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 회원가입
회원 게시판
소설 읽기 -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나름다움 | 2009-02-24 19:37:48 | 조회 1659 인쇄하기
http://www.usimin.co.kr/31993     


트위터 페이스북

 

 

   그 옛날 준식의 가족이 살던 동네엔 빵공장이 있었다. 공장이라고 해야 가정집 안에서 기계를 들여놓고 빵을 만드는 곳인데, 그곳에선 늘 속이 뒤집힐 것처럼 달콤하고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풍겨나왔고, 동네 아이들은 그 집 가까이만 가도 코를 벌름거리며 허기진 뱃속에 냄새를 깊숙이 삼키곤 했었다. 준식의 어머니는 일요일 아침이면 그 집에 가서 일을 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부엌일이나 밀린 빨래 같은 것을 해주고 몇푼의 돈을 받곤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집 식구들이 모두 잘 차려입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집을 나서고 나면, 준식은 그 집 뒷 담벼락으로 갔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의 끝이어서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으슥하고 후미진 곳이었다.

   한참 그곳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으면 판자담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준식아, 준식아" 하는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준식이 바싹 다가가면 판자담 사이에 뚫어진 틈새로 흰 봉지에 싸인 빵이 나오는 것이었다. 준식은 그것을 얼른 받아서 옷 속에다 집어넣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한 번에 몇 개씩의 빵을 빼돌렸고, 다음날에는 그것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이상한 것은 준식에게는 그때 그것이 그렇게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필시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에게는 가족이 굶어죽지 않고 살아 남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의 도덕이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어머니의 도둑질에 동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전투와 같아서 (삶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투 말이다)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군말없이 복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생으로 말하면, 녀석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명령의 부당성에 대해 의심하고 정항할 줄 아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동생과 같은 인간과 어떤 일을, 특히 도둑질 같은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결국 그들의 도둑질이 탄로가 나게 된 것도 바로 동생 때문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 도둑질 덕분에 어머니의 다라이에는 오뎅과 김밥과 함께 새로운 품목이 더해졌고, 그것이 한동안 어머니의 그 기름때 배인 전대를 좀더 불룩하게 해주었다.

   어머니는 훔쳐온 빵을 시장에 내다 팔기 전에 부엌 천장에 걸린 바구니에 보관했다. 어머니가, 아니 그들 모자가 함께 훔쳐내온 빵은 종류도 다양해서 앙꼬빵, 크림빵, 잼빵, 곰보빵 등 별의별 빵이 다 있었다. 그것들은 보기만 해도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갈 만큼 먹음직스럽게 생긴 것들이었지만, 어머니는 장물 관리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어서 준식은 그 중에 단 하나도 축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 몰래 가끔씩 그것들을 꺼내 혀로 빵껍질을 핥고는 했다. 물론 빵의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아마 그때 시장에서 어머니한테 그 빵을 산 사람들 중에 그의 침이 섞이지 않은 빵을 먹어본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의 혓바닥이 느꼈던 감미(甘味) 이상의 맛을 준식은 그 후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날도 그 집 담구멍으로 어머니한테 빵을 받아내게 되어 있었는데, 준식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로 말았다. 아이들과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 일을 동생에게 대신 맡겼던 것이다.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집 담구멍으로 빵을 받아내던 민우는 멍청하게도 그만 그 집 주인 여자에게 발각되었던 것이다. 주인 여자는 그렇지 않아도 오래 전부터 빵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에 의심을 해왔던 모양으로, 당장 동생의 멱살을 잡고 집으로 끌고 왔다. 서울에서 피난을 내려왔다는 그 젊은 주인여자는 동생을 부엌 앞에 세워놓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너 도둑질 하는 게 나쁘다는 거 학교에서 배웠지?"

   동생이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하는 것도 나쁜 짓이라는 거 배웠지?"

   다시 동생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 어서 말을 해봐. 니 엄마가 빵을 어디다 숨겨놨는지 정직하게 말을 하란 말이야." 

   동생의 겁먹은 시선이 준식과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정직한 사람은 천당 가고, 거짓말하면 지옥 간다. 너 지옥 갈래?"

