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열풍도 서서히 잠잠해져 가는지.. 조용하네요..
오늘은 사극으로 본 정치사를 한번 읊어 볼까 합니다.
고려는 지방호족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였습니다.(태조왕건)
그렇기 때문에 호족들의 군사권과 행정권의 자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나라였죠.
그 기본바탕은 원나라 지배시절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그 틀을 깨려고 했던 사람이 공민왕과 신돈이었죠.(신돈)
하지만 그런 개혁은 공민왕과 신돈의 죽음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이성계가 모든 실권을 쥐게 되죠.
이성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철학적인 성리학 토대 뿐 아니라 지방호족으로서의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토대도 갖추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 군사권을 빼앗은 사람은 태종 이방원이었습니다.(용의눈물)
반대로 훈구대신들은 정치적 실권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고 ... 그 노력들은 결국 단종조의 비극을 만들었습니다.(왕과비)
단종을 몰아낸 훈구대신들은 자기들이 얻은 권력을 놓지 않고 세습시키고자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성종조에 이르러 그들의 전횡이 날로 거세졌고 왕은 보다못해 조광조등 사림의 기용으로 그들을 견제하고자 했죠(조광조)
하지만 권력자들은 반대파를 숙청하는데는 아주 능숙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론을 호도하고 왕의 눈과 귀를 막고.... 그래서 사화를 겪게 됩니다.(왕과나)
사화로 인해 견제세력을 잃은 훈구대신들은 외척세력에 의해 무너지게 되고... (여인천하)
선조때에 와서는 사림의 세력들이 대거 중앙에 포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도 권력 앞에서 초연할 수는 없는 법... 또 갈라져서 권력다툼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왜란과 호란이 벌어지게 됩니다.(불멸의 이순신)
피폐해진 나라의 재건보다는 권력에 눈 먼 사림들은 동인 서인에서 노론 소론으로 시파 벽파로 점차 자기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을 거듭하게 되죠.(이산)
그러다 결국 나라는 외국의 힘 앞에 무력하게 무너져 가게 됩니다. (명성황후)
권력을 따르던 사람들은 일본의 지배하에서도 여전히 권력을 쫓게 되었고 ...
그들은(이후 보수로 지칭) 해방된 이후 지주, 자본가들로 한민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군정시대 나름대로 눈치를 보면서 미군정의 도움으로 권력을 가지게 된 보수는 민국당의 내각제에 반대하며 이승만을 영원한 대통령으로... 라는 기치하에 자유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정말 이승만을 영원한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사사오입이라는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짓을 저지르자 당시 야당은 민국당 중심으로 뭉치게 되고 민주당이 창당되게 됩니다.
4.19로 자유당은 무너지고 처음 권력을 놓게 된 보수는 세상 이렇게 돌아가면 안된다고 매일매일 데모를 하고 여론몰이를 해 나갔습니다.
깡패를 동원하고 정부를 비판하고...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갔죠... 그리고 그들에게는 큰 무기가 있었습니다.
"빨갱이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 - 바로 반공사상이었죠...
하지만 내각제 민주당 정부는 그것을 안정시킬 만한 대안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6.25 이후 갓 10년... 전쟁의 공포는 군사쿠데타를 용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5.16으로 정부에 들어온 군인들은 정치할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사회혁신이니 개혁이니 비리척결이니 부정부패 일소를 외치면서 숨죽이고 있던... 권력을 바라보며 잠시 죽어지내던 자유당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냈습니다.
그래서 공화당이 창당되게 되었죠.
민주당은 윤보선, 박순천, 유진산등... 인물의 지도하에 분당과 합당을 거듭하면서도 공화당의 박정희에 맞서는 힘을 키워갔습니다. 제 7 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의 부정이 없었다면 김대중이 당선되었을 정도로 힘을 키웠습니다.
그러자 유신헌법을 반포하고 정당활동을 중지시켰고.. 정치적 암흑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박정희의 죽음으로 정치의 자유가 잠시 살아나는가 싶더니 전두환의 등장으로 또다시 암흑기에 놓이게 됩니다. 전두환은 5공화국 헌법으로 이전 정당을 인정하지 않고 김대중을 내란음모죄로 감옥과 구금상태에 묶고 사실상 야당의 정치활동을 금지시킵니다.
그사이 박정희 밑에 있던 공화당 사람들은 민정당에 들어가서 그들의 쿠데타를 인정하고 - 당연하죠... 박정희의 쿠데타도 인정했는데.. 전두환의 쿠데타도 인정해야죠. - 그 덕분에 그들은 권력을 쥐게 되었죠.(제1공화국 - 제5공화국)
그러다 역사적 사건이 벌어집니다.
87년 6월 항쟁...!!
민주화에 열망하던 사람들의 거센 물결이 결국 쿠데타 세력의 항복을 받아내게 되었고, 6.29 선언을 토대로 다시금 야당의 정치활동이 재개되었죠.
그리고 이어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의 분열은 결국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맙니다.
하지만 야당의 인기는 과반 이상의 힘있는 국회를 만들었고 5공 청문회와 같은 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의 분열을 책임지라는 국민의 압박은 통일민주당과 공화당의 지방선거 참패를 예상하게 만들었고 이것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힘들어하던 노태우와 뜻을 같이하게 되어서... 대한민국헌정사에 처음으로 여당과 야당의 합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만들고 맙니다.
1990년 2월 9일... !!
