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있는 글쓰기]
추기경님에 대한 일부 진보진영에서의 비판여론이 있는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 시민광장에서는 이부분에 대하여 공론화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그런가는 굳이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꿈을 생각한번 해보면 다들 알수 있을 듯 합니다.)
다행히도 5일장이 끝날때까지 어떠한 글도 올라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다반향초님께서 공론화 해버리셨네요.
좀 아쉽습니다. ("죄"라고 표현하신 그 단어가 적절한 것인지? 그런 당당함이 무섭습니다.)
그래서 공론화 되어 버린 상황이라면 다른부분에서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제가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을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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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오해를 불러 올 수 있고 혹은 종교간의 불신과 선입견에 의해 뜻이 왜곡될 수 도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한 우려를 조금은 불식시키기 위해서 저에 대해 말씀을 조금 드리겠습니다.
동토의 땅 대구출신이고 대학들어와 1학년때 구로구청투쟁사영상을 보고 사상적 충격을 겪은 이후로 5.18과 6월항쟁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돌맹이 꽃병 좀 던졌던 학생시절을 보냈고 사회에 나와서는 노사모 참정연 열린우리당 시민광장 서프라이즈등을 통해 사회인으로써의 생활정치에 대한 내적 욕망을 분출하고자 출구를 찾아헤매고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분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글들중 김수환추기경의 선종소식에 대하여 변절자니 지옥에 갈거니 기회주의적이니... 많은 글들을 접하면서 여러분과 같은 곳을 지향하고 같은 세상을 만들기를 염원하는 한편 내 삶과 내 영혼속에서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추구하는 자랑스런 천주교신자로써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제가 답답함을 느끼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노년의 말씀들과 행동들 한가지 한가지들에 대하여 느꼈던 실망은 저 또한 여러분과 다르지 않지만, 여러분과는 다르게 천주교회의 역사와 천주교회의 조직과 천주교회속에서 차지하는 추기경의 의미에 대해서 이해하고 알고 있는 저로써는 개인적인 실망만 생각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터 실망만 생각할 수 없었던 그 무엇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혁명가도 정치가도 사상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닌 하느님의 것을 온전히 지키고 유지하고 하느님나라를 구현하는데 자신의 모든 삶을 봉헌하기를 약속한 성직자일 뿐입니다.
70년 80년 민주역사 속에서 김수환신부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낮은자를 향해서 살아가기 위해 충칼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실천을 하신 분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민주의 상징으로 까지 의미부여되셨던 분이었으니 최근 몇년간 보여준 MB정부에 대한 스텐스에 변절이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실망감을 가지게 되었겠지요.
그런데 여러분...
김수환추기경은 정치가 혁명가가 아닌 성직자입니다.
천주교 성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가장 첫번째는 하느님께서 행하신 것 처럼 하느님 사랑을 통해 낮은자들보다 더 낮아져 낮은자들을 섬기고 돌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는 하느님께서 손수 세워주신 천주교회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입니다.
이 두가지 사명이 천주교 신부가 되는 모든 성직자들이 평생을 두고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약속이며 자신의 모든 의무입니다.
이 의무의 의미는 세속적인 약속과 의무와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이해하실 겁니다. 하느님과의 영적인 약속...)
70년 80년의 민주화역사안에서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첫번째 사명인 낮은자들보다 더 낮아져 목숨까지도 걸고서 그들을 섬기는 사명을 충실히 행하신 것입니다.
