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축산인 김창현씨 단독인터뷰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서 한우 160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창현(여·63)씨는 축산업계의 '스타'다. 1983년, 서울 상계동에서 소규모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다가 홀몸으로 내려와 '한우 키우기'에 나서 25년 만에 성공한 영농사업가로 변신했다. 국내 최초로 한우 무항생제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고 지난 14일엔 신지식농업인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김씨가 일반인에게 크게 알려진 것은 지난 대선 때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 찬조연설자로 나서면서다. 그는 당시 구수한 사투리로 "제 별명이 소박사인데 좀있으면 나도 소도 다 굶어죽게 생겼다"며 "(축산농가에 대해) 잘 못 하면 내가 5년 후에 소 150마리를 끌고 가서 가만 안 둬"라고 말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는 "지금 우리가 찍어줄 테니 너 지금 빚지는 거다. 대통령 되면 큰 빚쟁이 되는 거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빚 다 갚아라, 못을 확 박아놓읍시다. 이명박 대통령은 반드시 갚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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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쇠고기 개방 확대 발표'가 있은 지 5일 지난 23일, 그를 생극면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색깔이 들어간 안경에 붉은 남방, 푸른 추리닝 바지 차림이었다.
― 서울 상계동에서 소규모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다 내려왔다고 들어왔습니다.
"원래 여기가 우리 고향이야. 애들 공부시킨다고 서울에 10년 정도 있었던 거지. 근데 83년도에 애들도 인제 크고, 내가 촌티나잖아요. 도시에서 못 살아요. 그래서 시골로 오고 싶은데 서울에서 산 폼이 있으니 농사 짓긴 그렇고, 촌사람이라 장사는 원래 할 줄은 모르고. 그런데 가축은 내가 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소를 기르게 됐지."
― 이전에 소를 키운 적이 있었는지요?
"아 전혀 몰라요. 아무 것도 몰랐어요."
― 그런데 왜 하필 많은 가축 중에 소를 키웠나요?
"1980년인가
전두환 정권이 '개방농정 복합영농' 한다고 쇠고기를 수입 개방했거든. 그래서 소값이 바닥이었어. 내 생활신조가 뭐냐면은 제일 싼 물건을 사면 돈을 벌진 못해도 밑지는 법은 없는 거거든. 그래서 소 파는 친구한테 가서 500만원 딱 주고 '이게 내 전재산이니까 소 좀 사줘라' 그랬지."
― 당시 그래서 소가 잘 팔렸나요?
"그땐 사료가 비싸니깐 사료를 못 먹여서 다른 소들이 다 비쩍 말랐었어요. 난 이제 소가 좋아서 기르는 거니까 사료를 팍팍 줬지. 그러니까 소가 찌고 몇 십 만원씩 남기고 팔고. 그렇게 돈 벌더라구.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잘했어요."
막힘없이 술술 대답해오던 김씨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지금이 문제야"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되물었다. "타격이 크겠죠." 짐작으로 대답했다. 김씨는 "그게 문제라구, 문제. 그래서 얼마치가 무너질 것이며 얼마나 살아남을 건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했다.
― 이전에도 힘들 때가 있지 않았나요?
"IMF 때 그랬지. 달러가 올라가니까 수입 곡물 값이 올라 사료가 굉장히 비쌌고, 경제가 무너지니까 쇠고기를 안 먹고. 당시 우리 소가 많았어요. 전국적으로 290만 마리였거든. 옛날에 300~400만원 하던 소가 50~60만원으로 확 떨어졌어. 암소고 송아지고 마구 내다 파니까 소가 1년 내로 없어져버렸지. 그래가지고 290만 마리 하던 소가 1년 만에 137만두로 딱 떨어지는 거야. 그때부터 소 가격이 올라서 축산농가들이 회복이 됐죠."
― 처음 고급육을 취급한 게 그때쯤인가요?