이날 대한민국 정치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야합으로 탄생한 민자당의 생일인 이날부터 대한민국은 권력을 위해서라면 정통성도 소신도 다 버려야 한다는... 힘있는게 최고지 힘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도 괜찮다는 정치혐오시대를 만들었습니다.
당을 보고 소신을 보고 정책을 보고 능력을 보고 사람을 보고 국민들이 뽑아 놓으면 그들은 자기 당도 소신도 정책도 능력도 인간성마저 다 버리고 철새가 되어서 훨훨 날아가 버리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홀로 야당으로 남은 평화민주당은 김대중을 중심으로 통합민주당이 되어서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고 다시금 재기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어진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의 프리미엄과 지역감정을 안은 김영삼은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노태우 비자금 폭로, 5,6공화국의 각종 비리사건, 삼풍백화점붕괴, 성수대교붕괴 등... 갖가지 악재로 결국 민자당을 신한국당으로 바꾸게 되죠.
하지만 그사람이 그사람인데.. 이름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신한국당은 김영삼의 정책들(금융실명제등...)이 반발을 사자, 묘하게도 IMF구제금융신청(97.12.5) 보름전인 97년 11월 21일
과감하게 김영삼을 버리고 이회창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으로 창당하게 되죠.
그리곤 바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참패하고 야당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야당이 된 한나라당은 여소야대 정국을 이끌면서 김종필 총리 인준 거부 강경식 이신행의원 방탄국회등... 야당으로서의 발목잡기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의원 빼내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여대야소정국으로 만듭니다.
여야간의 극심한 정쟁은 1999년에 들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공동여당(새천년민주당과 자민련)이 경제청문회를 강행하자 한나라당은 영남지역 장외투쟁으로 맞섰고, 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자금모금 의혹 사건인 이른바 세풍(稅風)사건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되자 한나라당은 서상목 의원 방탄 국회를 잇달아 단독 소집하며 이에 맞섰습니다.
한편 장관 부인 고급 옷 로비 사건,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 사건 등으로 공동여당에 대한 여론은 나빠졌죠.
여당은 이른바 386세대(1980년대 학번의 30대)의 '젊은 피'를 수혈하는 한편 이인제를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해 제16대 총선에 임했지만 유권자들의 극심한 정치 혐오증을 반영해 역대 총선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57.2%)을 기록하고 제16대 총선은 공동여당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던 여대야소(與大野小)를 일거에 여소야대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 때까지 그를 정점으로 하는 1인 보스 체제와 그를 추종하는 주류 동교동계의 권력 독점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제16대 대통령 선거(2002)를 앞두고 한국 정치 사상 초유의 정치 실험인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제로 비주류계의 노무현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해 한때 국민적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죠.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사건 등으로 2002년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한나라당에 대패했으며 그 여파로 노무현 후보의 인기도가 떨어지자 후보교체설 등으로 사분오열되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거의 자력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 새천년민주당은 스스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과의 갈등, 계파간의 갈등 등 여러 원인이 겹쳐 소속의원 일부가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창당함으로써 결국 분당되었습니다.
2004년 3월 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측근비리, 경제파탄, 선거법 위반 등의 사유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제출했고, 3월 1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물리적인 저지를 뚫고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통령 탄핵사태는 4월 15일에 치뤄진 제17대 총선의 큰 쟁점이 되었습니다.
결국 탄핵에 가담했던 새천년민주당은 민심을 얻지 못하고 지역구 5석, 비례대표 4석을 얻는데 그쳤고, 10석을 차지한 민주노동당에게 제3당의 자리마저 내주며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2004년 5월 1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며 얻은 것이 없는 총선이 되고 말았죠.
한나라당 역시 탄핵의 여파로 제2당의 명맥은 유지했지만 많이 힘빠진 모습이었죠.
하지만 박근혜라는 정치권의 거목을 키워내는 효과를 크게 거두면서 훗날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여권의 위기론이 대두되고 한나라당의 선거때마다 압승이 이어지면서 한나라당 대권도전은 치열하게 전개되었죠. 서울시장, 청계천, CEO의 이미지로 대두되는 이명박은 박근혜의 견제를 잘 극복해내면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찢겨진 여권과 미약한 문국현은 견제할 힘조차 부족했습니다. 다만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이회창의 세번째 도전이 눈에 잠시 띌 뿐이었죠.
대선에 이은 18대 총선도 여전히 대선의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대운하공방이니 의료보험민영화니.. 이런 얘기들은 큰 물줄기에 영향을 주지 못한 체로 한나라당과 보수층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누구도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지 못합니다.
한나라당의 정통성? 물론 고려시대 지방 호족으로 부터 내려온 지배층 논리를 닮은 정통성은 잘 갖추고 있죠.
그렇다고 민주당등의 야권도 그들 나름의 정통성은 얘기할 수 있겠지만 온갖 비리와 권력 다툼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과거청산.. 과거청산.. 그게 뭐 중요하냐? 이젠 경제를 살려야 한다...!!
어느 누구도 정통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어느 누구도 과거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곤 대한민국 현대사 마저 고치고 싶어하죠...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죠.
과거를 보면 현재가 보이고 현재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권력이란...
모이면 분열하고 분열했다가는 다시 모이고 ...
그 중심에 국민이 잠시 끼었다가 튕겨져 나가고 또 끼었다가 튕겨져 나가고...
한나라당이 거대화 되었으니 다시 분열하겠죠.
민주당은 쪼개졌으니 다시 모이겠죠.
언제쯤 국민이 그 사이에라도 잠시 끼어볼 수 있을까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