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돌베게/유시민 지음. (페이지 52~ 63.)
세계화 시대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사람 문제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세계화는 외부에서 온 도전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금 고령화라는 내부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외부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해야 하고, 내부의 도전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외부의 도전에도 잘 대처할 수가 없습니다. 그 도전과 응전의 중심에 사람이 있습니다.
생물은 진화합니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하고 번성하는 것이죠. 인간도 진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제도와 국가도 진화합니다. 사회적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눈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진행되지만, 세계인은 여전히 국민국가의 틀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EU와 같은 국지적 국가연합이 형성되고 유엔UN과 여러 형태의 기능별 국제기구가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이 가까운 미래에 전통적인 국민국가를 대체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앞으로 오랜 세월 국민국가 단위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1년 내내 외국에서 세일즈를 하거나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도, 한국인은 대한민국의 품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의 국적, 그 나라의 수준과 품격이 국제무대에서 그 사람의 품격을 재는 첫째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이 번영을 누릴 때, 국민 개개인이 행복해질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생물 진화의 저변에는 개체 수의 변화가 놓여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진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200여 년 전 맬서스 Thomas Robert Malthus는 [인구론]을 출간해 유럽의 정부와 지식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습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이 단순한 명제와 간단한 산수만을 가지고 인구 증가를 국가 번영의 징표로 해석하던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통념을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의 임금은 장기적으로 최저 생존수준을 초과할 수 없어서, 대중의 집단적 빈곤은 불가피한 일이 됩니다. 빈곤을 제거하고 빈민을 구제하며 전염병을 퇴치하려는 모든 형태의 고상한 노력은 굶주림과 학살, 전쟁 등 더 큰 사회적 불행을 야기할 뿐입니다. 이것이 당시 모든 종류의 진보적 사상에 철퇴를 내려친, 이른바 '맬서스의 저주'입니다.
고령화, 장수의 축복이 부르는 재앙
역사는 인류를 이 끔찍한 주술에서 구해냈습니다. 맬서스의 저주는 특정한 지역 특수한 상황에서만 가끔 위력을 발휘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정반대의 저주에 걸려들었습니다. 이른바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그것이죠.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서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주요 산업국들은 예외 없이 이 현상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대한민국만큼 짧은 기간에 대한민국만큼 빠르게 늙어간 나라는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중국이 이 길을 뒤따라오겠지만, 그때까지는 필적할 상대가 없을 겁니다. 이러한 인구 구성의 변화 속에서도 계속 발전하려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질서와 제도가 그에 맞게 진화해야 합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때 진화하지 못하는 생물이 도태되는 것처럼, 국가도 제때 진화하지 못하면 몰락의 운명을 맞게 됩니다.
국민들은 고령화 현상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어 놓을지 아직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하니까 나라가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는 정도입니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들도 그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가 내놓은 [비전 2030]을 대하는 그분들의 태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이것은 고령화 시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장기 재정계획입니다. 발표 후 재원대책이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것 자체가 재원대책인데 그런 소리를 들으니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누구도 이 장기 재정계획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저는 예견합니다. 우선 고령화에 관한 지표 몇 가지를 소개한 다음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인구 규모를 현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입니다. 합계출산율은 15세에서 49세까지의 여성이 평생 출산하는 아기의 수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남자는 여기서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존재가 되지요. 오직 여자만 중요합니다.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이래 강력한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한 것은 다 아는 일입니다. "생긴 대로 다 낳으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를 거쳐 "잘 키운 딸 하나 열아들 안 부럽다!" 에 이르기까지, 살벌 달콤했던 가족계획 포스터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에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확대되고 산업화에 따르는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여 년 전인 1980년대 중반에 이미 2.1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몇 년 전까지 가족계획사업을 계속 시행해왔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뭘 하든 화끈하게 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예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탓인지, 2005년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1.08로 떨어졌습니다. 2006년에는 1.13으로 오랜만에 상승했지만,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 2.1 아래로 떨어진 합계출산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로부터 30년, 지금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에 분명하게 드러날 겁니다. 2016년에는 15세에서 64세까지의 국민을 합친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난 2020년에는 약 4,950만명으로 정점에 올랐던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섭니다. 