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 회원가입
회원 게시판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김수환 추기경, 그는 과연 변절했는가?"
Lucida | 2009-02-20 13:02:10 | 조회 3741 인쇄하기
http://www.usimin.co.kr/31887     


트위터 페이스북

 

   "김수환 추기경, 그는 과연 변절했는가?"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뮈텔 주교


 뮈텔 主敎

1898년 5월 29일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축성 예식을 집전한 것은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1854-1933)였다. 그는 1881년 조선에 입국해 4년간 선교사로 활동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가 1891년 조선교구장으로 다시 조선에 들어와 별세 때까지 42년간 조선교구를 지휘했다.

뮈텔 주교의 긴 재임 기간 중 조선은 숱한 격변을 겪은 끝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조선 주재 서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뮈텔 주교의 입장은 조선천주교회의 행로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조선관을 결정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조선 민족의 관점에서 보면 뮈텔 주교는 '어글리 미셔너리'였다. 그가 남긴 재임 중의 일기에는 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깔보고 무시하는 태도, 교회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책략을 구사하는 모습이 도처에 나타나 있다. 그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하여 3·1운동 때는 천주교인과 신학생들의 만세운동 참여를 엄격히 금지했다. 안중근 의사의 영세신부 빌렘이 安 의사의 사형 집행 전에 고해성사 받으러 가는 것마저 가로막고 결국 빌렘을 조선에서 쫓아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일제 강점기를 통해 개신교회보다 천주교회의 독립운동 기여도가 낮았던 일차적 이유가 뮈텔 주교의 태도에 있었다고 지목된다. 이것은 가톨릭 교회사가들에게 오랫동안 당혹스러운 문제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뮈텔 주교에 관한 연구 발표를 놓고 논란이 일었을 때 최석우 신부의 논평에도 이런 당혹감이 담겨 있었다: "그분은 조선인의 육신보다는 조선인의 영혼을 더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명동성당 축성 백주년을 기해 김수환 추기경이 30년간 맡아 온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재임 기간은 한국 사회 안에서 '명동성당'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민주화와 사회 정의의 상징으로 명동성당이 온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은 것은 누구보다 金 추기경의 공로다.

한국 교회사를 보는 사람들은 대개 金 추기경을 훌륭한 교구장으로, 뮈텔 주교를 그 반대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진흙 없이 연꽃이 피지 못하듯, 오늘의 한국 가톨릭교회와 金 추기경의 성취는 바깥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에만 매달렸던 뮈텔 주교의 집념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이다. 역사란 부끄러운 부분도 자랑스러운 부분도 함께 짊어져야 하는 것임을 되새기게 해주는 것이 우리 가톨릭교회사의 가르침이다.


 

 

 

  

◀ 명동성당의 옛 모습. 1898년 납작납작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깨뜨리고 솟아오른 종탑은 조선의 전통과 융화될 수 없는 이질감의 상징이었다. 외세에 업혀 세워진 저 종탑은 오랫동안 한국사의 흐름 밖에 서 있었다. 주변의 고층건물 틈에서 그 이질감을 삭혀버린 이제 명동성당은 한국 사회를 굽어보는 대신 떠받쳐주는 존재가 되었다. ⓒ프레시안


 

이 글을 쓰던 시절까지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을 넘어 양심의 대명사로서 한국 사회의 존경을 널리 모으던 분이었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있는 동안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엄혹한 유신시대에서 5공에 이르기까지 정권의 폭력이 인권을 위협할 때 거듭거듭 마지막 보루가 되어준 것이 김 추기경의 양심이었다. 6월 항쟁 막바지, 명동성당에 피신해 있던 운동가들을 체포하러 경찰이 들어오려 하자 "나를 먼저 잡아가라"고 막아선 것이 그 하이라이트였다.

최근 10년 여 동안 김 추기경을 정신적 지도자로 받들던 진보 진영의 시선은 착잡하게 변해 왔다. 진보 투쟁을 온 몸으로 뒷받침해 온 것과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해 "시기상조"라며 부정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변화에 배신감을 표명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그는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었다.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가톨릭교회를 잘 이끌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된 부산물이었다.