   준식은 그 순간 눈을 감고 싶었다. 녀석의 손가락은 바로 그 부엌 천정에 매달린 바구니를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들통나고 말았다. 그 빵공장 주인여자는 나는듯이 그 바구니는 낚아채었다. 그날따라 바구니에은 훔쳐내온 빵이 한 가득 담겨져 있었다.

  "어마, 어마, 도둑질을 해도 많이도 해처먹었네. 알고 봤더니 여기가 아주 도둑놈 소굴이잖아?"

   그 순간 엉뚱하게도 어머니는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다. 그 웃음이 여자의 화를 돋구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대뜸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아쥐는 것이었다.

  "야, 이년아, 누굴 망쳐먹을라고 이런 짓을 해?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내 그 동안 불쌍하게 여겼더니만 그래 뒷구멍으로 도둑질이나 해? 보기에는 어리숙하게 해가지고."

   두 사람의 난투극을 그치게 한 것은 준식의 아버지였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그 모든 소동을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는 별안간 "에에에이!" 괴성을 지르며 맨발로 부엌에 놓인 연탄집게를 손에 들고 무작정 어머니를 후려패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서슬이 너무나 무서웠던지 그 빵공장 여자도 기가 질린 얼굴로 물러서야만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냥 온몸을 연탄집게에 고스란히 내맡기고만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꼭 미친 사람의 그것 같았다. 하긴 그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었다. 평생을 명분과 체면을 위해 살아온 양반이 그처럼 치욕적인 상황을 당했으니 어찌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갑자기 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울면서 "아부지, 때리지 마이소. 때리지 마이소,예?" 하며 아버지의 팔에 매달렸다. 하지만 준식은 그 순간 동생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어쩌면 녀석이 오랫동안 그들 모자의 도둑질을 묵인해오면서 언젠가는 그 범행을 폭로하고 고발할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그 사건은 그의 나이 열세 살 때의 일이었다. 열세 살이 스물 세 살이 되고, 이제 서른다섯 살이 되었다. 스물두 해의 세월이 지나간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십여 년 동안 그가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살아왔던가를 누가 알 것인가. 교장이나 동료 선생들, 그리고 민우 녀석은 물론이고 그의 아내 역시 알 수가 없다. 아무도 그이 고통을, 그의 외로움과 슬픔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세상은 한번도 그에게 제대로  출구를 열어주지 않았다. 설사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조금 보였다 하더라도 언제나 개구멍을 지나는 것 같은 주눅들림과 비굴함으로 그것을 통과해야만 했을 뿐이다. 준식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 모든 고통의 대가일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민우 녀석은 그 옛날 그들 모자의 도둑질을 폭로했듯이, 준식이 천신만고 끝에 구축한 가정(家庭)이란 그의 작은 성(城)이 사실은 얼마나 알량한 자기 만족과 허위 위에 그어진 초라한 모조품인가 하는 것을 폭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그것을 원했나 원하지 않았나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녀석이 나타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파트 주차장 한쪽에는 공중전화 부스가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곳에는 환히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가까이 갈수록 긴장과 두려움이 점점 심해져서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할 정도였다. 마침내 공중전화 부스에 다다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멍청하게 전화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곧 그는 무슨 거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집어넣었다. 숫자판을 돌리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수화기에서 이윽고 느릿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에, 정보괍니다."

  "곽형사님 좀 부탁합니다."

  "기다리시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수화기에서는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준식은 그게 바로 자신의 숨소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화기를 잡은 손이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만둬라, 홍준식. 마음속 한구석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전화를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전화 바꿨습니다."

   이윽고 귀에 익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긴장이 지나쳐서인지 목구멍이 무엇으로 콱 틀어막힌 듯 말이 잘 빠져나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조차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걱정하지 마. 형수님은 집에 계실 거야."

   아파트 현관 앞에 민우가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식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민우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했다. 그들은 잠시 아파트 앞의 넓은 도로를 굉음을 내며 달려가고 있는 차량의 질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지금 떠나려고 해." 

