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정치의 진단과 해결해야 할 과제
글 | 유재일_한국정당학회장, 대전대 교수
한국 정당정치의 현실과 문제점
정당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치제도이다. 대체로 정당은 정치체제 내에서 분열, 투쟁, 그리고 반대를 주도하기 때문에 어떤 통합된 전체의 내부에서 특정 요소와 경쟁 혹은 분쟁관계에 높여 있는 요소를 지칭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적 담당자로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그에 따라 국지적 공동체나 사회집단들을 사회 전체 또는 보다 넓은 공동체로 통합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일반적으로 정당의 기능 중 가장 목적지향적인 것은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통합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민주주의 발전 기능이란 권위주의 체제로부터 민주화로의 이행과 공고화를 수행하는 기능을 이르며, 사회통합 기능은 계급간, 지역간, 문화간, 세대간의 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하는 기능을 말한다. 이 두 기능은 민주화과정에서 동전의 양면같이 수행된다.
그런데 이같은 정당의 기능이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는 상당히 지연되고 원활히 수행되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무정형성과 불가측성을 큰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래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정치는 시민사회의 성장과 정치적 경쟁틀의 제도화에 힘입어 괄목할 만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최근의 일련의 정치현상을 볼 때, 한국정치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표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정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것처럼 원칙과 상식에 벗어난 권력쟁투의 수단으로 비춰지고 있고, 정당은 과두엘리트 권력구조를 온존시키고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대체로 정당이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의 기능을 능동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때, 질 높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핵심적인 과제는 책임정당정치의 올바른 자리매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정당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국가-정당-시민사회’ 간의 균형 있고 조화로운 관계정립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정당은 이같은 위상을 정립하는 데 많은 한계들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는 여전히 국가에 대한 자율성이 제한된 정당체제의 구조적 요인과 당내민주주의의 결여에 따른 정당 내부의 제도적 요인이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정당은 사회의 전반적 선진화를 견인하는 주체라기보다는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점에서 책임정당정치의 구현은 질 높은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선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정치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점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정당정치의 개혁 방향과 과제
먼저 정당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각 정당들이 이념과 비전을 갖춘 정책정당으로 변모되어야 한다. 사회의 다원화는 사회구성원 간의 상충하는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의 이념적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지역대결 구도에 입각한 정당체제로는 국민통합을 이룰 길이 없다. 따라서 사회의 부분을 대표하면서도 보편성을 추구하는 정책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 지역정당, 인물중심의 정당, 계파패권의 정당에서 벗어나 다양한 지역이익과 계층이익을 대변하는 경쟁적, 다원적 정당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기층대중의 정치참여를 촉진시켜야 하고, 선거제도도 비례대표제 요소를 대폭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사회세력의 정치진입을 위한 여건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당정치의 제도화는 당내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정당은 여야를 막론하고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제도화하지 못한 채 소수의 지도부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민주적 참여의 확대를 정당조직의 틀 내로 통합해 내기 위해서는 당조직의 민주적 통제장치의 제도화가 필수적이다. 하향적이고 타율적인 의사소통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당직과 선출직 등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경선제를 도입하고, 공천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또한 각급 경선에서 대의원대회의 자율적 결정범위를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이같은 실질적 경선의 확보를 위해 필수적인 선결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당정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과학적 정당, 전문화된 정당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정당이 정치체제를 주도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의 이익을 표출하고 집약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현재 정당 당료들의 전문성은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정당은 정치적 훈련과 각 분야의 전문성을 함께 갖춘 정책연구기구나 전담인력을 확보하여 정책능력을 제고하는 과학화를 추구해야 한다. 한편 정당이 과학화, 전문화되기 위해서는 중앙당과 시ㆍ도 지부, 지역조직 사이의 적절한 역할분담이 필수적이다. 현행의 지역조직은 선거에 대비하는 일시적 선거조직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화 된 대규모 중앙당중심 체제를 지역조직 중심체제로 개편하여 지역조직의 자율성을 제고시켜야 할 것이다.
정당정치가 책임정당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당 지도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체제로부터 벗어나 다수의 대중이 참여하는 대중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이 당원을 훈련하고 지도자를 충원하는 통로로서의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운영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당원들의 당비를 기초로 하는 아래로부터의 참여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과의 유기적 연관을 통한 정당의 하부기반의 구축은 고비용의 정치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이 중첩된 소속감을 통해 사회갈등을 완화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책임정당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당 조직 및 운영방식에 있어 과감한 변화가 요구된다. 우선 지금까지 비대화되어 있던 중앙당이 대폭 축소, 경량화 되어야 한다. 대체로 중앙당의 업무는 대통령 후보선출을 위한 경선을 관리하며, 대통령선거ㆍ국회의원선거ㆍ지방선거 등을 기획하고 지원하는 업무와 정당의 자금을 모금, 관리하고 정책을 개발, 홍보하며 당원을 관리하는 업무, 그리고 입법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 중 중앙당의 업무를 경량화하기 위해서는 정책개발과 입법 업무를 원내정당에게 맡길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당정치의 발전문제와 관련해서 선거제도의 개혁과제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선거제도는 후보와 유권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정당 간의 경쟁관계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실 정당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선거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대응전략을 달리한다. 이는 정당으로 하여금 가장 효율성과 전문성을 갖는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한다. 또한 정당체제는 선거결과로 인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 점에서 선거제도는 정당체제와 친화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당이 책임정당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거개혁도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출처 : 민주시민교육웹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