가톨릭교회 신자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으며, 우파도 있고 좌파도 있다. 교회 수장으로서 그는 가난한 사람과 좌파만 아끼고 부자와 우파를 내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가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앞장선 것은 약자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고, 진보 진영을 뒷받침해 준 것은 독재 정권의 압제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것은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의 일이었으니, 그만큼이라도 한국의 권력 구조가 균형을 잡은 상황에서 특정한 정치 노선에 계속 치우친다는 것은 거대 종교 지도자로서 적절치 못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사와 관련된 분야를 연구해 온 필자로서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관련된 김 추기경의 업적이 교회사의 맥락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 말년의 정치적 퇴행(?)도 그 맥락에서 적절한 것으로 본다.

위 칼럼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뮈텔 시대(1891~1933)를 언급했거니와, 그 이전의 교회사는 박해의 역사였다. 조선조 말기의 가톨릭 박해를 '어리석은 쇄국 정책'으로 가볍게 몰아붙이는 이들이 많지만, 조금만 깊이 살펴봐도 박해 정책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개항 이전의 조선 왕조는 '천명'을 가진 '천자'를 중심으로 한 '천하체제'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천명'을 능가하는 권위의 '천주'를 받드는 서학, 즉 천주교의 세계관은 이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었다. 1801년의 신유박해 때까지는 이 모순을 어떻게든 해소 내지 완화하려는 노력이 서학 내에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펼쳐진 신유박해 과정에서 황사영 백서가 튀어나온 뒤로는 화해의 길이 사라졌다. 황사영 백서는 청나라 황제를 움직여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관용하도록 압력을 넣게 해 달라든가, 서양 해군을 보내 조선 국왕을 굴복시켜 달라는 등의 청원을 담은 것이었으니, 조선의 전통 질서에 용납될 수 없는 패륜이었다.

아편전쟁 이후 서양 군사력이 중국을 유린하는 상황에 접어들면서 이 갈등은 거듭거듭 증폭되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이 1868년의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었다. 국왕 조부의 묘를 훼손한 이 사건에 천주교도들이 가담한 사실은 조선의 권력층만이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서양 오랑캐와 천주교도를 모두 짐승처럼 보게 만들었다.

개항 후 선교의 자유가 허용되었을 때, 개신교 선교사들보다 가톨릭 선교사들이 조선 정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 일이 많았던 것은 갈등의 역사가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뮈텔 주교가 그 대표적인 사례였고, 그 모습이 그가 남긴 일기에 그대로 남아있다. 조선 왕조의 멸망은 그에게 반가운 일이었고, 선교 발전을 위해 일제와의 협력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민족주의를 추구한 이들도 많았지만 뮈텔 주교로 대표되는 교회 지도부는 20세기 전반부 동안 한국의 민족주의를 등진 행로를 걸었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열망이 좌절을 겪고 있던 20세기 후반부에는 김 추기경을 비롯한 가톨릭 지도자들이 민주화의 길을 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뮈텔 주교는 복음주의 성향의 선교사였다. 선교 대상 사회를 해체해 개인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그 단계에서 가톨릭교회는 한국 사회와 유리된 집단이었다. 그 분위기는 5·16 때 장면 총리가 수녀원에 피신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그런 상태에 있던 가톨릭교회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축으로 키워낸 것이 김 추기경의 공로다. 과거를 드러나게 비판하지 않으면서 밝은 장래를 위해 오늘의 할 일을 열심히 함으로써 교회의 '역사 바로잡기'를 해낸 것이다.

김 추기경의 말년 행적을 놓고 원래의 성향이 보수니 어쩌니 하는 말들도 있다. 정치가가 아닌 종교인에 대해 쓸 데 없는 논란이라 생각한다. 현대 세계에서도 종교가 얼마나 훌륭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지 그분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설령 그분이 개인적으로 진보 성향을 가진 분이더라도, 민주화가 어느 정도 성취된 단계에서 중립을 취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유가에서 말하는 '지어지선'(止於至善)에도 부합하는 자세 아니겠는가.

