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설선생.
파시즘이 뭐라 생각하오?
파시즘은 모든 인간관계를 억압의 관계로 바꾸기 때문에 파시즘인것이오. 크게는 국가가 인민을 억압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 국가가 무엇이오? 파시스트 국가에서도 국가권력을 선출하는 것도 바로 인민이란 말이오. 즉 인민이 곧 국가요. 인민 스스로가 인민을 억압하는 구조가 국가란 말이오.
선생은 아마도 2009년 대한민국에서 이명박만 없어지면 또는 한나라당만 없어지면 파시즘에서 민주주의로 회복할 것이라 믿으오? 그러니 당신은 파시스트요. 한나라당 부역자이기도 하오.
선생. 2009년 대한민국에서 인민을 억압하는 건 한나라당도 이명박도 아닌 인민 스스로요. 그 자체가 파시스트라는 것이오. 결론만 말하면 인민이 변하지 않고서는 이명박을 추방하고 한나라당 당원 모두를 추방해도 대한민국은 절대로 파시즘에서 해방될 수가 없소.
초설선생.
우리를 스스로 억압하는 그것은 바로 자본이오.
자본주의가 끔찍한 체제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모든 인간적 관계를 상업적 관계로 바꾸어버린다는 것이오. 이를테면 나는 아이들이 밥을 함부로 남기면 “고생한 농부들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말하는데 그게 바로 인간적 관계지요. 다른 이의 노동이 나를 위하고 내 노동이 다른 이들을 위하는 것 말이오.
그런데 자본주의에선 그게 바뀌죠. 아이들이 이렇게 반문한다고 가정해보시오. “농부들은 자기 돈 벌려고 하는 거잖아.” 이게 바로 상업적 관계이오. 이런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단지 거대한 기계속의 부품이오. 모든 노동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일 뿐 아무런 자부나 보람을 가질 수 없소.
대한민국은 참 어이없게도 오랜 싸움으로 이룬 민주화가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귀결됐소. 한국인들은 수십년 동안 파시즘만 물리치면 좋은 세상이 온다는 생각에 가득 차 있어서 새로운 파시즘, 더 무서운 자본의 파시즘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었소. 80년대의 좌파들은 동구사회주의의 몰락과 제 관념성으로 지리멸렬하던 상태요.
그래서 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아무런 제한 없이 신자유주의로 달리게 된 것이오. 민주화와 개혁은 서글프게도 곧 자본화, 신자유주의화였던 것이오. 신자유주의화로 인한 문제들은 흔히 말하는 사회복지와 경제적 공공성의 후퇴, 투기자본화로 인한 경기침체, 노동자 계급의 약화 등이 있지만 더 심각한 건 개개 사회성원들의 인격의 변화, 정신의 변화요. 인간이 달라진다는 거지. 돈을 신처럼 모시는 인간이야 어느 시대나 늘 있기 마련이지만 모든 사회성원이 그렇게 된다면 그 사회는 끝장이오.
그런데 9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딱 그렇소. 다른 나라들에서 신자유주의가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한국에선 유일한 살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인데, 그건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등 개혁우파들의 공로요. 다들 인심이 각박해졌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들 하지요. 갈수록 민주화하고 개혁하는데 왜 그렇겠소? 바로 자본화했기 때문이오.
모든 인간적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니 각박해지는 건 당연한 것이지요. 아이들을 인간으로 키우는 걸 포기하고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혈안인 판에 무슨 놈의 사는 재미가 있겠소? 오늘 우리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군사 파시즘이나 그 잔재들(수구세력이라 불리는)이 아니오. 개혁우파들은 여전히 조선일보나 박근혜 따위 파시스트의 잔재들을 가리키면서 금세라도 87년 이전으로 되돌아갈 것처럼 요란을 떨어대지만(탄핵사태 때 유시민 씨의 발광 연기 기억하시죠?) 그건 그저 군사파시즘의 자리를 자본에게 넘겨주는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하려는 수작이오. 이명박이 당선됐소.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한국사회가 87년 이전으로 회귀했소? 한국 사회가 87년 이전의 사회로 회귀하려면 87년 이전 수준의 한국인들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어림도 없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현재의 정치, 경제정책의 기조는 크게 달라질 게 없소. 이미 충분히 반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민주화세력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반동성을 대중들에게 부각시키기엔 좋은 점도 있지요. 거듭 말하지만, 지금 우리의 적은 군사파시즘이나 그 잔재들이 아니라 새로운 파시즘, 자본의 파시즘이오. 개혁정권과 개혁우파 세력은 새로운 파시즘의 하수인들이오. 새로운 파시즘은 우리를 고문하지도 잡아가두지도 않소. 다만 우리의 가치관에 스며들어, 우리를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스스로 꿇게 하오. 그래서 더 무섭소.
초설선생.
윗글은 김규항선생이 3년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오. 마선생의 글에서 파시스트의 향기가 진동해 마침 검색해보니 이런 글이 있소.
대안은 이미 정해졌소. 그것에 역행하는 것을 반동이라 하오. 역사에 반동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더욱 엄격히 하시오.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