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선생에게 담번에 논하자고 해놓고 잡부선생에게 답글을 먼저 달게 됐소.
잡부선생.
선생의 이번 글은 물론 선생의 이전글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할 마음은 하나도 없소. 모두 옳은 말씀이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요.
흔히 윤리라고 하는 부분이오. 선생은 잘 아시겠지만. 대다수의 인민은 도덕과 윤리를 하나로 보고 있소. 생활도덕에 있어 유빠님들은 대단히 존경할만한 분들이오.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생활도덕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소.
우리에겐 지금과는 다른 윤리가 필요하오. 이부분에서 선생과 좋은 담론을 펼칠 수 있기 바라고 있소. 가람선생도 물론 참여해주면 고맙겠소. 그동안 제목으로 고생하신 아름선생도 참여해주시리라 믿소.
그전에 김규항선생이 주시는 말씀으로 내 주장을 대신하려 하오. 양해해주시오.
고래가그랬어 편집장 조중사의 아내는 오랫동안 남산 중턱에 있는 부잣집 아이들만 다닌다는 사립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는 지난해 거길 그만두고 성북구의 한 가난한 동네 초등학교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으로 옮기고는 퇴근만 하면 우울해하고 술이라도 한잔할라 치면 어김없이 눈물을 보인다고 했다. 조중사가 연유를 물으니 그러더란다. “아이들이 격차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 여기 학교 아이들은 한 반에서 다섯 명 정도를 빼곤 지난번 학교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축에 껴. 거기에다 왜 여기 아이들은 키도 덩치도 작고 또 왜 이리 아픈 아이들은 많은지..”
개혁파든 극우파든 신자유주의 광신도들의 지배가 지속되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더 힘겨워지는 현실 또한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싸우고 있고 또 싸워야 한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의 품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인가? 아니다. 가난은 불편하고 때론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적어도 부유보다는 정당하고 품위 있는 삶의 방식이다.
가난은 적게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몫을 늘이는 보다 정당한 삶이며, 적은 땅을 사용하고 적게 소비하고 적게 태움으로써 파괴되어가는 지구에 생명의 도리를 다하는 보다 품위 있는 삶이다. 품위마저 사들인 부자들은 세상에서 가난의 품위라는 것을 도려내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바야흐로 품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 전쟁에서 질 때, 그래서 아이들이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가는 제 아비 어미를 수치스러워하게 될 때 우리 삶도 끝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