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올라온 몇 편의 글들을 보니 이제 나는 확실히 좌파로 찍힌 것 같다. 심지어 나를 사민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보는 분들도 있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상호규정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때 시민광장내에서의 정체성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기쁘다.
사회자유주의 논쟁은 상당히 우발적인 것이었지만 여러모로 시민광장에 꽤 커다란 충격을 남긴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어쨌든 스나이퍼 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으니 이제 수비수 입장에서 벋어나 공격수 입장에서 좀더 공세적으로 나가야겠다. 공격은 수비보다 훨씬 재밌다.
1. 대구도 한때는 날리던 좌파의 메카였던 적이 있다?
2009년 현재 대구는 우파의 총본산이자 다이혼에이(大本營)다. 물론 강남이라는 현대적인 멀티 커맨드센터가 있긴 하지만, 강남 우파들에게 대구는 정신적 고향이자 우파의 원형으로 남아있다.
물론 대구에도 이른바 '좌파'적 시민들이 아주 많이 살고있다. 그러나 박근혜가 한 번이라도 대구 행차를 나서기라도 하면 그 '좌파'적 시민들은 숨도 못쉬는 곳이 바로 대구다. 대구를 '고담 시티'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던데 적절한 용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대구도 한때는 좌파의 메카였다. 일제 강점기에서 박정희의 등장 전까지 대구는 확실히 좌파적 기획의 진원지였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자본론』을 읽었던 도시이고, 헌책방에서 가장 늦게까지 『자본론』이 발견되었으며, 4ㆍ19에 불을 댕겼던 도시인 대구가 좌파의 메카였던 곳이 바로 대구란다.
그런 대구에 깃발을 꼽으러 내려갔던 첨맘 님은 지금 돌아보건데 돈키호테였다. 로시난테와 산초를 데리고 '고담 대구'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어떻게 보면 돈키호테보다 더 무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2. 좌파/우파의 기원, 좌석 배치가 운명을 결정하다.
정치에 관련된 말이나 개념중에는 그 기원을 찾아거슬러 올라가보면 상당히 생뚱한 경우가 많은데, 그 중에는 좌파/우파도 그렇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라는 개념들은 애초에 의도했던 의미와 현재에 쓰이는 뉘앙스가 거의 상반되는 경우다.
"좌파/우파라는 말은 프랑스혁명에 기원을 두고 있다. 1792년에 프랑스는 절대주의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했다. 공화정 수립의 주체였던 국민공회는 크게 지롱드당과 자코뱅당의 두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지롱드당은 부유한 부르주아지를 대변했고 지방 분권과 경제적 자유주의를 주장했다. 자코뱅당은 역시 부르주아 출신이었지만 이들은 소시민층과 민중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주장했다."
"좌파/우파라는 명칭 자체는 정치적 성향에서 나온 게 아니다. 마침 국민공회에서 지롱드당은 오른쪽에 있는 좌석에 앉았고, 자코뱅당은 왼쪽에 앉았다.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좌익과 보수적이고 온건한 우익의 개념은 단순한 좌석 배치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3. 왜 진보가 아니라 좌파를 말하는가?
한국 사람, 특히 50대 이상의 장년층은 좌파라는 말이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과 냉전이 가져온 끔찍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좌파대신 '진보'나 '개혁'이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를 지나면서 '좌빨' 프레임은 상당히 무력화되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좌파는 빨갱이고 빨갱이는 쳐죽여야 할 악"이라는 프레임이 상당 부분 파괴된 것이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진보'라는 단어는 저주받고 경멸받는 대상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조중동을 비롯한 우파의 전략적 기획의 일환이기도 했다. 이제 "진보는 슬프도록 무능하다","진보는 항상 전투적이다", "386은 알고보니 머리에 든것 없는 꼴통먹물이었다"라는 혐오적인 수식어가 진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는 특히 88만원 세대와 X세대에게 자연스럽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진보'라는 단어와 함께 노무현 정부 동안 저주받은 단어는 당연히 '자유liberal'다. 대중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더 이상 '자유'라는 단어에서 긍정적인 요소만을 떠올리지도 않는다.
4. 새로운 세대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6.25 세대는 이제 거의 죽어간다. 유신세대는 여전히 정정하지만 대부분 확고한 우파다. 386은 이미 매력도 말빨도 대부분 상실했다. 88만원 세대와 X 세대에게는 '좌빨'이라는 개념보다는 '진보는 슬프도록 무능하고 촌스럽다'는 개념이 훨씬 강하다. '진보', '개혁' '민주'를 항상 입에 물고 사는 민주당이 왜 그토록 인기가 없는지, 특히 젊은 세대에게 관심의 대상조차되지 않는지를 설명해 주는 한 가지 이유이다.
이곳 시민광장은 386 세대와 유신세대가 주를 이룬다. 한 마디로 쉰세대고 업데이트가 안 된 세대다. 여전히 '진보', '개혁', '민주'에 집착한다. '좌파'라는 단어에서 '보살핌', '배려', '자상함'이라는 느낌보다는 '혁명', '급진적'이라는 개념을 캐치해낸다. 그래서 소심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오바마는 진보나 리버럴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그는 'Change'를 내세웠다. 그는 미국의 우파들이 쳐놓은 프레임을 잘 알고 있었고 기질적으로 그런 것을 잘 캐치해내는 사람인 것 같다. 그의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정치적 프레임을 정확히 캐치한 것이 성공의 한 요인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첨맘 님이 '좌파'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 준하는 새로운 프레임이 지금 한국에서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