   그러고 보니 그의 손에는 처음 준식의 집에 올 때 가지고 왔던 작은 비닐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어디로 갈 거냐, 하는 질문을 준식은 입 안으로 삼켜버렸다. 소용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녹천역까지 바래다줄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형은 형수님한테 들어가봐야지."

   그러나 준식은 녹천역 쪽을 향해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발짝 가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택시 타고 가는 게 어때?"

  "아니야, 전철이 편해."

   민우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전철이 있을 시간이지?"

   물론 전철이 다닐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으로 민우를 데리고 갈 순 없다. 지금이라도 택시를 잡아 태워보내면 된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던 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준식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녹천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며칠 전 준식이 처음 민우를 데리고 왔던 바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네 형수한테 무슨 이야기를 했냐?"

   준식은 잠시 말이 없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사랑에 대해서."

  "사랑?"

  "형이 형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지."

  "내가 네 형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걸 네가 아냐?"

  "물론 알지. 형의 그 불 같은 질투심을 보면."

   민우는 어둠 속에서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준식은 말이 막혔다. 후텁지근한 바람에 실려 퀴퀴한 악취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바야흐로 녹천역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민우는 그 말에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준식을 쳐다보았다.

  "형, 미안해. 용서해줘."

  "왜 니가 나한테 용서를 비냐?"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아서. 나 때문에 형이 어떤 식으로든 고통받은 게 있다면 제발 용서해줘."

   준식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녹천역으로 가는 걸음을 멈추고 민우와 함께 뒤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어느새 녹천역은 눈앞에 있었다. 준식은 조심스럽게 눈을 돌려 역 주변을 살펴보았다. 가슴이 점점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멀리 역사 위 개찰구 앞에 두 명의 사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체격이 건장한 사내들이었으나, 아파트 공사장의 노무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준식은 그들을 주의깊게 살피며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그 사내들도 그들을 보았으나 겉보기로는 전혀 이상한 낌새를 챌 수 없었고, 민우는 그들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준식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먼발치에서도 한쪽으로 어깨를 구부정하게 내린 낯익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면서 속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면밀히 계산하고 있었다.

  "잠깐만."

   마침내 계단을 거의 다 올랐을 때, 그는 동생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동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지?"

  "저 사람들 좀 이상하지 않아? 형사 같은데..."

  "설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생은 이미 온몸으로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내들도 이쪽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느꼈던지, 그들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뛰자!"

   그는 동생의 손을 잡아채며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동생은 한순간 멈칫하더니 그를 따라 뛰기 시작했고, 동시에 요란한 발소리가 등뒤에서 쫓아왔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와 캄캄한 어둠 속으로 방향도 없이 무작정 몸을 던졌다. 등뒤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이 가뿐 숨소리가 동생의 숨소리와 함께 섞였다.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공사장의 자재더미가 쌓여 있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동생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뭔가에 발이 걸린 모양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았더니, 이미 사내들이 쓰러져 있는 동생에게 달려들고 있는 중이었다.

  "형, 혀엉!"

   동생이 그를 다급하게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준식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달아났다. 정신없이 달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뛰고 있는가, 내가 경찰을 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수배자는 내가 아니라 동생이 아닌가, 하는 토막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러나 도무지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는 더 이상 발자국 소리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땅바닥에 놓인 시멘트 관 뒤에 몸을 숨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희끄무레하게 그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민우는 잠시 사내들에게 반항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잠깐뿐이고 곧 순순히 끌려가고 있었다. 준식은 숨을 죽인 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땅바닥에 손을 짚어보았다. 무언가 뭉클한 것이 만져졌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똥구덩이 위에 주저앉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서 얼른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온몸의 기운이 모조리 빠져버린 듯 꼼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은 채, 그는 녹천역에서 사내들을 만났을 때 왜 갑자기 도망을 치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속의 한 가닥 양심이 작용한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는 의심을 받지 않으려는 교활한 속셈 때문이었을까.

