당이어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진짜 이기는 길입니다.>
통합민주당이라는 해괴한 당명을 가진 잡탕 야당은 제1야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그것도 무난한 수치인 81석을 확보하면서 말이다.
이는 총선전 확보하고 있던 130여석에 비해서 50여석이나 적은 수임은 물론이고, 새 국회의 원내분포로 보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는 있으나 마나한 의석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정당들의 색깔이 몽땅 극우나 수구에 가깝기 때문에 어떤 상임위에서도 견제다운 견제를 할 수 없음은 물론, 단독국회 소집조차 할 수 없는 참담한 의석이라 할 수 있다.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87년 총선 당시 평민당이 얻은 의석보다 아마 약간 더 많을 것이다. 그나마 김해을과 사하을의 두 석이 악세사리처럼 붙어 있어서 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의석 분포의 내용은 평민당의 그것보다 더 엉망이고, 질낮은 것이다.
왜냐하면 수도권, 그것도 서울에서 총선사상 최대의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불과 7석을 건지는데 그친 서울의 성적표는 이번 총선에서 잡탕당이 100석 확보에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며, 딴나라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이 개헌선을 넘기는 압승을 거둔 결정타였다.
서울의 이런 결과를 두고 '뉴타운 개발 열풍'에 서울표심이 쏠린 탓이라거나, 비 때문에 너무 투표율이 낮았기 때문이라는 둥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차차 분석이 나오겠지만, 서울의 참패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비호남 개혁세력표'가 대거 기권해 버린 탓에 수천표 차이로 결과가 갈리는 서울에서 통민당 후보들이 사실상 전멸해 버린 것이다.
표 차이를 봐라. 10% 정도만 더 얻었어도 서울에서 거의 20석 가까이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호남표만 믿고 있다가 당한 것이다.
잔민당과 통합하면 예전 평민당 수준의 득표를 할 줄 알았겠지만, 착각이었다.
호남표들은 어느 정도 결집이 되었지만, '비호남 비딴나라표'는 다 흩어지고 말았고, 그 중 절반은 기권해 버렸다. 바로 '노무현 표'가 통민당에 표 던지기를 거부한 결과이다.
87년 총선 당시에는 비호남 개혁성향 표가 통일민주당으로 일부 분산되면서 상대적으로 결집력이 강한 호남표만으로도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간의 정치지형이 변함에 따라서 서울에서는 호남표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지역구가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런데도 호남표만 복원하면 될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탓에, 정말 호남 인구가 많은 몇몇 지역구를 제외하곤 '비호남 개혁성향 표의 대거 기권'덕분에 전멸해 버린 것이다. 이제 통민당은 완벽한 호남+충북당이 된 셈이다.
서울에서는 투표율이 5%만 높아졌어도 승부가 뒤집어졌을 지역구가 허다하다. 수도권에서도 한명숙 후보가 낙선한 일산동을 비롯한 석패한 지역구는 하나같이 '호남표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지역이다. '호남표+개혁세력 알파'가 결집되어야만 '묻지마 보수표'와 경쟁할 수 있는 서울의 표심을 간과한 '과거회귀적 서부벨트 복원'이 불러온 참사라는 말이다.
실제로 서울의 많은 '비호남 출신, 구 열린우리당 지지표'들은 잔민당과의 통합을 '지역주의에 대한 굴복', '호남표를 위해 다른 개혁세력표를 포기한 과거회귀적 정치공학'으로 평가했고, 그들은 투표 불참으로 이를 '응징'했다. 그것이 서울의 대참패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이다.
이의 간접증거로 경기도의 상대적 선전을 꼽을 수 있다. 우리가 수도권이라고 통칭해서 부르지만, 실제로 수도권의 다수 지역은 서울과는 사뭇 다른 인구구성을 갖고 있는 곳이다. 전국의 사람들이 다 모여사는 곳은 서울에 인접한 신도시나 위성도시들이다. 수도권 북부나 남부의 일부는 그곳 토박이들이 다수인 경우가 꽤 된다. 그런 곳들에서 대체로 통민당은 선전했다. 탄핵에 힘입어 당선되었던 토박이 탄돌이들이 이번에도 살아남은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중에서 서울과 인구구성이 유사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역시 참패했다.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고양시의 네 개 선거구 모두를 잃었음은 물론, 호남 출신이 많다고 알려져서 텃밭처럼 여기던 안산도 천정배만 살아남고, 다 패하고 말았다. 이들 지역에 살고 있는 '비호남 출신 개혁표'들의 집단 기권 빼고는 이런 결과를 설명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호남표 잡으려다 다른 지역 출신 개혁표 모두 놓친' 후폭풍을 이번에 톡톡히 맛본 것이다. 과거지향적인 서부벨트 복원이 얼마나 허구적인 구호인지 극명하게 드러났음에도 이를 간파해내는 분석은 전무한 것보면, 정말 무식한 것인지 무능한 것인지, 아니면 교활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단언컨데, 차라리 민주당과 통합하지 않은 채로 총선에 나섰더라면 이런 대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에게 호남의 일부 지역을 잃었겠지만, 수도권에 사는 '비호남 개혁표, 특히 친노표'를 모독하는 전략을 세우지만 않았더라도 의석수가 많은 서울에서 호남의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는 득표를 했을 것이다. 서울 득표에서 알겠지만, 서울 시민들은 철저하게 양당구도에 따른 투표를 했다. 스스로 알아서 1위와 2위에 표를 몰아줄 줄 아는 것이다. 잔민당은 서울에서 제대로 출마하지 못했을 것이고, 출마했더라도 단 한 석도 얻을 수 없었을텐데, 그게 겁나서 '호남표 복원'에만 매달리다가, 다 망친 것이다.
같은 80석을 얻어도 서울에서 이기는 80석이 더 가치가 높은 것은 불문가지다. 국회의원 선거야 의석수가 중요하지만, 더 큰 권력인 대선에서는 결국 표가 많은 서울에서 경쟁력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통민당의 이번 총선 결과는 명백한 퇴행이며, '호남표에 의지한 편안한 선거'를 꿈꾸던 세력들에게 '낙선'이라는 철퇴를 내린 것이라 평가해도 무방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는 제 혼자서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역사상 최악의 제1야당이 서서히 소멸하는 것을 앞으로 4년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부끄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