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삼국지의 매력을 제대로 살린 영화가 나올까?
삼국지만큼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매력적인 이야기도 드물껍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이 컨텐츠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살린 영화나 드라마도 아직까지 없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만큼 제대로 묘사할 주요 캐릭터도 많고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에 대한 해석도 쉽지 않은게 사실이죠.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균형잡힌 해석과 연출이 어려울만큼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이야기구조를 가졌기 때문인데 이런 특성때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좋아하는 것이니 아이러니할 수 밖에요..^^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고우영 삼국지는 삼국지입문으로 손색이 없는 멋진 작품입니다..^^
저같은 경우 고우영의 만화삼국지를 통해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이전의 정통삼국지와는 다르게 조조, 유비, 제갈량, 관우 등을 새롭게 해석한 점이 돋보였었죠. 꽤 시간이 흐른 후에 한참 인기를 끌었던 이문열의 삼국지를 또 다른 관점에서 재미있게 읽었구요. 특히나 이문열 버전에서 소개된 제갈량의 출사표 1,2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명문으로 꼽을만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에게 삼국지는 그렇게 특별할게 없는 누구나 한번쯤 읽어봐야 할 이야기였을 뿐입니다.

감히 이 작품을 보지 않고 삼국지를 논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저에게 제가 알고 있는 최고의 천재 데미트리오가 만화책 한 권을 소개했습니다. 조조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파격적으로 새롭게 쓴 만화삼국지 '창천항로'가 그것입니다. 마초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만화는 저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가장 감탄한 것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캐릭터들에게 작가가 불어넣은 생동감과 강렬함이었습니다. 동시에 중심인물 조조를 카리스마 넘치는 재능과 새로운 리더쉽의 전형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저를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이외에도 제갈량,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에 대한 새로운 묘사는 대단한 것이어서 유일하게 제가 소장하는 만화가 되버릴 정도였습니다.
'주유'와 '제갈공명'을 띄우려다 캐망신을 당하다
대부분의 영화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강력한 주인공 캐릭터를 필요로 합니다. 가끔씩 누구를 주인공으로 봐야할지 의견이 분분한 영화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저 실험적 시도에 그칠 뿐이죠. 오우삼이 삼국지 최대의 하이라이트라 칭할만한 적벽대전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할 때 첫번째 고민은 당연 영화적 관점에서 주인공으로 누구를 띄울 것인지였을껍니다. 그의 선택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고 아쉽게도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최대매력인 멀티 캐릭터의 위용을 스스로 죽이다 못해 폄하하는 결과물을 낳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필자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조조와 조자룡에 대한 주관적 애정이 넘치는 관계로 객관적인 리뷰에 적잖이 영향을 미쳤음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인물들 세명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손권은 왜 꼈는지..쩝..ㅜㅜ
많은 분들의 지적대로 적벽대전 2는 볼꺼리의 측면에서는 그런대로 봐줄만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오우삼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두 주인공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너무 인위적으로 두 인물의(그 중에서도 주유를) 매력을 끌어 올리려다 보니 지나치게 무리수가 많습니다. 솔직히 요즘 유행하는 말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왜 그래? 아마추어같이.. 캐릭터의 매력은 자연스럽게 연출되어야지 주변 캐릭터를 찌질이로 만들면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라는걸 나름 영화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오우삼이 몰랐다는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가 그동안 창조해 온 영웅 캐릭터(영웅본색, 첩혈쌍웅, 페이스오프 등의 인물들)들만 잠깐 상상해 봐도 이건 정말 아니죠..ㅜㅜ)
리얼리티의 재현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 해석이냐가 문제다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는 당연히 영화적 재해석과 각색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원작이 삼국지같은 널리 알려진 대작이라면 더욱 그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원작과 다양한 해석본이 즐비한 삼국지 이야기를 오우삼식으로 재구성하는 유연성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이렇게 찌질하고 생뚱맞다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요. 단지 원작과 달라서 관객들이 비판을 하거나 기분이 찝찝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오우삼은 기억해야 합니다.

와호장룡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던 배우지만 손권역에는 최악의 캐스팅이 아닐 수 없습니다..ㅜㅜ
인의를 중시하는 유비 캐릭터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에피소드와 자기 주군의 선택이라면 그 어떤 의미냐와 상관없이 주군의 뜻을 최우선시하는 충성심의 화신 관우, 장비, 조자룡의 개인행동 역시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합니다. 조조와 그의 가신들에 대한 모욕에 가까운 묘사는 또 어떻구요. 심지어 유비와 조조의 장점만을 균형있게 소유한 손권 캐릭터는 캐스팅에서부터 삑싸리를 내더니 황당 시추에이션의 정점을 달리게 하더군요. 제가 그토록 흠모하는 조자룡의 캐스팅은 성의없음의 극치를 달립니다.