짧은 기간에 출산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인구 감소는 이미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라고 하죠. 14%가 넘으면 고령 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고 합니다.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는데,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가 됩니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 사회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겨우 26년! 프랑스보다 7배, 독일보다는 4배 빠른, 세계 인구통계 역사상 일찍이 관찰된 적이 없는 신기록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평균연령이 높아지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는 한 국민총생산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줄어들지 않는 경우에도 성장률이 떨어집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 미만으로 떨어질 전망입니다. 2050년이 되면 일하는 사람 셋에 65세 넘은 노인이 둘 있는 나라가 됩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어 연금을 지급할 수 없는 사태가 생깁니다. 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우리의 아들딸들이 소득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합니다. 당뇨, 고혈압, 중풍, 암 등 거대한 중증 만성 질환자 집단이 형성되어 건강보험 재정도 파탄을 맞습니다. 혼자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노인들의 부양 문제는 광범위한 가족의 해체 현상을 야기할지도 모르죠. 고령자 비율이 이미 20%를 넘어선 시골 시.군 지역의 수많은 농촌마을들은 거대한 양로원이 되거나 페허로 변할 것입니다. 비탈의 계단식 논밭들은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잡초만 무성해집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전면적인 붕괴를 방불케하는 사회적 재앙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판국에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도 국민들은 태평스럽게 지내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재정을 안정시키려는 법률 개정안에 대해 국민 70%가 반대합니다. 여유 만만한 국민이라서 그런 걸까요? 그게 아니라 아직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해서 그런것이겠지요. 혼자 생각하다 보면 저는 이따금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전망은 미디어를 통해 널리 전파되어 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걱정하고, 정치인과 지식인, 전문가들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할 전략에 관한 진지한 토론은 아직 부족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국민들이 그 전략을 인지하고 합의하도록 적절한 정치적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그 합의에 입각한 국가 정책과 제도 개혁을, 때로는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스스로 변화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비전 2030>, 대한민국을 구하는 장기 재정계획
참여정부는 <비전 2030> 이라는 장기 국가재정계획을 제안했습니다. 최선의 방안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민간 전문가와 정부관계자들이 온갖 지혜와 힘을 모아서 만든 전략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국민은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마땅히 해야 할 토론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본질과는 관계없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공격만 난무했을 뿐이죠.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든, 이것은 심각한 소통의 위기입니다. <비전 2030>이 제시한 전략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정리해보니 핵심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선도적 세계화입니다. <비전 2030>에는 '능동적 세계화'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만, 저는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선도적 세계화' 라는 표현을 선택했습니다. 개방화와 지식정보화를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세계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선도함으로써 더 큰 경제적 번영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죠. 이것은 참여정부가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하고 EU와의 FTA를 포함한 동시다발적 FTA를 추진하는 것으로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제자유구역 설치, 외국인력 활용정책, 외국인투자 유치와 한국의 해외투자 확대, 개발도상국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확대, 동북아 금융 물류 허브 구축, 국제규범과 조화를 이루기 위한 국내 법제도 정비 등의 제도 혁신 과제들이 모두 이 전략과 연관된 것입니다. 선도적 세계화는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더 큰 번영의 기회를 얻기 위한 전략입니다.
둘째, 인적자원개발HRD입니다. 지구촌을 무대로 경쟁하는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대한민국 경쟁력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초고령 사회를 눈앞에 둔 대한민국은 이미 사람이 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더 많은 국민이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되도록 젊은 나이에 일을 시작하고, 나이가 많아도 되도록 오래오래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한 번 실패하거나 탈락한 사람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일하는 동안 더욱 생산적으로 일해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고,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더 큰 정신적.정서적 능력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일터에서 평생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합니다. 이 전략은 이미 발표한 바, 유급지원병제도와 사회복무제 도입 등 병역제도 개편을 포함한 '인적자원 활용 2+5 전략' , 대학 특성화와 경쟁력 강화 방안, 정년 조정과 임금피크제 도입 방안, 출산 크레디트제도 도입을 포함한 국민연금제도 개혁, 국가 연구개발사업R&D 확대, 초중등교육의 정상화와 방과 후 학교 활성화, 영어교육 강화, 보육서비스 확대, 빈곤 아동 투자 확대를 시발점으로 삼은 사회투자정책, 학교보건과 사업장보건, 지역보건을 연계하는 건강투자정책 등 인적자원개발과 관련해 참여정부가 추진해온 다양한 정책조합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셋째, 사회적 자본 확충입니다. 사회적 자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주는나무' 님의 블로그(http://blog.naver.com/jh1770/140005593898)에 올라 있는 한국교육개발원 김태준 박사의 글 [인적 자원으로서의 인간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참고했습니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보다는 사회적 관계 속에 존재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자원" 입니다. 