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정치는 쉽다. 또한 재밌기도 할 것이다. 의도와 정체를 숨긴 채 적절한 기만행위 만으로 동반자들 끼리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해커가 허술한 시스템에 침입한 후 마치 신이라도 되는 마냥 관리자를 농락하는 것과 같이 우월감을 가지게도 한다.
평생을 약속한 부부를 생이별 시킨다면 그는 핏발서린 원한을 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남자에게 여자를 붙여주고 작은 실수 하나를 침소봉대하면 관계에 금이가기 시작한다. 적절한 때에 여자의 흠집을 만들어주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그 다음은 자가발전이다. 사랑은 증오가 되고 헌신은 배신으로 변화한다. 고결한 에너지가 서로를 상처입히는 데에 쓰이는 것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자 그 마음은 꽃과도 같고,
열정이 뜨거운 자 그 열정은 태양과도 같다.
아름다운 마음과 찬란한 열정은 사람의 정수다.
허나 현명한 지혜가 없다면
당신의 열정은 아궁이에 던져질 것이고,
당신의 마음은 가마솥에 담겨질 것이다.
당신의 열정이 당신의 마음을 요리하고 나면
지켜보던 그들이 당신을 먹어치울 것이다.
자두연기(煮豆燃萁)의 비애는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다.
들어가기 전부터 너무 무겁다. 간단한 동영상 한 편 감상하자.
통합의 정치는 분열의 정치에 대한 방어이자 그보다 뛰어난 정치력의 본보기다. 그만큼 통합의 정치는 어렵다. 하얀 종이에 점 하나가 찍혀 있으면 눈은 그 점에 고정되기 마련이다. 절대다수의 여백은 눈에 들지 않는다. 같은 것 보다는 다른 것이 눈에 들고 다른 것들은 라디컬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가만히 두어도 분열은 그렇게 일어난다.
허나 그것 뿐이라면 인간은 사회를 이루지 않았을 것이고, 엽록소는 나뭇잎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협력의 관계는 협력을 통해 보다 큰 결실을 이룰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고, 그러자면 역할에 따른 계약이 필요하다. 엽록소가 양분을 생성해주고 나무가 물을 공급해 주듯이 인간사회의 협력도 적절한 구조와 역할규정이 필요하다.
남북 대립관계는 내부의 이단자와 외부의 경쟁자 모두에게 이득이다. DJ 전까지 이 구도를 통해 그들은 공생관계를 누려왔다. 소수의 권력집단의 이득을 위해 대다수 주권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 DJ는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하려 했을까?
공통이익 설정에 따른 역할규정과 원교근공(遠交近攻) 곧 구도 설정이다.
경쟁자들도 그들끼리 경쟁한다. 그렇다면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말 처럼 그들 경쟁자 사이에 우리편을 찾는다. 그렇게 남북관계 개선의 이득을 유럽에 설명했다. 내부의 이단자들은 다수 주권자들의 이익을 설명함으로써 억제한다. 다수가 공통의 이익에 동의하면 이단자들의 행위는 억제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두 당사자의 역할규정과 계약이다.
이렇게 해서 6자회담이 가능해진다. 남북한의 평화체제가 남북한 두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국을 포함한 공통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핵심으로 상호간 배신행위를 억제하기 위한 다자간 협상의 구도를 만든다. 전자가 역할에 따른 이익이라면 후자는 역할을 항구화시키기 위한 구도설정과 계약과정이다. 참여자 면면은 서로 경쟁할 수 밖에 없는 주변 강대국들이다. 그렇다면 4강의 대립구도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칠 수 없는 구도를 형성한다. 이 때 키는 남북이 쥐고가게 된다. 6.15는 그 구도가 뒤로 가지 못하도록 하는 쐐기역할을 한다. 일종의 매듭이다.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87년 양김분열이 분열정치였다면, 92년 삼당합당과 97년 양김연대, 그리고 2002년 후보단일화는 일종의 통합의 정치에 해당한다. 그 의미를 일일이 따지지 말고 구도만을 보자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92년 당시 노태우가 끝까지 YS에게 후보를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당시 김윤환은 청와대에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던데, 후보지명 후 YS의 큰 절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했다던가... 삼당합당은 당시 불임정권이 되기 쉬웠던 민정당의 마지막 승부수였다. 87년식 분열구도를 획책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왜냐면 민정당이 영남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그동안 YS의 영향력이 감소했다. 따라서 분열구도로 가더라도 양김의 균형을 맞추기 어렵고 그렇다면 쏠림현상이 발생한다.
정권의 입장에선 파국이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YS입장에서도 마찬가지.... 공동의 이익을 매개로 그들은 협력구도를 만들었고, 역할관계는 대선후보 지명까지 이어진다. 그 역할을 강제하는 계약은 없었으나, 구도가 강제하도록 만든다. 어차피 각개격파 당할 수 밖에 없는 YS 입장에선 물귀신 작전으로 갈 수 있는 거니까...
97년의 양김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태우와 YS처럼 무슨 대선후보 자리라도 약속했던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당시 자민련은 주어진 위치에서 자기 이득을 챙겨갔다. 어차피 불임정당일 수 밖에 없는 자민련 입장에서는 연정의 한 축으로 참여할 기회를 가져가는 게 이득이다. 삼당합당 때는 백댄서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최소한 조연이다. 대선은 당연히 DJ 몫이다. 그들의 연대는 둘 간의 세력차가 너무 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력구도가 역할설정을 규정해버린 상황... 그러니 양김연대는 애초에 분열공작이 들어설 가능성이 없었다.
2002년 후보단일화....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거다. 개인의 결단이 역사적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일은 이렇게 가능해진다. 애초에 희생적인 결단에 의했기에 정몽준은 가져갈 게 없다. 그러니 막판배신까지 때릴 수 있는 거고... 아무런 역할규정도 계약도 구도도 존재하지 않는 통합의 정치도 있을 수는 있는 모냥이다.
정리해보자
* 통합의 정치는 분열의 정치를 넘어서는 정치력을 필요로 한다.
* 공통의 이익을 비전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 비전을 바탕으로 세력간 역할규정을 해야한다.
* 역할규정은 적절한 구도와 계약하에 강제되어야 한다.
사람을 믿고 안믿는 것은 마음의 흐름에 따라간다. 허나, 사람은 변하고 변하는 만큼 미래의 사람은 달라진다. 그러니 겪은 만큼 판단하고, 새로 겪는 만큼 판단이 달라질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기준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역할을 부여하고 역할에 준하는 강제도구를 갖춘다. 그것이 시스템이다.
개인은 불안정할 수 있어도 시스템은 보다 안정적이기에 개개인의 일탈에도 불구하고 집단이 원하는 바를 안정적으로 끌어갈 수 있다. 그것이 시스템을 이루는 구도와 계약들이다.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구도를 설정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고, 또 그렇게 설정할 수 있을 때에 다름을 포용할 수 있다.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듯이, 정치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네가 달라서 그 다른 것 만을 볼 것이 아니라 다름을 각자의 장점으로 역할하고 서로 배신의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강제하는 구도를 만들 생각을 먼저 하는 게 좋은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