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돌베게/유시민 지음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미국뿐만 아니라 EU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일본, 중국 등과 동시
다발적 FTA를 추진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그러면 FTA를 무조건 찬성하는 것만이 옳은 일일까요? 보수를 자처하며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치켜세우는 지식인과 전문가들, 비슷한 신념체계를 가진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동시다발적 FTA를 성사시킨다고 해서 한국경제가 꼭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FTA는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할 기회를 얻는 것일 뿐, 그 자체가 성공을 약속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미 FTA를 격렬하게 반대한 진보세력의 평소 주장을 깊이 있게 경청할 필요가 있을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저는 급진적 진보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진보적 시민단체, 진보적 지식인, 진보적 언론인들과 사이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제가 그들을 먼저 비판한 적은 없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비판해도 크게 반박하지 않았습니다. 논쟁하는 것이 장관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습니다. 보건 분야 진보적 시민단체와 지식인들은 장관 지명 직후부터 저에게 '시장주의자' 라는 딱지를 씌웠습니다. 장관을 1년 정도 하고 나니 무려 200여개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저를 '최악의 보건복지부 장관' 으로 지목해 '국민불신임장' 이라는 것을 주었습니다. 제가 전달 받은 일은 없는데, 어쨌든 신문.방송에는 받은 것으로 나왔지요. 실제로 그렇게 했는지는 역시 모르겠으나, 여러 차례 저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장관실에서 시민단체와 이익단체, 협회의 대표들과 면담하거나 정책토론회를 연 일이 무척 많은데, 유독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대표들하고 면담할 때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장관직을 사퇴한 후에도, 저를 대한민국 보건복지정책의 틀을 망가뜨린 주범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보건과 복지 분야에서 국가가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의료기관과 의료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부모 잃은 아이들과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더욱 너그럽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한미 FTA가
체결되면 매년 2조원이 넘는 돈을 미국 제약사에 빼앗겨 환자들의 진료비와 약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의 제약산업이 망하고 건강보험 재정은 파탄날 것이며, 돈이 없는 사람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맹장염 수술비가 1,000만원으로 오른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한미 FTA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건강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것이기 때문에 결사반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 평소 이른바 성장론자의 반대편에서 끊임없이 평등과 사회정의 실현을 요구합니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과 친했던 것도 아닙니다. 보수파 또는 성장론자들은 저를 급진좌파, 분배론자라고 했습니다. '작은정부론'과 '세금폭탄론' 으로 보건복지지출을 확대하려는 모든 시도를 봉쇄하면서, 정부가 이 분야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재원대책도 없는 선심용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저는 분명한 사람이고 제가 장관으로서 편 정책도 하나인데, 평가는 전혀 다른 둘입니다. 저도 때로는 제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도 보건복지부 장관인 저를 자기 진영으로 끌고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양쪽 모두와 힘겨루기를 하면서도 둘 모두를 조금씩이라도 만족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소통이 막힌 곳에 대립이 자란다.
저는 진보파에게 물었고, 지금도 묻습니다. 당신들은 보건복지지출을 확대하고자만 하는데, 미디어와 정치권의 압도적 지원을 받는 보수파가 펼치는 '작은정부론'과 '세금폭탄론'의 장벽을 넘어설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원하는 한미 FTA와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정책을 수용해줄 수는 없습니까? 그런 조건으로 보건복지지출 확대에 대한 보수파의 동의를 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것은 가지려고 하고, 남들이 워하는 것은 결사반대만 하십니까?
저는 또한 보수파에게 물었고, 지금도 묻습니다. 당신들은 한미 FTA만 체결하면 대한민국이 무조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FTA는 대한민국 기업이 세계의 선진국과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기회를 부여할 뿐 성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요? 한국의 경쟁력은 근복적으로 사람에게서 나오는데, 국민을 더 건강하고 똑똑하고 강인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투자를 막으면서 도대체 무엇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합니까? 진보파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작은정부론'과 '세금폭탄론' , '좌파정책 망국론' 으로 깔아 뭉개면서 당신들이 원하는 것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한민국은 심각한 담론의 분열에 직면해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진보파와 보수파 사이에 접점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접점조차 없으니 교집합이 나올 수 없고, 교집합이 없으니 타협이나 통합은 더욱 어렵지요. 만나지도 못하는데 무슨 수로 합의를 도출합니까? 소통이 막히는 곳에서는 분열과 대립이 자랍니다. 나라가 더 발전하려면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야 하는데, 이렇게 상대방 주장의 핵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은 채 오직 그 주장이 내포한 약점만 끄집어내어 공격함으로써 자기 견해를 정당화 하려는 풍토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더 행복해지기는 어렵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면 눈앞이 캄캄합니다. 주의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논쟁의 수준이 너무나 저열합니다. 한 사회의 수준은 장기적으로 국민의 전반적인 지적수준이나 경험 수준에 따라
결정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지적 엘리트들의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담론 시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을 느낍니다.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그렇습니다. 어느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반드시 틀린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생결단식 논조가 판을 칩니다. 사실 자체와 언론인들의 주관적 신념이 뒤죽박죽 뒤엉긴 기사들이 곳곳에 출몰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합리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해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둘 다를 해야 합니다. 성장주의도 평등주의도 혼자서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제 주장을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개방화를 즐기자. 동시다발적 FTA를 단순한 영업적 손익계산에 따른 비즈니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구촌의 선진통상국가로 발전시키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의 한 축으로 자리 매김하게 하자. 둘째, 선진통상국가로 국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대내적으로는 대한민국이 경쟁력 있는 국민을 제대로 길러내는 사회투자국가 되도로 하자. 보수파는 선진통상국가를 좋아하고 진보파는 사회투자국가를 좋아하니, 각자 좋은 것을 하나씩 가지면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결사반대하며 피곤하게 사는것보다 좋지 아니한가?
