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님! 대한민국 복지정책의 '최대 수혜자'(자칭)로서, 이렇게 글월로 나마 인사를 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암담하고 긴 터널을 지나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몇 번의 사업실패 후, 택시운전 - 고기잡이선원 - 공사현장 인부 - 농산물시장의 리어카꾼으로 약 15년을 전전하며, 아무런 희망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고, 오직 목표라고는, 동생집에 맡겨 둔 하나 밖에 없는 내 자식 고등학교 졸업시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 꿈마져도 너무 컸던 것일까요? 결국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 1년여를 남겨두고, 거리에 나 앉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작으나마 빚까지 얹혀져있어 "신용불량"이라는 굴레 때문에, 취직은 아예 꿈도 못꾸었었죠. 정말 딱 '죽고싶다'는 생각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생각다 못해 터덜터덜 찾아간 곳이 동사무소였습니다. 그냥 우리 애 학교만 다닐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상담을 하다보니 제가 '조건부수급자' 요건이 되고, 아이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학비지원이 된다는 믿을 수 없는(?) 소리에, 제 귀를 의심했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너무나 기뻐서 아이에게 전화로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마치 제가 학비를 번 것 처럼 격려까지 해주었답니다.
소식을 접한 형제들이 무슨 상의들을 했는지, 자기들 끼리 조금씩 돈을 모아 저와 아이가 거처할 수 있는 곳도 마련을 해 주더군요. "구사일생이란게 이런거구나" 라고 생각하며, 더 힘차게 일자리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상담할 때 '컴퓨터는 많이 다뤄봤지만 자격증은 없습니다' 라고 한 말을, 사회복지사분께서 기억을 하고 계셨나봐요. 초등학교 행정실의 사무보조 일을 주시더군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감사함이 밀려들었습니다.
출근 며칠 전, 아이에게서 '사무실에서는 주로 엑셀 이라는 프로그램을 많이 쓴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바로 친구에게 부탁해서, 친구 사무실의 컴퓨터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 표작성 정도는 하게되었습니다. 첫 출근 하던날, 아니나 다를까 첫 테스트가 표 작성이었습니다. 여유롭게 작성해서 제출하고나니, 제 책상을 하나 내 주시더군요. 그런데, 그 때부터 행정실장님이 계속해서 저에게 요구하시는것이 "자격증 따라"는 것이었습니다. "알았습니다"하고는 계속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가 생각해도 뭔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끝에 학원에 다니게되었습니다.
이때 부터 MOS 자격을 시작으로 하여, 자격증 사냥이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그해 7월 부터는 '학점은행'에 학습자 등록을 하여 학사학위를 위한 도전도 시작되었죠. "사무자동화 산업기사"를 취득한 이후에는 더 바빠져서, 야간에 간헐적으로 나마 시간강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약 1년여 간의 학교근무를 마치고, 그 후에도 약 1년간 더 시간을 투자한 결과 2008년 2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학사학위와 함께, 정보처리기사를 비롯한 19개의 자격증을 갖게되었고, 취득한 학력과 자격증을 바탕으로 '직업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도 아빠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못내 기뻤던지, 고등학교 졸업 후에 1년간 공부하여 JLPT(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취득하고, 올해 방송통신대학 일본학과 1학년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제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복지'였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고, 그 최대의 수혜자로서 분명 이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해서 대통령님과 국가가 베풀어주신 이 은혜가 저 하나에서 멈추지 않고, 받은 은혜를 주변의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는 그런 작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내내 건강하셔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또 다시 기운 잃지 않고, 나눔에 있어 인색해지지 않도록 격려도 해주시고 기원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통령님과 그리고 가족 모든 분들이 행복한 나날이 되시도록 멀리서나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