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의 '에필로그'
"2000년 부산에서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낙선하시고 그날 밤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 노무현 시대의 서막이었다면, 2008년 대구에서 '우리'가 했던 것은 그 공연이 최종적으로 막이 내리기 직전에 있었던 마지막 공연, 앞으로 '몇 년' 간은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열리지 않을 공연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수성대첩을 아름답게 매듭짓기 위해 찾은 4월 13일 대구, 어느새 낯익어진 수성거리에서 하루 동안의 낙선인사를 마치고 유시민 후보 선거사무소로 모인 전국의 유티즌들 앞에서 시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2008년 봄, '그날'의 시린 패배 이후 한 달이 지났네요. 그 일요일 저녁, 아마도 대구에서는 마지막일지 모를 유티즌들과의 만남.
시민님은 우리에게 마무리 감사의 인사와 함께 2008년 선거에 대한 평가를 시작으로, 앞으로 유시민과 유티즌이 걸어야 할 '길'에 대해서 선거 때보다는 한결 담담해진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공식적으로 전하는 유시민의 육성 아침편지 혹은 영상 메시지 쯤 되었었지요.
그날 시민님의 메시지에 대해서 토막토막 떠올린 몇 분들이 계셨지만 차분한 되새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분과 우리가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이심전심으로 가슴에 담아두려 했던 것이 지금까지 한 달여 우리들 모두의 심경 아니었을까 싶네요. 시민광장이 처음 만들어지던 1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두 번의 큰 산을 그야말로 숨가쁘게 넘어온 유티즌들의 노독도 한 몫 했겠지요.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얼마 동안이라도 이대로 쉬고 싶은.
하지만 더 기억 속으로 묻혀지기 전에 한번 쯤은 새겨보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새벽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무감해지고 무력해지기 전에. 무엇보다도 '정치인 유시민' 없는 '정치인 팬클럽' 시민광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혹 뜬금 없는 뒷북 녹취록처럼 보이시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함께 짚어보셨으면 합니다.
평가와 원칙, 우리가 옳았다면 기다려야 하는 것
이어진 시민님의 말씀, 2007 대선부터 2008 총선까지 우리의 패배에 대한 간결하지만 냉정한 '평가'입니다.
"대통령님 퇴임하셨고 아주 몇 사람이 살아남았을 뿐 함께 했던 배우들 대부분이 다 퇴장을 했습니다. 막이 내린 거죠. 다시 커튼콜 해봐야 나올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 정치세력, 정당, 정치인은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아주 냉엄한 규칙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잘했든 못했든 국민의 지지를 잃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오늘 이런 결과가 온 것이죠."
앞으로 유시민과 유티즌의 길에 대한 큰 '원칙'입니다.
"우리에게 오류가 있었지만, 방법적으로 서툴렀지만, 우리가 지향했던 바는 옳았다면. 우리 내면의 확신처럼 진정 옳았다면, 국민들이 언젠가는 인정하고 다시 불러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조용히 힘을 비축하면서 국민이 다시 불러주실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우리를 다시 찾지 않고 그리워 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데 자꾸 나서서 뭘 하겠다고 하는 것은 실익도 없고 현명하지도 않은 일이 아닐까,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유시민의 길, 돌아온 '지식소매상'
이제 유시민은 혼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기라고 하십니다. 정치인 유시민은 이제 당분간 없답니다.
"저 유시민이 가장 극단적인 삶의 변화를 겪게 될 사람입니다. 생활인으로 돌아갑니다. 저를 대신해서 주변에서 도와주던 사람들은 더 이상 없습니다. 이제 홈페이지도 블로그를 새로 오픈해서 스스로 글을 올리려 합니다."
곧 지금의 홈페이지, 유시민의 '함께사는 세상'도 지나간 이름표를 달고 역사관으로 들어가겠네요.
"대구 지역에서 어떻게 활동할 거냐.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전 국회의원, 전 장관 혹은 원외 정치인들이 하는 것들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구경북 지역과는 '지식인'으로서 다시 관계맺기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정치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이 지역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기 위한 활동들을 할 계획입니다."
정치인 유시민은 이제 없다는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정치인 대 유권자로서의 관계는 낙선인사를 충분히 하는 것으로 매듭짓고요. 이제는 다시 지식인으로 돌아온 유시민과 지역민들과의 관계로 새로 맺어져야 합니다.
희망대로라면 다음 학기부터 대학에서 강좌도 열고, 지역경제 발전론을 연구하는 연구자포럼 같은 것을 다른 분들과 만들어서 대구경북 지역경제가 어려워진 이유와 앞으로의 활로를 이론적으로 탐색하는 모임도 할 수 있습니다.
공직생활 5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국회의원도 아니고 소속 정당도 없기에 정치인 행세하기도 힘듭니다. 역시 지역주민들하고는 지식인으로서 만나는 것이 제일 좋겠다, 그렇게 판단합니다."