   그는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보았다. 비록 똥구덩이에서 쳐다보는 것이라 할지라도 밤하늘의 별은 참 예쁘게도 반짝이고 있었다. 문득 그의 눈에서 까닭모르게 물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죄의식 같은 것은 들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그가 언제든 치러야 할 일이니까. 그리고 마누라의 말대로 녀석의 순수한 인간이라면, 녀석은 그저 자신의 순수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슬퍼지고, 내 눈에서는 때아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일까. 이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상실감, 나 자신이 한없이 비참해진 듯한 이 절망적인 기분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 이창동, <鹿川에는 똥이 많다 -1992>중

 

 

 

 

 

 

 

쓰레기 더미와 오물이 질펀하게 쌓인

황량한 폐허의 벌판 위에 불뚝 솟아있는 고층 아파트.

그 아래 냄새나는 진창으로 발이 빠지곤 해

버둥거리는 사람들.

 

아직 전망좋은 층은 아니지만,

평수를 넓힌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그 새 집의 거실을 꾸며줄 수족관과

비디오와 오디오 세트를 장만하는 목표를 이룬다면

그대로 치환될 거라 믿었던

일상의 안온한 행복.

헌데,

철석같이 믿고있던 그 기대감을 무너뜨리는

이 '균열'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걸까.

 

 

더 배부른 더 안온한 일상의 편익을 얻기 위해

두 눈 꾸욱 감아버리는 대신,   

제 손으로 앞장서서 가둬버린 것들은 무얼까.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 더미와 오물처럼,

어쩌면 발 밑에서 나뒹굴도록

몰래 버려두고 있는지 모를

숱한 열쇠들...

 

비굴함과 그것을 덮어줄 허위의 치장으로

높은 층에서 아슬아슬하게

조바심내며 영위하지 않아도 되는,

치열한 삶이... 허나, 물질이 아닌 인간을 위한 삶이...

