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죽는 순간까지 이 권력을 놓치 않을거야”
‘88만원 세대’는 공저 박권일이 흥행을 위해 지나치게 세대 간 문제에만 포커스를 맞추었다고 오류를 인정했지만(이 양반 자신의 책이 변듣보에 이용되는걸 보고 무지 화가 치밀었나 보다), 우리 세대의 숨겨진 문제를 드러낸 시각만큼은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책이다.
마치 예비역들이 군 시절 구타당한 것은 뚜렷이 기억하는 것에 비해 자신이 구타한 사실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자신이 타인을 착취한다거나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한다거나 그 착취 방식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과학서에서 일반적으로 착취는 풍요로운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행사하는 절대악 또는 필요악으로 정의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기득권이 미약한 집단에서 더 집요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착취가 진행된다.
IT업계에서 제법 성공한 친구는 술자리에서 88만원 세대의 비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난 죽는 순간까지 이 권력을 놓치 않을거야”
그의 설명인즉, 자신이 종사하는 업계의 1세대는 386세대였고 IT거품의 생성.소멸과 함께 그들은 별로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업계를 떠났다. 이 후 제 2세대인 우리 세대가 사실상 창업 세대가 되어 자연스럽게 그 업계의 기득권을 가졌다는 것. 그는 창업 세대와 같이 일했고, 따라서 자신들도 창업을 할 수 있는 스펙(영업력 +기술력)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은 정작 후배들 또는 자신의 사원들에게 회사가 요구하는 이상의 스펙을 보유하게 해줄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40여명의 직원들을 철저히 팀단위로 분업화해 한 개인의 역량이 일정정도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방식과, 고용인의 사용가치만큼 사용하고 내보내고 다시 신입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대로 후배들이 자신과 경쟁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밝혔다. 회사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의 축척은 사장과 몇몇 임원들이 주도할 것이고 고용인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신 시대를 거쳐 기득권을 쥔 우리네 회장님들은 권위주의적 통제를 원했고 그에 바탕한 가부장적 리더쉽은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고용인들을 결혼에서부터 정년 은퇴까지 평생을 보살펴야할 가족으로 인식하게 했다.
군부독재 시대를 거쳐 기득권을 쥔 우리 386 선배들은 보다 민주적인 통제를 원했고 그에 바탕한 파트너쉽은 여러 MBO 프로그램으로 우리 세대가 사회에 쉽게 적응하고 독립할 수 있게 견인했다. 그들은(386세대) 회사를 학습조직으로 만드길 원했고 실제로 그런 시스템은 사회적으로 학벌주의가 무너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친구의 주장에 어느새 쉽게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에 놀랐지만 사실 그의 주장을 반론할 여지가 별로 없다. 돌이켜보니 나도 회사에서 후배들을 진지하게 가르친 기억이 별로 없다.
회사 사장처럼 뚜렷한 이유는 아니지만 정보를 공유하는데 적극적이고 않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설령 내가 회사 사장이라 해도 윗대 선배들처럼 고용인을 결혼도 시키고 가정도 가지게 하는데서 보람을 찾을 생각이 별로 없을 것이다. 회사에 평생을 걸고 충성하기보다 때가 되면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찾아 나가는 고용인들을 바랄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이는 윗세대에 비해 우리 세대의 뚜렷한 책임감 부재에 대해 외환위기 세대라서 각자 생존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수도 없다. 생존과 관계없는 이들도 좀처럼 정보를 공유하거나 넘겨주지 않는다.(사실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면도 있다) 우리 세대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한 세대 간에 걸친 의식의 문제인만큼 바뀌어지길 기대할 수 없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07년 통계에 따르면 구직 단념, 단시간 근무, 취업 준비 등을 포함하는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전체 실업률 3.6%의 다섯 배가 넘는 19.5%나 된다. 2009년도의 통계는 훨씬 악화되었다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착취(사용가치만큼만 쓰고 바로 버리는)가 더 용이하게 적용될 수 있고, 더 심각한 건 세대간 문제인만큼 ‘88원세대’로 지칭되는 한 세대의 비운이 고착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대안은 없다. 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회사가 가르쳐주는 것 외에 좀 더 배우라고 말할 수 있는 것 밖에 다른 조언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