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선거기간 유시민 지지자들이 보여준 함성과 열정은 후보가 낙선함으로써 그대로 씁쓸한 해프님으로 끝날 것인가. 전혀 뚫리지 않는 바위처럼 견고한 대구정서에 유시민의 도전은 무모한 계란에 불과한 것인가.
잠 못 이루는 주말 밤에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실 국내의 모든 언론으로부터 외면받아 일반 국민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우리들의 공감대가 과연 우리만의 에피소드로 끝나냐 말이다. 수성대첩에 참여한 유벗들의 행동은 확신에서 비롯되었음에도 후보가 낙선함으로써 현실감각이 모자라다든가 무모한 유빠들의 광기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역주의라든가, 연고라든가, 뉴타운 개발같은 이기주의적 동기와 전혀 무관한 지지자들이 자발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면서 참여했기 때문에 그런 지적은 가당치 않다.
확실히 이번 유벗들의 거사는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정치역사에 일대 획을 긋는 일대 사건, 말하자면 후일에 국사교과서에 나올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유시민이 당선된들 자기의 이익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 하나만을 밀고 나간 정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이념에 대한 헌신성. 이것을 생각하면 수십년 전 스페인 내전에서 아무런 댓가없이 그것도 남의 나라 전쟁에 기꺼이 목숨바쳐 싸운 국제여단의 용사들이 떠오른다. 수성을과 스페인 내전, 유벗들의 함성과 국제여단...
어찌 보면 시간과 공간으로 아무 연관없는 이 두 개의 사건에는 이번 선거결과가 너무도 부끄러워서, 잘 산다고 뻐기며 돌아다니는 한국인의 정치의식이 이렇다는 사실을 외국에서 알까 창피해서 더욱 가슴 저리는 공통점이 담겨있다.
국제여단의 활동에 대해서는 '이기지도 못할 전쟁에 끼어들어 공연히 전쟁기간만 늘였다'는 비난도 물론 있다. 더구나 5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가 기승을 부릴 때 '공산주의자들'의 계략이었다는 검증되지 않은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여단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 나라도 아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자기 비용을 들여가며 1930년대 창궐하는 파시즘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초개같이 목숨을 바친 그들의 활약이 세계역사의 진보에 공헌한 것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국제여단원들의 활약은 세계적인 명사들, 가령 헤밍웨이나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네루다, 간디, 브레히트 같은 지성들이 참전하거나 적극 지지함으로써 일체의 비난을 무색하게 한다. 오죽하면 '세계양심의 시험장'이라 했을까. 실제로 파시스트 프랑코가 지배한 스페인은 반군의 승전 이후 철저히 후진국으로 머물렀던 역사가 국제여단의 정당성을 입증해준다.
50여개국에서 자발적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전쟁의 아마츄어로서 이름 없이 죽어갔다. 지금은 역사의 이야기거리로만 남은 그들의 행동이 과연 무의미한 것이었나. 그들의 죽음은 아무 댓가 없는 헛된 것이었을까.
자발성, 자기 믿음에 대한 실천력, 순수한 헌신성. 이것만 보더라도 그들의 정열과 투쟁은 역사에 두고두고 이야기되어야 한다. 인간이 먹고 사는 문제, 이해관계가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을 때, 옳고 그른 기준이 인간의 정당성을 증언할 때 그리하여 인간이 이성적이란 평가를 받을 때 그 자발적인 헌신성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믿는 한 민주주의가 지금까지는 최선의 정치라고 믿을 때, 아무리 변종 파시즘이 현 세계나 한국사회를 지배한다고 해도 그들의 활약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마치 지난 수성을에서의 그 뜨거운 함성이 유시민의 낙선과 전혀 상관없이 한국 정치문화의 희망을 싹티우고 그 희망의 밀알이 될 것임을 우리가 믿는 것처럼. 수성을이 한국정치의 '양심의 시험장'이란 것을 우리가 믿는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