소중하게 지켜줄 행복이란 집의 열쇠.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덧글쓰기 | 전체글 0건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시민광장 일정표 시민광장
31446 신뢰에 대하여   3 가람^^* 09-02-27 7 3 4689
31445 [100토 후기] 캐안습 남성들... 그래도 믿을 것은 여성들의..   13 루제로스 09-02-27 7 1 1010
31444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제 발 찍는 멍텅구리 정책인 줄도..   3 Lucida 09-02-27 9 0 3737
31443 백토 시청자 투표 결과   9 허당(虛堂) 09-02-27 5 0 1012
31442 ●● 만평 종합 2009. 02. 27 금요일...짜고치는 넘은?   3 순수 09-02-27 4 0 765
31441 박근혜 허점 계속 나와 by 국민일보 09-02-26 0 0 665
31440 살아남은 자의 슬픔   8 운유하숙 09-02-26 9 1 1036
31439 아아 유시민, 이 위대한 국가지도자!!   2 실체적진실 09-02-26 3 0 760
31438 미디어 관련법 직권상정, 국민이 지지한다!!!   7 낙천가 09-02-26 1 8 784
31437 미디어법 반대서명, 동참해주세요~!!!   10 푸줏간소년 09-02-26 11 0 978
31436 현 집행부와 이명박정부와의 공통점   5 무,대추 09-02-26 1 9 849
31435 성난대추는 상근이 급여문제 부터 풀고 나가라   4 무,대추 09-02-26 1 9 819
31434 박무/대추 집행부는 소통을 거부한 명박이랑 동급의 비민주..   3 바위처럼 09-02-26 1 9 2720
31433 박무/대추 집행부는 소통을 거부한 명박이랑 동급의 비민주..   6 바위처럼 09-02-26 1 9 2616
31432 성난대추는 상근이 급여인상에 대한 글 부터 올려라   4 성난고추 09-02-26 1 9 880
31431 ♡* 우리에게는 세가지 눈이 필요합니다 *♡   4 예쁜반달 09-02-26 9 0 753
31430 저는 개인 블러그를 통한 효율적 사회개선 방향에 대해서...   22 거지 09-02-26 5 1 950
31429 [도덕에서 윤리로]잡부선생께.   21 시민팬 09-02-26 7 0 902
31428 경향신문 월급 ‘반토막’,한겨레 자회사 매각… 신문사 경..   1 자유인 09-02-26 0 0 863
31427 물가대폭등이 시작된거 같습니다...   6 김기원 09-02-26 2 1 1494
31426 '운영규약 개정' 토론 중간 정리   41 성난대추 09-02-26 15 1 3598
31425 [집행부 통신 6호] 운영규약 개정과 홈페이지 개선 토론을 5..   16 성난대추 09-02-26 14 0 7264
31424 시민팬님께...   5 잡부 09-02-26 12 0 1039
31423 [사회민주주의적 기획] ① 미국보다 유럽에 왠지 더 이끌리는..   9 루제로스 09-02-26 8 4 923
31422 글을 보시고 많은 분들의 조언 부탁 드립니다.   2 드림머신 09-02-26 0 0 613
31421 인류공통의 고정관점에서 해방   3 심사랑 09-02-26 2 0 634
31420 ●● 만평 종합 2009. 02. 26 목요일...왜 이러는 거야!! 순수 09-02-26 5 0 675
31419 칼 세이건-창백한 푸른 점   5 반전할까요 09-02-26 6 1 1047
31418 일년전의 추억...   3 서연이아빠 09-02-26 5 0 646
31417 사회자유주의에로의 변화를 생각해본다.   6 심사랑 09-02-26 2 0 705
31416 (부산광장) 2월 운영일꾼회의 보고   1 통기레스 09-02-26 6 0 687
31415 노래 읽기 - '느티나무' 나름다움 09-02-25 1 0 681
31414 민주당이 잘 하는 것은 오늘 09-02-25 0 2 511
31413 유시민 "이명박 대통령돼도 나라 안망해", "MB에 동병상련"   1 다음 펌 09-02-25 0 4 725
31412 박무님!성난대추님!상근직 그람시Lucida님들의 300만원 지급..   2 산희 09-02-25 7 9 1985
31411 영화 이야기 - 장진 <거룩한 계보> 나름다움 09-02-25 3 0 753
31410 첨맘님이 극찬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얽힌 나의 에피소..   19 해당화 09-02-25 20 10 3987
31409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파국의 한 마디 "우리도 너희랑 똑..   3 Lucida 09-02-25 10 1 3636
31408 안타깝구나,시민광장이여   8 심사랑 09-02-25 2 0 1097
31407 ●● 만평 종합 2009. 02. 25 수요일...이게 뭐냐.. 순수 09-02-25 7 0 673
31406 한나라당 '꽃남' 한번 더 웃어봅시다   1 탱자 09-02-25 6 0 672
31405 어떤 주제든 좀 쉽게 접근하면 안됩니까   4 탱자 09-02-24 9 0 768
31404 처절한 사모곡...   19 영업용기사 09-02-24 33 0 1171
31403 일본영화 오구리비도(떠나보내는사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제81회오스카시상식 09-02-24 0 0 566
31402 감자에게.....   3 니르바나 09-02-24 1 10 763
31401 (사회민주주의적 기획) 시민광장의 노선토론을 위한 조그만..   13 루제로스 09-02-24 16 5 886
31400 유시민, "나도 출장가면 미국 쇠고기 잘 먹고 온다"   7 개무현 09-02-24 0 10 923
소설 읽기 - 이창동 <녹천에는 똥이 많다> 나름다움 09-02-24 5 0 1660
31398 '봄은 당신에게서 옵니다' 지나다 09-02-24 5 0 585
31397 촛불 어용판사와 경제위기 전쟁위기만든 맹박상 정의 09-02-24 1 0 588
31396 [소개] 잊혀가는 우토로마을을 다룬 영화 <아름다운 게토>상..   3 김성현 09-02-24 10 1 613
31395 이명박와 한나라당 사기 정치 .... 09-02-24 1 0 584
31394 규약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 / 운영규약 제·개정 방법론   8 유 윈 09-02-24 12 1 734
31393 나의 계획 ...   4 거지 09-02-24 2 3 751
31392 언제부터 '꽃남'이 막장됐을까   1 탱자 09-02-24 0 0 640
31391 가계빚 사상최대 688조2천억원,가구당빚 4천128만원 조국과민족 09-02-24 0 0 476
751752753754755756757758759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