이 모습을 우리는 정치가 혁명가 사상가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온전한 성직자의 사명을 행했을 뿐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70년 80년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성직자의 두번째사명을 질머지고 가실 많은 천주교회의 어르신인 성직자분들께서 계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천주교회를 외부의 온갖세력(정치세력일수도 있고 각종이단일수도 있고 신학적으로는 악마와 사탄의 세력일수도 있겠죠)으로부터 온전히 지켜내고 보전하는 일... 그것은 여러 선배 성직자들이 든든하게 사명을 수행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 이후로 어느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더이상 젊은 사제 성직자의 첫번째 사명에만 충실할 수 없는 천주교회를 지키고 보존해야하는 그 역할을 해야 하는 지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 80년 젊은 김수환의 역할은 현재의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전종훈신부님과 같은 젊은 성직자들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예전에 그가 첫번째 사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뒤에서 든든하게 성직자의 두번째사명을 감수하고 받아 않았던 선배성직자들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었을 뿐입니다.
천주교회의 어른이 된 김수환 추기경에게 최전선에서 칼을 들고 싸울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칼을 들고 싸울 분은 김수환추기경이 아니라 전종훈 신부와 같은 젊은 성직자들이 그분의 뒤를 따라서 묵묵히 이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돌도 던졌고 꽃병도 만들어 던졌고 백골단들에게 둘러싸여 집단폭행도 당하고 (빨간줄은 그이지 않았습니다만) 막걸리한잔에 주먹쥐고 밤새워투쟁가도 부르고 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의 아이들에게도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지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아픔을 느끼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이 아빠의 젊었을때 보다 조금은 더 치열하게 살아보기를 기원하며 아이들을 키웁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저의 젊었을때와 같이 파이와 꽃병을 들고 거리로 나가 투쟁가를 높이 부르며 대오의 맨앞에 설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대오의 옆과 뒤에서 제가 젊었을때 대오의 선두에 있을때 길옆에서 학생 수고가 많아...라고 한마디씩 해주시던 아주머니와 대오의 뒤에서 쳐진 학생들 숨겨주면서 시위를 하더래도 밥이나 먹고해라고 천원짜리 한장 찔러주시던 아저씨들 처럼 저 역시도 지금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지켜야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켜야하는 가족... 그렇기 때문에 이 사회속에서 약간은 타협하고 약간은 비굴하기도 하고 약간은 비겁하기도 하면서 이 사회속에서 가족들을 지켜나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제 속의 정의를 위한 신념과 저의 자식들이 이 사회의 아픔에 대해서 인식하고 이사회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자유롭고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제가 예전 학창시절 대오의 선두에 섰던 제가 지금 가족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대오의 옆과 뒤로 물러서있고 약간은 비겁하고 약간은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는 제가 변절자인가요?
김수환 추기경님도 그와 같게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정치가도 혁명가도 사상가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명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느님께 봉헌한 성직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성직자로써 하느님의 사명을 따라 살아갔던 분일 뿐입니다.
젊어서는 성직자의 첫번째 사명인 하느님께서 가셨던 그 길따라 낮은자들, 어려운 이들, 가난하고 불쌍한 길잃은 양들의 편에서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하고서 그길을 갔던 성직자였으며 천주교회의 어른이 된 노년에는 그 길은 젊은 성직자들에게 맞기고 자신은 천주교회의 어른으로써 천주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약간은 타협하고 약간은 비겁하다고 비난받을 길을 걸어 간 성직자일 뿐입니다.
성직자라는 길은 절대로 편한 길이 아닙니다.
낮은자들보다 더 낮아져야하는 길이며 천주교회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때로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도 가야하는 길인것입니다.
마치 저와 같은 평범한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천주교회의 성직자의 사명에 대해 그리고 성직자의 삶에 대해 이해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직자로써 성직자의 사명에 따라 오로지 주님만 보고 그 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신 큰 성직자의 한 평생의 봉헌의 삶을 너무나 가벼운 단어와 너무나 가벼운 판단으로 제단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한명의 정치가 또는 한명의 혁명가 사상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천주교 성직자로써의 삶을 살아간 한명의 천주교성직자를 보내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도 아쉽고 실망스러운 면들 있었으나 천주교 성직자로서의 삶을 생각할때 그분은 천주교회의 온전한 성직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신 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천주교 신자로써 그 분의 영혼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