 

                                                                  /문천(시민광장 필명), 김기협 역사학자

 

     

김수환추기경, 종교
덧글쓰기 | 전체글 13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시  

음... 따스한 시선..^^
09-02-20

다반향초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론 부터 말하면 김수환 추기경은 변절자가 아니라 원래 부터 보수 주의자였다

김수환의 정치적 성향은 분명 보수 지향이다 물론 진정한 보수 진보의 가치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가치는 모두 소중하다 김수환 보수적 성향을 보자면 한국 카톨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땅에 발을 디딘 카톨릭은 과거의 뼈아픈 박해 경험을 알기에 이제는 체제에 저항하기 보다는 체제에 순응하기 시작하였으며 보수적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그것이 일제 때에 진행된 친일이었으며...그 앞잡이에 노기남 대주교가 있었다.대주교는 장기간 동안 한국천주교에 군림하며 충실히 외방 선교회의 뜻을 실천하면서 두명의 인물을 길렀다. 그 인물의 하나가 김수환 추기경이며 정진석 추기경이다. 친일 인명 사전에 오른 노기남 대주교 ,그의 스승 장면 등은 일제에 친일 행적으로 공식 친일파이며 김수환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민족문제연구소의 선정기준인 군인의 경우 ‘위관급 이상 장교’를 사전 수록 대상자로 한다는 선정기준에 미달(?) 되어 즉 사관후보생으로 종전이 되어 장교 인명은 못 받았으므로 다행히(?)친일 인명 사전에는 오르지 못했다

김수환 친일에 대하여

"1941 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 해 4월에는 일본 동경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사실 그 무렵 김수환은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 투쟁에 더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1944년에 들어 모든 상황이 일변하게 되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일제의 강압으로 학병에 징집되어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아야만 하였다."

- 김수환 추기경 홈페이지 '김수환 추기경 발자취' 중에서 -

골 때리지 않습니까 ?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 투쟁을 꿈꾸다가 일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는다는 대목이 특히 너무 앞뒤가 안 맞는 얘기인지라 보통사람들의 이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대목이며 남들 고해성사는 많이 받았을 텐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고해성사 한 번 없다

김수환 생전 증언

김수환 추기경이 " 일본학도병 사관후보생(장교후보생) 입대하기 전에 배신자 최남선 등에게 상의 하니 자원해서 가라 했고, 다른 일본인 후견인에게 상의 하니 절대가지 말라 했다 그런데 전쟁 끝나고 나중에 보니 그 일본인은 감방에 있었다 " - 김수환 생전 증언 -


즉 김추기경 본인이 장교로 입대를 거부했으면 감방생활하고 살았을 것이다 . 이를 피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는 징집에 의해서 갔다고 변명 하는 꼴이 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194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의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44년 초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 학병으로 징집되어 동부 22부대에 입대하였으며, 이후 도쿄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았습니다. - 위 내용은 민족 문제 연구소의 공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군인의 경우 ‘위관급 이상 장교’를 사전 수록 대상자로 한다는 선정기준을 정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은 사전 수록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음을 밝혀 둡니다. -

위 민족 문제 연구소의 발언과 - 김수환 생전 증언 - 김수환 추기경 홈페이지 '김수환 추기경 발자취' 중에서 - 를 종합해 보면

"1941 년 동성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천주교 대구교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그 해 4월에는 일본 동경의 상지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사실 그 무렵 김수환은 성직의 길보다 항일 독립 투쟁에 더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개풀 뜯어 먹는 소리다) 1944년에 들어 모든 상황이 일변하게 되었다. 당시 졸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김수환은 " 일본학도병 사관후보생(장교후보생) 입대하기 전에 배신자 최남선 등에게 상의 하니 자원해서 가라 했고, 동경 남쪽의 섬 후시마에서 사관 후보생 훈련을 받았으며 "천황폐하 만세 "신사참배 " 등을 했다 다른 일본인 후견인에게 상의 하니 절대가지 말라 했다 그런데 전쟁 끝나고 나중에 보니 그 일본인은 감방에 있었다 - 김수환 생전 증언 - 즉 김 추기경 본인이 [자원]해서 장교로 입대를 하지 않았으면 감방생활하고 살았을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본군 장교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는 [징집]에 의해서 갔다고 변명 하는 꼴이 된다

왜 그랬을까요 ?

선대 천주교 성직자 친일파 노기남 대주교 ,장면 및 자기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친일 청산 잣대에 왜 한나라당 박근혜와 합세하여 개 거품을 물고 반대 했을까요 ? 대한민국은 한나라당이 집권해야 된다는 발언과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사학법 반대 등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그야말로 우파 꼴통 짓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군인의 경우 ‘위관급 이상 장교’를 사전 수록 대상자로 한다는 선정기준에 따라 추기경은 사전 수록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여 친일에 대해 그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 입니다 친일파 후손 및 뉴또라이들의 변명을 보면 박정희도 징집에 의해서 어쩔 수 없었다 하면 모두 면죄부를 받는 거라면 친일청산은 요원한 것입니다

김수환은 일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신사참배를 했다고 했으며 금단의 선을 넘었다는 것은 사실이며 도둑이 금단의 선 즉 남의 집을 넘었지만 난 아무 것도 훔치지 않았으며 손에 든 칼로 아무도 헤치지 않았으니 죄가 없다 ?