'쓸모있는' 지식인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신문에 기고를 하는 일을 병행할 수도 있겠습니다. 과거 시사평론가, 저술가, 지식소매상 시절처럼 지식을 다루는 활동을 통해서 만나는데, 일반 주제보다는 대구경북 지역과 관련된 주제를 깊게 탐색해가는 집필 활동이나 강연을 할 겁니다.
철저히 기능적으로 유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활동하고 있는 영역에서 기술적이고 기능적으로, 효율성 측면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유티즌의 길, 슬퍼하지 말고 화내지도 말고 행복하게 '새날'을 준비하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들 순서입니다. 비록 졌지만 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각자의 생업으로 복귀하고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길이 된다고 하십니다. 담담하게 오늘의 패배를 받아들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다 일상으로 돌아가셔야죠? 사업 하시는 분들 돈 많이 버시고,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 능력있고 성실한 조직원으로 인정받으시고, 가정에서도 친구들에게도 잘 하셔서 (나중에 국민들이 우리를 다시 찾아주실 때 - 새벽 생각^^) 지금보다 도와주실 분들이 10배 20배 더 많았으면 합니다."
그럼 정당은 안 만들 거냐?
"창당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고민하죠.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데 우리가 자꾸 나서는 것은 오히려 일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습니다. 언제나 밤이 많이 깊어야 새벽이 동터오는 것처럼, 우리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러 현실은, 병증이 깊어져야 비로소 국민들이 다른 대안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충분히 밤이 깊을 때까지, 자지 말고, 아침이 올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힘을 기르고, 실력을 키우고, 우리가 서 있는 모든 곳에서 인심을 얻고, 앞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지 모르겠지만 차분하게 준비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백설공주가 없어도 계속 행복해지고 싶은 일곱 난장이들
그날의 녹취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 때, 시민님 말처럼 쿨해질 수 있을 때라야 되새김이 가능할 것 같았기에, 지금껏 미루어 두었던 때 늦은 정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미 모두들 알고 계시듯,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길'을 당부하는 것으로 시민님의 몫이 끝났을 뿐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하게 우리의 새날을 준비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탐색하고 실행해야 하는 우리의 몫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백설공주 없이도 일곱 난장이들은 여전히 행복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한 두 명의 혜안으로 이 만만치 않은 화두가 호락호락 풀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다시 열리기 힘들 것 같은 무대가 마침내 조금 전 막을 내렸다는 시민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아무리 둘러보아도 엉킨 실타래처럼 답답한 현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는 시민광장입니다. 비록 말 타고 오는 초인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지금까지 이곳에는 '연극이 끝나고 잔치가 끝났어도' 조금도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8천여 명의 유티즌이 있습니다.
지금껏 그래왔듯 당연히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갈 길입니다. 그분이 없기에 앞으로의 길은 더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새벽도 그 중의 한 명으로 그저 짧은 생각 몇 줄을 덧붙이면서 오랜만의 글을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시민광장, '시즌2'
용량 미달의 현 이메가 정권에 대한 시민의 저항은 당장 탄핵이 이루어지고 말고의 문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시기와 규모와 방법에 관계 없이 범국민적인 불복종운동으로 이어질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또 한 번 시민주권의 승리를 거머 쥘 그날까지 계속해서.
그 전선에서 하나의 깃발을 나누어 받으려 탐색하거나,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이메가 패러디 국민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이 시민광장의 새 길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껏 우리가, 상대의 실패, 상대의 실정으로부터 유래된 반사공간을 기반으로 활동한 적은 없기에 그렇습니다. 부정은 오래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믿는 것은 유쾌한 긍정의 힘이고, 여전히 변함 없는 우리의 진지가 희망의 베이스캠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선택에 따라, 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지식소매상', 지역의 '쓸모있는' 지식인으로 그분이 지내시는 동안, 시민광장에 '정치인' 유시민은 없습니다. 그분은 그 이상을 말씀하시고, 짧게 생각하고 싶은 것은 우리들인데, 아무리 짧게 생각해도 1년 이상입니다. 유시민이 선택한 유시민의 길은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무엇보다도 그분이 가벼워지고 싶어 하십니다. 가볍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시민광장은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받아든 시험지가 되었습니다.
정치인 유시민 없는 시민광장은 '한시적으로' 정치인 팬클럽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존립근거를 잃은 것이고 그렇다고 지식인 팬클럽 하고 있기에는 광장이 너무 크게 열려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광장을 사업을 먹고 사는 조직입니다. 정체되면 흩어집니다. 경험 속에 쌓아 올린 우리의 유산이 그렇게 말해줍니다. 그분이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우리는, 흔들림 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새롭거나 혹은 한시적인 사업으로 시민광장을 채워내야만 합니다.
그 희망의 베이스캠프가 할 일이 무엇인지는 이미 모두들 알고 계십니다. 자,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