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회관에 모인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말이다.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 변형윤) 주최로 '한국경제 어디로 가나'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들은 "현 정부가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경제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날 심포지엄 자리에선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개혁진보진영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건강한 협력관계를 모색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금융정책] 김상조 "지금은 경제위기인 동시에 정치위기"
|
|
▲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
| ⓒ 유성호 |
| |
이날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 평가-글로벌 금융위기와 MB노믹스의 양립 불가능성'라는 논문에서,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로 요약되는 규제완화 기조는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규제 강화'라는 국제적인 환경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를 "무모한 도박"이라고도 말했다.
김 교수는 "이 때문에 현 정부는 단순히 '불운한' 정권 차원을 넘어, 경제 위기를 심화시킨 '실패한' 정권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현재의 경제위기 원인에 대해, 단순히 미국발 금융위기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서 상당한 부분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국내 금융부문의 무리한 확장과 경영 실패, 이에 따른 금융감독당국의 감독 실패도 위기 원인이라는 것이다.
최근 '3월 위기설'에 대해 정부가 "근거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정부가 전혀 위기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자꾸 '펀더멘탈이 튼튼하다'면서 위기를 부정하고 있지만, 1980년대 금융자유화 이후 발생한 통화위기는 대부분 은행위기를 함께 가져오는 쌍둥이 위기"라며 "쌍둥이 위기는 경제의 펀더멘탈과 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밝힌 '쌍둥이 위기'는 금융권의 외채 규모 급증에 따른 외화 자산과 부채의 불일치로 통화의 위기가 발생하고, 동시에 은행까지도 위기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는 "개방된 경제환경 속에서 환율과 금리, 물가, 주식시장 등에 정부가 개입하면서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웠고,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도, 그의 비판은 더 날카로웠다. 김 교수는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과 금융권의 구조조정 방향은 전형적인 관치금융과 유사 공적자금 투입 방식"이라며 "이러한 방식으론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고, 공적자금 조성과 부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합법적인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 위기는 경제위기인 동시에 정치 위기"라며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과 'MB노믹스 추진'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루빨리 깨닫고,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공공부문] 김상곤 "전기, 가스, 물 등 간접 민영화 추진... 국민 속이는 꼴"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상곤 한신대 교수는 현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에 대해 "국민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이날 '사회공공성과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이라는 발표문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기업 매각을 통한 정부 재정 수입 확보, 부실 공기업 예산 축소 등 대대적으로 민영화가 추진됐다"면서 "이는 국내외 민간 독과점에 따른 경제력 집중,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정부는 재정적자 축소, 작은 정부 실현 등의 이유로 전례없는 공공기관 민영화와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여전히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공공서비스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같은 서비스마저 축소하려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정부 역할을 포기하는것이라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이밖에 김 교수는 가스 등 에너지산업과 항공, 철도 등 주요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결국 민간 기업의 독과점 이윤으로 이어지고, 소비자에게는 가격 인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를 포함한 구조개편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특히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국민의 후생복지를 위해 향후 국가 경제에서 역할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전강수 "시장경제 효율성보다는 부동산 소유자와 건설업자를 위한 것"
|
|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
| ⓒ 오마이뉴스 권우성 |
| |
세 번째 주제는 부동산 문제였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만능주의적 부동산 정책'이라는 논문에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토건국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시장만능주의 정책'"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규정의 바탕에는 현 부동산 정책이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경기와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부동산 소유자와 건설업자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는 판단이 놓여 있다.
그는 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무력화,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 등이 향후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투기 광풍, 구조조정 지연 등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시장 친화적인 토지공개념 및 국토보유세를 도입해 보유세 강화 정책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둘째는 건설업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해 공공주택 건설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거 빈곤층을 우선시하는 실효성 있는 주거복지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무엇보다 집값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변 교수는 "현재의 주택가격 수준은 여전히 높다"면서 "땅값과 건설비를 낮춰서, 집값을 더 떨어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가구 1주택을 철저히 유지하되, 빈곤층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정책] 김기원 "선진화 아닌 후진화로 가는 한국, 미래가 어둡다"
마지막 토론 발제는 김기원 방송대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경제위기와 현 정권의 경제정책'이라는 논문에서 "현 정부는 부실한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을 위해 일반 국민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감세정책으로 대기업과 부유층에 혜택을 부여하고, 부동산 거품을 조성해 '거품 붕괴'의 손실을 표면화시키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분배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감세와 규제완화 등 시장 만능주의를 내세운 정부의 경제정책으로 국민소득은 감소하고,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현 정부는 재벌개혁을 후퇴시켜 자유주의를 약화시킬 것이고, 복지주의에 대해선 강화시킬 의향이 없다"면서 "대신 감세와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같은 시장 만능주의를 내세우고, 개발독재 시대로 회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동안 현 정부의 개발독재 경향과 시장만능주의 성향이 더 두드러질 것"이라며 "이 같은 정책기조가 그대로 지속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유종일 교수(KDI 국제정책대학원)는 "우리 경제가 앞으로 얼마나 어두워질지 잘 모르겠다"면서 "결국 국민들의 고통을 좀 더 줄이기 위해서라도 개혁진보진영이 현 정부와 거국적인 경제대화합의 장을 마련하는 등의 전향적인 모습도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교수)를 비롯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노무현 정부 인사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