다시 한 번 카인의 변명으로 일관된 그의 양심을 비판합니다
09-02-20

문천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죠. 그러나 내 기대 때문에 남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흔들리는 일은 조심해야 할 겁니다. 나는 첨맘님을 대단히 좋아하고 상당히 존경하지만, 그분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알지 않으며, 그 중에 부분적으론 제 입맛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매우 큰 것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그 마음이 흔들릴 일 없으리라고 생각하죠.
추기경님 말년의 언행에 저도 아쉬움을 느끼는 점이 없지 않지만, 그분을 존경하는 마음이 흔들릴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문제에 관해 우리 사회에 비판은 활발하면서 평가는 빈약한 풍조를 아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위에 사랑시님 말씀처럼 "따스한 시선"을 살리는 데 저는 애를 씁니다.

최근 <뉴라이트 비판> 작업을 하면서 친일 문제가 이 사회에 심각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친일'에 대한 실질적 이해를 가로막는 마녀사냥식 친일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주류가 친일 비판의 맹목성에 반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친일 비판 담론의 확산을 저해한다는 것이죠. 추기경님의 '성인화'에는 저도 반대하지만, 청년기의 일부 행적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성인화'에 반대할 더 요긴한 이유들을 제대로 보기 힘들도록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09-02-22

에르네스토  

잘 읽었습니다.^^(댓글도요.)
09-02-20

갈물  

김추기경님이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정합니다. 그랬기 때문에 후반의 이런저런 언행이 더욱 충격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러나 가톨릭 교회를 살리고 키우기 위해 뮈텔 주교는 친일을 했고, 김추기경은 처음에는 민주화를 지원했다가 좀 지나서는 이회창과 명박 장로를 지지했다고 하면, 가톨릭 교회라는 집단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이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집단이기주의라고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선교의 대상인 조선백성, 혹은 한국국민들의 인권보다는 교회의 성장, 확대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인권 문제까지도 교세의 확장을 위한 방편으로 간주했을까요?
종교란 게 원래 그런 거야, 라고 한다면, 종교인이라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이 굳이 감안하고 존중해줄 이유도 없어집니다. 저는 종교인 가운데서도 그렇지 않은 분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보안법의 폐지는 어느 한 정파의 주의주장이 아니라 국민일반의 인권 문제였습니다. 종교인이니까 보안법 문제에 간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분명한 정치적 입지를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 악법의 폐지를 반대한 까닭이 종교인으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하면, 그 종교인의 내면에서 인권 문제는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냥 추기경님의 민주화나 상황 인식에 그만큼 한계가 있었다는 정도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쥐박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다"는 식의 치하를 한 것과 비슷한 한계겠지요.
그리고 지금 추기경님의 선종을 놓고 온 언론이 벌이고 있는 행태는 분명히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09-02-21

문천  

저도 개인적으로는 추기경님 말년의 정치적 퇴행에 아쉬움을 많이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마치 정치인을 평가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은 무리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아무튼 존경과 기대를 모으신 만큼 사람들에게 착잡한 마음을 남겨놓고 가셨는데, 이 착잡한 마음을 스스로 달래기 위해 저는 교회사의 맥락에서 그분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리해 본 겁니다.
위에 다반향초님도 비판적 시각의 댓글을 달아 주셨는데, 그에 대해서는 직접 대꾸하기가 어렵습니다. 친일을 원죄로 보는 시각에 저는 동의하지 않는데, 그 문제를 얘기하려면 너무 복잡해서요.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님이 진행 중인 연구와 분석이 매우 요긴하고 적절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일 행위를 '매국형', '직업형', '전범형' 등으로 구분해서 보자는 제안이지요. 친일 문제의 공론화에 앞장선 민족문제연구소가 그 문제의 정리 방향을 잡아 나가는 데도 다시 앞장서는 것이 매우 반갑고 고맙습니다. 나중에 시간 넉넉할 때 의견을 붙이려 합니다.
갈물님의 지적에 대해서는 대략 동의하고 공감까지 합니다. 저는 추기경님이 성인이라기보다 현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 가톨릭교회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그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신 현명함에서 그 분의 업적이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다." 이런 말에 눈쌀이 찌푸려지지 않는 사람과는 저도 어울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80대 노인의 판단력에 대한 아쉬움이 20년 전까지 그분의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하나의 티끌은 될지언정 그 업적을 가리거나 지울 수는 없을 겁니다.
추기경님의 선종을 놓고 언론에서 요란떠는 것이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은 들지만, 크게 잘못된 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연쇄살인범 일 때문에 자라 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느낌도 드는군요.
09-02-21