이 스틸컷만 보면 웬지 잘 어울릴 것 같지만 클로즈업된 얼굴을 보면 정말 아니올씨다입니다..ㅜㅜ
그나마 손권의 여동생과 순박한 조조 휘하 천부장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부질없고 사랑이라는 인간본성을 파괴시키는 행위인지 알려주려는 노력은 가상한 편입니다만 전체적인 영화의 완성도나 이야기 흐름에는 적절하게 동화시켰다고 봐주기 어렵습니다. 평화의 화신이라고 불리울만한 주유의 부인 소교 캐릭터의 지나친 부각도 심하게 말하면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리수가 많았습니다. 꼭 그렇게 다른 캐릭터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주유가 직접 그녀를 구하도록 만들어야 했는지 당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에 승자는 없소'라는 철학적 메시지 자체는 훌륭했습니다만 그 메시지에 자연스럽게 동의할만한 전개나 연출하고는 담을 쌓았으니 황당할 수 밖에요.

모든 캐릭터를 압도할 것 같은 소교의 포스를 보세요.. 매력적인 배우지만 무리수의 정점에 있습니다..ㅜㅜ
게다가 모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마무리 역시 실소를 자아내게 할만큼 허접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주유, 제갈공명, 소교를 제외하고는 마무리를 장식하게 할만한 그럴싸한 캐릭터들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으니까요. 대전쟁의 여운이나 정세변화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평원에서의 지들끼리 즐긴 집들이 배웅같은 분위기를 연출한 오우삼의 마무리 씬은 하기 싫은 영화작업을 후다닥 끝내고 싶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성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최악의 결과물입니다.
그래도 적벽대전에서 어렵게 건진 몇 안되는 것들
매번 전쟁과 관련된 영화를 보게 되면 실감하게 되는 생각이 있습니다. 전쟁은 어떤 의미에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전쟁안에서 우리들의 자기다움이나 본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파괴된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과연 저 시대의 전쟁에서 총사령관과 장수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전쟁에 참여했을까 하는. 정말 영화에서처럼 전략가이자 사령관인 주군과 핵심장수들이 목숨을 걸고 전쟁의 선봉에서 그리고 현장에서 고군분투했을까 하는 그런 의문말입니다.

조조는 그렇다치고 옆에 있는 가신들의 평범하다 못해 어벙한 표정을 보십시오.. 환장합니다..ㅜㅜ
영화 적벽대전만 놓고 보면 적어도 그들은 일반병사들을 단지 소모품으로만 여기고 머리와 입만 놀리는 기회주의적인 인물들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일부분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그 와중에 조조는 아주 찌질한 인물처럼 묘사되고 있으니 오우삼에게 제대로 찍혔거나 악질 캐릭터 하나는 확실하게 있어야 된다는 영화적 희생양으로 볼 수 밖에요..ㅜㅜ)
전쟁씬은 대단하진 않아도 봐줄만 합니다. 그리고 조자룡과 관우가 보여준 몇 안되는 특별한 액션씬도 기억에 남구요. 특히나 적벽대전의 화공이후에 전개된 육박전 묘사는 나름 오우삼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내용적인 호불호를 떠나 액션시퀀스 그 자체로 좋았습니다. 손권 군대가 보여주는 일종의 진법대형은 언뜻 글레디에이터의 유명한 액션씬(어떤 장면이지 알아맞히는 분에게 특별한 선물을 드리지요..^^)을 확장한 개념으로 느낄만큼 흥미로웠고 실제로 저런 식으로 싸우면 그 시대의 적군들에게 졸라 짜증을 유발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 수군의 해전씬도 실감납니다. 물론 저 정도의 화력이 과연 저 시대에 가능했을까라는 현실적인 의구심이 동반되긴 했습니다만..^^
스틸화면속에 언뜻 보이는 손권군의 방패대형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또 다른 삼국지관련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갈증만 남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이제까지 나온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도 아직까지 삼국지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새로운 시도를 기다릴 수 밖에요. 그전까지는 제 마음대로 이전 관련 영화나 드라마의 장면들을 소스로 삼아 제 머리속에서 상상의 영화를 만들어 즐길 수 밖에요. 유덕화가 분한 조자룡을 중심 캐릭터로 삼았다는 삼국지 용의 부활이나 챙겨봐야겠습니다. 적어도 내용적 완성도를 떠나 가장 조자룡에 가까운 뽀다구로 무장한 유덕화를 만날 수 있을테니까요. 그가 더 늙기전에 더 좋은 작품에서 또 한번 조자룡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비의 인덕을 바탕으로 한 재능의 화신 조조가 되고 싶다는 저의 열망이 남아 있는 한 삼국지는 영원히 저의 베스트 컨텐츠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