복지정책에서 사회투자정책으로
어떤 행사에 갔더니 진행자가 저를 이렇게 소개하더군요. "심각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주무장관입니다. " 안타깝게도 보건복지부는 양극화의 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부처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양극화의 결과를 조금이나마 완화하는 역할을 했을 따름입니다. 교육부와 노동부, 여성부, 건설교통부 등 여러 부처와 힘을 합쳐야 원인에 따라 제대로 된 처방을 할 수 있습니다. 복지 정책을 사회투자정책으로 바꾸자는 저의 주장은 그저 이름만 바꾸자는 게 아닙니다. 정책의 목표와 정책 수행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사회투자는 개방의 진전에 따라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보완적 정책수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방이 선진통상국가로 발전하는 데 불가결한 필요조건이라면, 사회투자는 대한민국이 국제 경쟁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충분조건입니다.
사회투자정책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4조 규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기존의 시혜적 복지정책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개념입니다.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사람이라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겠지요. 좋은 기술, 풍부한 지식, 창의적인 아이디어, 사회적 신뢰, 이런 경쟁력의 원천은 모두 사람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경쟁력입니다. 대한민국 국민 개개인의 인지적.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이 더 커지고, 국민들이 서로 믿고 협력 하면서 살아갈수록 대한민국의 국제경쟁력은 그만큼 더 높아집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키우고 경제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때, 한번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느낄 때, 사람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합니다. 이런 일에 역량을 집중하는 국가가, 제가 말하는 사회투자국가입니다.
저는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당의장 선거에 출마해서 4등으로 최고위원에 턱걸이 당선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사회투자국가론을 당의 기본 정책으로 채택하자고 제안했지만, 정책과 무관한 정치적 대립에 휩쓸리는 바람에 언론은 물론이요 당 내부의 관심을 끄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공부가 부족해 남을 설득하기 어려웠죠. 2005년 2월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해 3위로
당선된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사회투자국가론을 정책노선으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
저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부임한 직후부터 직원들과 함께 외부 전문가들을 모시고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석달 후인 2006년 5월부터 여러 차례 사회투자정책을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채택해줄 것을 대통령께 건의했습니다. 그 결과 사회투자정책은 참여정부가 최초로 작성한 장기 국가재정계획[함께 가는 희망 한국 비전 2030](이하 [비전2030]으로 줄임)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참여정부 초기부터 사회투자정책을 연구하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정부 안팎에 있었다는 점을 함께 말씀드립니다. 그분들의 열정을 등에 업고 그분들의 지혜를 빌리지 않았다면 대통령께서 저의 건의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복지학회와 사회정책학회를 비롯한 여러 분양의 연구자들은 2006년 여름부터 사회투자국가론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을 조심스럽게 시작했습니다. 저와 보건복지부 간부들도 이 토론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은 아직 낯선 이론입니다. 이것을 어느 정도 체계 있게 정리하고 해석한 최초의 책은 임채원 박사가 2006년에 쓴 [신자유주의를 넘어 사회투자국가로]가 아닌가 싶군요. 임 박사는 2007년에 같은 내용을 훨씬 깔끔하게 정리한 [사회투자국가- 미래한국의 새로운 길]을 내놓았습니다. 관심 있는 독자들께는 두번째 책을 일독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21세기 세계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대외적으로는 선진통상국가를 지향하고, 대내적으로는 사회투자국가를 건설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제가 찾은 세계화와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법입니다. 이것이 지금 시점에서 가장 폭넓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장기 국가발전전략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무작정 FTA에 반대하면서 양극화 해소만을 외치는 것이 답이 될 수 없습니다. FTA는 무조건 좋은 일이고 국가는 작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둘 다를 하자고 주장합니다. 개방도 하고 사회통합도 하자. 국가경쟁력도 강화하고 기회의 평등도 이루자.
이 둘을 다 하면 왜 안 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반대하면서 아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상태보다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상대방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타협하고 협력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요?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자는 주장이라고 비웃는 지식인도 있었죠. 물론 이론의 영역에는 네모난 동그라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네모도 아니고 동그라미도 아닌, 그렇지만, 네모 같기도 하고 동그라미 같기도 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동그란 네모면 어떻고 네모난 동그라미면 또 어떻겠습니까.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쓰임새가 있는, 그런 대안을 찾아내 국민들께 제안하고 토론하고 실현하는 것이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