예의지지자  

문천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친일 인명사전을 보면 종교인 친일파 중 개신교 58명, 불교 54명, 천주교 7명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 각 종교의 종교인 수나, 교인 수에 대한 통계를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위 숫자로 각 교파의 친일정도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당시 종교인의 수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질문드립니다.

일견 생각하기에는 불교가 제일 많았을 것 같고, 개신교나 천주교는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워서, 역사학자이시니 혹시 알고 계실까 해서 질문드립니다.
09-02-21

문천  

모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한 번 알아보시죠.
예의지지자님 아래 덧글도 잘 봤습니다. 그런데 가톨릭, 개신교와 불교를 나란히 비교하는 데 별 의미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직 면에서 각 종교의 성격이 전연 다르니까요. 가톨릭은 교회 전체가 통합성을 가진 하나의 조직이지만 개신교는 서로 관계 없는 수많은 교회들을 총칭하는 것일 뿐이죠. 불교의 통합성은 가톨릭보다 약했고요.
09-02-21

예의지지자  

감사합니다. 꼭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천주교의 친일인사가 전체 종교인 수에 비해서 개신교나 불교와 같은 비율이라면 저도 천주교를 비판해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교파를 나란히 비교하는 문제는 적어도 재산관계에 있어서는 의미있는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물론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 민주주의나 민족문제에 있어서는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개신교의 조직상 통합성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이념적 단일체로써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개신교나 불교나 전체를 대표하고 담론을 주도하는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호 아무 관계없는 개별적 행위체라고 보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리에 있어서도 개신교와 천주교는 명확히 구별가능하며, 동일한 제도를 통하여 목회자가 배출되고 동일한 방식으로 예배 등을 진행하며, 강력한 유일신주의 추종과 공격적 선교정책, 배타적 종교활동, 상업적 포교활동 등은 개신교 전체의 동일한 특성입니다. 물론 천주교는 이런 특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겠죠.
09-02-22

예의지지자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종교의 친일행각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종교전체를 놓고 비교론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개신교의 친일에 비하면 천주교의 친일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천주교의 친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방적인 가치평가에 치우치는 것이라 봅니다. 같은 행위에 대하여는 같은 기준으로 같은 수범자를 대상으로 같이 평가하여, 각각의 책임에 비례하여 그 비난을 귀속시키는 것이 형평성 있는 가치관이라고 봅니다. (특히 개신교회쪽에서는 이런 비판을 할 자격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강도가 도둑놈을 욕하는 격이죠)

그러나 그 이후 민주화운동 시대를 열면서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에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앞장서게 됩니다. 반면 개신교는 친일파가 미군정에 연장된 바와 똑같이, 그대로 미군정과 독재정권에 적극적으로 부역하게 됩니다. 서북청년단과 그 동맹단체 및 산하단체 등을 중심으로 제주 4.3 항쟁 등에서 그야말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고도자본사회로 접어든 시대에는 개신교회는 대표성을 가진 주도적인 교회들을 중심으로 부정과 부패, 비리의 온상이 되며 부패한 보수의 성지로 굳건한 위상과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합니다. 공격전 전도로 확보한 수많은 신도들에게 절대적인 종교의 힘을 사용하여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반면 천주교회는 민주화운동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자본사회에 더럽혀지지 않고 경제적 민주적 도덕성을 뿌리내립니다.

자본제사회에서 이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천주교가 금력을 통한 자본권력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오롯이 종교의 길을 간 결정적인 이유는 천주교는 사유재산을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헌금을 요구하지도 않거니와 관례적으로 모인 헌금은 곧바로 중앙기관으로 보내지고, 신부, 수녀들의 극히 소액의 월급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복지사업을 통하여 곧바로 사회로 재분배됩니다.