한 인간집단의 구성원들 또는 상이한 여러 인간집단들이 공유하고 있어서 서로 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규범이나 네트워크, 유대관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죠. 가족, 학교, 지역사회, 기업, 노동조합, 언론, 정치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과 집단들이 다른 사람과 다른 집단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더 큰 사회적 자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국민 개개인의 물질적 자본과 인적 자본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의 사회적 자본도 훨씬 더 풍부합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할수록 갈등이 덜 일어나고 갈등 해결 비용도 적게 들어갑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국민 개인의 생산성과 더불어 사회 전체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것이지요. 정부혁신, 전자정부 구현, 행정투명성 강화, 병역제도 혁신, 노사관계 선진화, 국가 균형발전정책, 사법제도 개혁, 언론 개혁, 자원봉사 활성화, 식품.의약품 안전 강화,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복지정책의 합리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양성평등 실현, 엄정한 법질서 수립 등 참여정부는 사회적 자본의 확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정책에 힘을 기울였고,[비전 2030]은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제도 혁신과 선도적 투자계획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의 기초는 유능한 개인
[비전 2030]이 제시한 국가발전전략을 더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일하는 사람이 줄고 노인은 늘어나게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계속 잘살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해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합니다. 인구 5,000만 명도 안 되는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앞장서서 세계무대로 나가 경쟁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개방이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라면,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먼저 더 적극적으로 개방하는 편이 낫겠지요. 선진국과 동시다발적 FTA를 맺음으로써 세계화를 선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를 포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공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공을 거두려면 국민 개개인이 유능해야겠지요. 국민 개개인의 인지적.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 바로 인적자원개발 투자이고, 이러한 국민 개개인의 능력이 최대한의 경제적 성과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한 투자입니다. 사회투자국가란 인적자원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국가입니다. 선진통상국가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회를 만드는 전략이고, 사회투자국가는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할 수 있는 내부적 조건을 만드는 전략이므로, 이 둘은 따로 갈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과거 개발 시대처럼 계속 물질적 자본 확충에 집중해서는 선진통상국가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상태에서 개방만을 추진할 경우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항구적으로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반면에 선진통상국가의 길을 외면하는 사회투자국가 건설은 비현실적인 전략이 됩니다. 더 큰 세계시장에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취득하지 않고는, 기나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투자의 효고가 나타나는 사회투자의 재원을 지속적으로 조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수진영은 평소 원하던 선진통상국가를 얻는 대신 진보진영의 노선에 부합하는 사회투자국가를 수용하고, 진보진영 역시 평소 원했던 사회투자국가를 얻는 대신 보수진영의 선진통상국가를 수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모두를 승리자로 만드는 전략적 대타협이 될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선도적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물질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민간 기업과 시장에 대폭 이양하고 국가는 인적자원개발과 사회적 자본 확충에 집중하려고 할 때, 장기 국가재정계획을 혁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조처입니다. 경제지출 비중을 10%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복지지출 비중을 40%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장기 국가재정계획인 [비전 2030]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자리 잡은 것은, 참여정부가 이러한 전략적 대타협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할 때 '복지지출'은 새로운 이름을 가져야 마땅하겠죠. '사회투자지출' 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복지정책으로 불리는 현재의 사회정책을 사회투자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결과의 평등을 도모하는 데서 기회의 형평을 보장하는 쪽으로 정책수단과 사업방식을 혁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전략을 과연 실현 할 수 있을까요?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 일부 진보적 언론과 지식인들은 한미 FTA 반대 기치를 높이 들고 싸우면서 선진통상국가론을 망국의 길이라고 비난합니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보수적 지식인들은 한미 FTA를 무작정 예찬하면서 사회투자국가로 가는 정책을 가리켜 나라를 망치는 사회주의적 분배정책이라고 공격합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둘 다 틀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옳기도 합니다. 당신들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방이 승리하지 못하면 당신도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성공하려면 상대방을 성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남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막는 일에 진력하기 보다는, 남들이 원하는 것을 갖도록 용납하는 대신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갖는 쪽이 서로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아직은 대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양쪽 모두에서 좋은 소식이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한민국에 국운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국운을 가져오는 것은 결국 총명한 국민입니다. 이르든 늦든, 어느 시점에선가 대한민국의 왕인 국민들이 총기를 발휘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저는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