"맞아요. 그런데 일반 황소 같은 건 1년만 기르면 되지만 고급육을 얻어내려면 2년을 길러야 돼요. 그러니깐 또 타격을 입겠는거야. 사료값이 많이 드니까. 그렇다고 소값이 배로 뛰는 것은 아니고. 이런 생각 하고서 2002년도부터 부산물 넣어서 만드는 발효사료를 만들었어요."
당시 김씨 우사 주변에 하루 5톤씩 식물을 키우고 남은 부산물을 뱉어내는 버섯공장이 있었다. 공장에선 버섯을 컵 같은 용기에서 키운 뒤 버섯이 다 크고 나면 배지(培地)를 버렸다. 김씨는 이 배지를 가져왔다. 배지는 단순히 흙이 아니라 콩껍질, 톱밥, 비지, 쌀겨처럼 소 사료에 들어가는 원료였다. 톱밥을 날로 먹이면 소가 소화를 할 수 없었기에 맥주밭에서 얻어온 부산물을 섞어 발효를 시켰다. 얻어오는 것이 공짜였기에, 소에 드는 사료값을 30% 정도 절감시킬 수 있었다. 1등급 출현율도 80%이상을 유지했다. 김씨는 당시 "'이거면 돼!'라며 환호했다"고 했다.
― 사료값이 30% 싸다면 지금도 경쟁력 있는 것 아닌가요?
"아우. 너무 많이 올랐어요. 작년에 ㎏당 180원 하던 사료가 지금 285원이고요. 그래서 지금 당해낼 수가 없고, 큰일이네. 그런데 비싼 거 먹이다가 저질로 만들면 등급이 안 나오고 소가 크지를 않고 그래서 버티고 가는 건데… 말도 못하게 불안해요."
― 최근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발표 이후 고기소 시세가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2008년도 들어서 39마리를 팔았어요. 그러고 2억5700만원 받았으니까 650만원 조금 넘어. 한 660만원 받았네, 평균이. 작년엔 694만5000원 받았는데. 그러니깐은 한 50만원 떨어진거야."
― 정부가 대책을 내놓았는데.
"(피식 웃으면서) 미친 인간들이야. 대책 발표한다 그래서 잔뜩 기다렸더니 그 XX을 하더라고. 그거 가지고 되냐고."
― 도움이 별로 안 되나 봐요?
"그럼. 도움 하나도 안 되는 거요. 브루셀라병만 봐도 그래. 원래 옛날에 다 100% 보상해줬어. 그러더니 작년에 2% 이상 브루셀라병이 발생하는 지역에는 60%만 해주겠다, 이렇게 조여 들어갔어. 언젠 안 해주던 건가?"
- 도축세 폐지도 했잖아요.
"도축세는 우리가 안 내요. 도축업자들이 내고, 유통업자들이 내는 거지. 전혀 관계가 없는 거에요."
이쯤에서 대선 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잘못하면 소 160마리 끌고 가서 가만 안 둔다고 했는데, 지금 정부가 하는 것 보면 어떻냐"고 물었다. 잠깐 침묵한 김씨의 말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지금 정부가? 글쎄요. 여론으로 보면 '이 대통령은 농촌이 안중에 전혀 없는 사람이다'고 걱정을 해요. 어제도 한 친구가 놀러와서 그런 얘길 하더라고. 우리 농촌 그냥 무너진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아 대통령 혼자 정치하냐. 국회의원이 수백 명이고 장관들이 각 부처에 있고 거기에 다 전문가들이 있고. 대통령 하나가 농촌을 모른다고 해서 농촌 외면 당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고."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내가 대통령 옹호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죠?"라고 되물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대통령이 물론 틀은 세워놓겠지. 그렇지만 그 밑에서 움직이는 거는 정치하는 사람들 문제지. (이 대통령이) 기업도 큰 기업만 한 사람이기 때문에 중소기업 다 죽일 거다, 농촌 사람들 다 죽일 거다, 지금 여론들은 그래요. 그래서 모르겠어. 그게 맞는 말인지."