그리고 조세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 집단의 도덕성을 명확히 알 수가 있습니다. 천주교는 거의 100% 자발적인 소득세납부를 한 반면, 개신교회는 거의 전혀 납부하지 않았고, 부패한 재물을 축적하고 사유하고 상속합니다. 그 악행은 대부분 다 아시리라고 보고요...

저도 얼마전까지만해도 종교에는 무관심했는데, 조세와 관련한 각 종교의 태도를 알고부터 그 때부터 관심이 쏠려서, 각 종교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하여 부지런히 독서하고 검토해본 결과 이러한 결론과 가치판단을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종교는 분명히 비영리공익단체입니다. 종교가 금력이나 권력과 결부되는 순간 종교는 썩게되고, 종교가 썩으면 필연적으로 사회전체가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이 이점입니다. 종교는 인간 내면의 사상영역에 광범위하게 침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학교다닐 때 어떤 교수께서 21세기 가장 전도유망한 사업은 바로 개신교사업이라고 한 것이 기억나는군요. 교육, 의료 등과 마찬가지로 종교는 그 공공성을 엄격히 유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회전체의 생명력과 관계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현대뿐만 아니라 세계종교사 전체를 반추했을 때 명백히 도출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존경받는 이유는, 천주교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 안위에 자족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는 점에 있겠지요. 종교계에도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고 개별 종교인이 그러한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바람직하고도 또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대표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렇게 실천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라 봅니다.

높은 자리란 항상 책임도 크고,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안락한 황금의자에 집착하지 않고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회변혁에 참여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강력한 양심의 명령이 아니고서는 행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 같은 범인이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교파 전체의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대표지위에 있더라도 독단적인 행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천주교 전체의 도덕성을 징표하는 것이겠지요.

개신교도 불교도 이러한 점에서 그 누구도 교파의 수장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일이 거의 없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불교는 완전히 방기했고, 개신교는 오히려 압제자의 권력에 적극적 악의적으로 봉사하였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죠.

저 또한 말년의 김추기경의 퇴행적 행보에 대하여는 상당한 실망감과 배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민주화에 공헌한 점과 아울러 보면 전체적인 평가를 뒤집을 만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는 전체를 종합하여 평가하지 않고서는 모든 사람을 적개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 맥락에서 박정희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 어떤 경제적 공적에도 불구하고, 인명살상과 인권침해가 정도를 지나쳐서 긍정적인 평가를 뒤집기 때문이고, 그러한 평가가 일반적으로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공감대를 거쳐, 일반적인 승인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겠죠. 한나라당 의원들도 최소한 대외적 입장에서는 독재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습니다.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런 것이 역사의 힘이고, 사회도덕의 힘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김추기경에 대한 몇가지 부정적인 문제에 대하여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전체적인 평가를 뒤집을 만한 정도에 이르지 못한 점과 사람이 늙으면 누구나 보수화될 수 밖에 없다는 인간본성을 아울러 감안해서, 정치권력이나 자본금력과의 결탁한 점이 전혀 없이, 그냥 한 노인네가 나이먹어서 자기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에 대하여 큰 무게를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정도 아량도 없이 어떻게 헌법상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말할 수 있을까요.

관용의 정신에서 보아도, 얼마든지 관용의 범위안에 포섭되는 것이지 불관용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민주사회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끼친 바도 없고, 너무 미미한 소리라서 별 영향력을 미친바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권력과 결탁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결코 용서치 못했을 것입니다.

( 개신교를 믿는 개개인의 인격이 아닌, 부패한 개신교회라는 사회적 실체를 대상으로, 감정에 기한 말씀 한 마디 드리자면, 제가 느끼기에 개신교회 쪽에서 괜히 질투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인과응보 아니겠습니까. 아마 개신교회 쪽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렇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은 나오지 못할거라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40만명 조문...말이 쉽지, 아무리 씹어대더라도 이 숫자에 담긴 사회적 의미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믿습니다. 열등감이나 질투보다는 그냥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사회변혁에 참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일부 진정한 목회자님들과 개신교인분들께는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09-02-21

