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알레르기가 좀 심해 보인다.
사민주의를 자꾸 북유럽 사회체제와 동일시 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사민주의는 딱 이렇다할 개념이 없다.
그래서 이현령비현령 제각각 해석된다.
나는 지난 몇년 동안 정치참여를 세컨드라이프로 삼고 있으면서
나 자신의 정치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거듭했다.
나는 중도좌파다.
좌파라는 단어가 싫은 사람에겐 그냥 중도개혁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심플하게 '나는 진보주의자다'라고 하는게 더 낫다.
나의 정치적 아이덴티티가 조금 사민주의에 가까운 걸 차츰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북유럽체제의 사민주의는 아니다.
그런 말을 한적도 없지만,
모든 사상이란 것이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 토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민주의 역시 각 나라마다 노선의 차이가 있고, 해석도 달리한다.
어떤이는 사민주의를 민노당 전유물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사민주의는 한국 실정에 정착하기는 어렵고,
그렇기때문에 사민주의 자체를 이현령비현령식으로 받아들인다.
그 이유로 사민주의는 실제로 이론적 공백이 많고 모호하다.
상당히 양면적이다.
사민주의는 이념이 아니고 실천적 정치철학이다.
내가 사민주의에 한발자욱 다가 선 계기는 안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접하고 난 후다.
허지만 제3의길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은 말라.
여기서 내가 백번 말하느니 존경하는 기든스 선생의 말을 빌려보자.
나는 실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앞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지금까지 해 온 것
보다 더욱 철저하게 기존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제3의 길이란 이미 새로워진 세계에 사회민주주의를 적응시키고자 하는 사고와 정책의
틀인 동시에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뛰어넘고자 하는 시도이다.
내가 동감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구식 사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다같이 초월하자는 거.
사민주의는 여전히 이념적 혼란에 빠져있다.
그래서 사민주의는 한국 같은 경우에 왜곡된 점도 많다.
사민주의에 대하여 담론조차 제대로 이루어진 적 없다.
사상이란 , 그 나라의 정치적 여론과 의식수준에 기초한다.
사민주의가 한국의 정치적 토양에 뿌리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미완이다.
유시민 전 장관이 던진 화두 '사회자유주의?'
글쎄......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이현령비현령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