― 이 대통령이 미국에서 직접 쇠고기 전면개방을 발표했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고. 이명박이 부시 못 이겨요. 그건 세 살 먹은 어린 애도 아는 거요. (
노무현 정권 때) 다 이미 결정이 나 있던 거야. 그거는 어차피 힘에 밀리는 거에요. 한미 FTA(
자유무역협정)은 세계화 추세에요. 거기에 조건이 좋아야 하는데 조건은 또 힘의 논리야. 에휴"
― FTA 합의는 어쩔 수 없다는 건가요?
"세계화 추세에요. 거기에 조건이 좋아야 하는데 조건은 또 힘의 논리야. 그런데 정치인들은 제 주머니 착복할 생각만 하고. 에휴."
― 그럼 노 정권도 어쩔 수 없이 한 게 아닐까요?
"그럼요. 그때도 하자고 하니까 한 거야. 어쩔 수 없이 한 거야. 근데 그때 계획을 할 때 자동차 사서 팔고 남은 돈으로 농촌을 살리는 것처럼 계획을 짜놨으면 이런 분란도 안 나죠. 농촌은 생각 안 한 거지."
― 현 정권에 대해 좀 실망하시지 않았나요?
"아직 몰라요. 실망하는 건 아니고. 인사 단행하고 밀어 붙이는 거 보면 뭔가 해내긴 해낼 거 같어."
― 그러니 좀더 두고봐야 한다는 건가요?
"그럼요. 끝에 가봐야 알지. 잘하고 못 한 거는 끝나봐야 알고. 그 사람 인생이 잘 살았는지 못 살았는지는 죽어봐야 알고. 내가 뭐가 뭔지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도 못하는 사람이 뭘.
― 요즘 주변에서 뭐라고 안 하나요?
"인기가 별로 없어요. 나는 촌사람만 상대를 하니까, 지금 이거 소고기 때문에. 농촌에서 소 기르는 사람들한텐 다 죽일 놈이지 뭐."
― 찬조 연설 당시 "대통령이 되면 빚쟁이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두고 봐야지. 아직 초기에 보고 너 빚 갚을 놈이다 못 갚을 놈이다 할 수 없는 거고."
― 반드시 갚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갚아야죠. 갚아야 되는 거지."
― 못 갚으면 진짜 소 끌고 서울 가실 거에요?
"끌고 가야지. 청와대로. 가서 '다 너 먹어!' 이럴 거야."
인터뷰 도중 김씨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김씨는 "대책안? 그게 무슨 대책안이야. 다 기존에 있던 건데"라고 대꾸하더니 한참 있다가 목소리를 높여 "아, 못 해요, 못 해요. 안 해요"라고 말하곤 전화를 툭 끊었다. 한 방송사로부터의 전화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4개 언론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모두 쇠고기 개방에 대한 김씨의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가진 상징성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많이 찾어. 그때는 사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했거든. 방송에서 촌사람 찾다가 저까지 왔어요."
― 대선 때도 한나라당 측에서 연락이 온 건가요?
"그럼요. 이명박 캠프에서 찾아오고 만나고. 그래서 몇 마디만 하라 그러더라고. 그래서 했는데. 처음엔 그 사람들이 연설문을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보니깐 상대방 비방하고 흠집 내고, 현 정부를 비판하고 못 살겠다는, 이런 문구야 다. 그래서 못 한다고 그랬지. 내가 정치인인가. 내가 왜 상대방을 비방하고 현 정부를 험담해? 내 친구들 중에도 상대방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할 텐데 방송에 그대로 나가봐라, 그러면 나 돌 맞는다 그랬더니, 그 쪽 담당자가 뭘 가지고 그러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연설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했지. 그 다음에 내 마음대로 한 거야."
23일 충북 음성군 생극면에서 김창현(63)씨를 만났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찬조연설자로 나서 구수한 사투리로 주목을 끌었던 그는 "5년 뒤에 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진 빚을 안 갚으면 청와대로 소 160마리를 끌고 가 '너 다 먹어'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성 기자 [김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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