촌사람  

종교인 본연의 자세로 소외된 곳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다독거리며 정치에 중립적인것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하지만 보안법 문제라든지 사학법 등에 대하여 처신하는것을 보고 또한 2007년 대선전에 이명박이 찾아갔을때 누가 대통령이 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말씀 하실때 일본군 장교복을 입은 모습이 떠 오르는것은 나만 그랬을가요?
젊을때 일본 장교한것은 별로 비난하고 싶지 않다, 마찬가지로 박정희 만군 전력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박정희는 쿠데타와 대통령직 수행과정이 별로 잘했다는 생각이 안들듯이 추기경도 말년의 모습이 결코 존경스러운 모습만은 아니었다. 돌아 가신분은 좋게 말을 하는것이 우리의 정서이지만 그것은 일반인에 한한 일이고 영향력이 지대한 분들은 돌아가신분이라도 마냥 좋은것만 이야기 하는것은 또하나의 역사왜곡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장례식을 보면서 추기경님은 지고지선의 화신으로만 비쳐서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돌아가신분에게 대단히 죄송스럽지만 너무 일방적으로만 국민들이 아는듯 하여 양면을 다 볼수있게 도움이 될까해서......
09-02-21

콩깍지  

김수환 추기경님의 명복을 빌어봅니다.우리가 어렵고 힘들고 가난한 시대를 지나올 때 고비마다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그런 분으로 저는 그 분을 기억합니다 카톨릭의 수장으로서 우리 나라의 정의와 사랑과 나눔 용서와 화해 상생으로 가는 성직자로서의 그 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크나큰 버팀목이었고 한국의 격동기의 정신적인 지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의 삶을 저는 다 알지도 못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의 종교인으로서의 자기 임무를 충실해 해왔고 한국의 카톨릭과 힘없고 약한 울 나라의 무수한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지셨던 분이라고 기억합니다 우리 민족의 고난과 수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그대로 따라서 걸어가셨으며 그리하여 모든 한국인의 존경을 안고 가시는 그 분이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나라의 이 어려운 경제환경과 냉엄한 국제질서속에서 힘겹게 나아가는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는 수호신이 되어주실것을 빌어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하늘나라에서 고이 잠드소서~
09-02-23

강물처럼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 문제 참여도 교황의 압제 받는 계층에 대한 관심 표명이 있은 후의 일이다..
즉 그는 훌륭한 천주교 신자였지 애국자 또는 민주운동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다반 향조님 의견에 동의...
09-03-02

시민광장 일정표 시민광장
31334 아고라 펌(떡방) ........부동산에 관한 견해중 내가본최고의..   3 울트라진이 09-02-22 5 0 779
31333 당신들은 틀렸다!   5 국사봉 09-02-22 4 0 857
31332 정 떨어지게 하는 법   2 눈팅 09-02-21 0 0 702
31331 천천히 토론합시다......... 바쁠것도 없는데........ 울트라진이 09-02-21 3 1 543
31330 [동영상] 지나간 영상입니다 하지만..내용을 함더.. 미늘바늘 09-02-21 1 1 660
31329 어이 마케터, 갈데도 없는데 여기서 놀지 그래.   3 시민팬 09-02-21 1 2 732
31328 토론이 되지 않는 이유   27 마케터 09-02-21 8 0 1477
31327 어이 심사랑, 윤리와 정책을 구별도 못하나?   2 시민팬 09-02-21 0 2 643
31326 서사연 심포지엄 진보 학자들 한목소리... 김근태·유시민도..   1 ty 09-02-21 1 0 795
31325 사민주의 그 이상과 현실   3 귄터반트 09-02-21 7 0 775
31324 어이 잡부 그리고 루제로스, 자네들이 놓치고 있는거   7 시민팬 09-02-21 0 4 853
31323 [제안] 뜨거웠던 일주일, 건전하고 흥미진진한 시민광장 노선..   3 루제로스 09-02-21 14 1 730
31322 ●● 만평 종합 2009년 02월 21일 토요일...아직도?   1 순수 09-02-21 1 0 645
31321 마케터와 잡부, 그리고 유시민의 [사회자유주의]   1 잡부 09-02-21 6 0 678
31320 열린우리당 해산무효소송 상고이유서   5 국사봉 09-02-21 2 0 1209
31319 아니 이럴 수가... 으악 09-02-20 1 0 572
31318 이 정권은 형용모순의 난장판 정권이다. 늘 처음처럼 09-02-20 6 0 1459
31317 한번 웃어봅시다....가볍게 클릭.클릭.........   2 네이버하이에나 09-02-20 0 0 2919
31316 김수환추기경에 대한 가벼운 단어와 판단들은 거두어 주시기..   6 노아-2 09-02-20 15 4 920
31315 봄이 오면 북방에 꽃이 피겠습니다 ?? 09-02-20 0 3 597
31314 심지어는 혁명에 성공했다가 선거에서 져서 정권을 내줬다가.. 투사 09-02-20 0 0 2129
31313 [아고라 펌]딴나라당 알바 수기   1 준마 09-02-20 0 0 868
31312 그런데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선거에서 집권한 모택동주의 그.. 투사 09-02-20 0 0 746
31311 추기경의 죄 그리고 신격화,,,,, ㅠㅠ   60 다반향초 09-02-20 147 10 2925
31310 세계에는 아직도 포기안한 그룹들이 좀 있읍니다 투사 09-02-20 0 0 841
31309 어이 마케터, 개혁의 주체가 누군데? 시민팬 09-02-20 0 9 640
31308 세상을바꾸는 작은것들..   2 영업용기사 09-02-20 12 0 686
31307 도대체 언제까지 관료탓만 할껀가?.   4 마케터 09-02-20 12 0 781
31306 [펌]정치권도 꽃남 패러디…구준표-홍준표, 금잔디-전여옥, M..   1 준마 09-02-20 3 0 671
31305 왜 사회주의여만 하는가?   16 시민팬 09-02-20 0 1 748
31304 착시(심심풀이)   29 ^핑^ 09-02-20 1 0 1119
31303 한국경제의 근본 개혁이 안되는 이유 -김종인 박사(펌)   2 aha 09-02-20 0 0 803
31302 [2월 26일] 서울은평광장 창립을 추진합니다.   4 당희(당원희망) 09-02-20 7 0 842
31301 어이 마케터, 한나라당하고 뭐가 다른데?   16 시민팬 09-02-20 4 3 921
31300 엄마가 좋아....아빠가 좋아?   6 ball 09-02-20 12 0 893
31299 눈물 진심보기 09-02-20 2 0 639
31298 같이 놀아야지, 혼자 놀다 가면 어쩌유?   13 사랑시 09-02-20 17 2 1136
31297 아이디어 - 8 출석부 컨테스트   15 가람^^* 09-02-20 13 0 2504
31296 내 사랑 자기에게...사랑해 자갸....미치도록!!   3 한숨고백 09-02-20 3 0 977
31295 내 사랑 자기에게...사랑해 자갸....죽도록!!   5 진심고백 09-02-20 3 0 864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김수환 추기경, 그는 과연 변절했..   13 Lucida 09-02-20 9 3 3742
31293 한국경제, 제3의 길은 가능한가?-이정우교수 밑에글이 참고자..   1 aha 09-02-20 3 0 976
31292 (펌)미국 금융위기와 자본주의의 미래-이정우교수   9 aha 09-02-20 1 0 2337
31291 "건강의 적 3%" by 성남광장 솔빠님의 건강한(?) 출석부   12 Lucida 09-02-20 12 0 5177
31290 스나이퍼도 뜨고 나도 뜰 때가 된 것 같네. 잘들 게이소.   5 더불어 09-02-20 4 1 979
31289 경주 최부자 이야기 2 - 일제시대와 광복 이 후   4 천국문지기 09-02-20 10 0 7810
31288 사민주의는 한국의 현실에 무리다   6 마케터 09-02-20 13 1 5485
31287 (한겨레펌)문재인 “노 전 대통령, 조문 오고 싶었지만…”   4 도연아빠 09-02-20 5 0 1114
31286 나에게는 사랑하는 친구가 하나있다..   17 거지 09-02-20 5 9 926
31285 어이 잡부, 뭐좀 아는거 같은데?   1 시민팬 09-02-20 0 7 661
31284 일본 공산당 대약진중! 젊은 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공산..   5 루제로스 09-02-20 8 4 961
31283 ●● 만평 종합 2009년 02월 20일 금요일...이제 그만!   1 순수 09-02-20 5 0 647
31282 사회자유주의: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우아한 조화   12 반전할까요 09-02-20 11 1 955
31281 사민주의는 섹시하지 않다. 마케터의 오류...   11 잡부 09-02-20 7 3 881
31280 잘 놀았습니다. 다음에 봅시다   38 스나이퍼 09-02-20 23 1 1626
31279 무채색 나라의 색안경 나름다움 09-02-20 1 0 591
751752753754755756757758759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