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이퍼 선생.
오랜만에 글을 썼구료. 선생이 요 밑에 쓴 글에 기대어 사회자유주의의 윤리를 비판하려 하오.
선생은 선생이 주장하는 이념의 주체를 개인으로 한정하고 있소. 적어도 선생의 글에서는 그렇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담번 글에서는 제대로 쓰기 바라오.
개인이 주체로 이념을 설정해나간다는 건 21세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요. 천년전에 에피쿠로스학파나 노자 장자시절에나 통용되는 얘기요. 선생이 어려운 걸 해내겠다면 모르겠으나 일단 기본이 안된 생각이라 지적해 주겠소.
선생.
사회자유주의의 기원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 기초하고 있소. 그러니 굳이 주체를 정하자면 최대다수요. 변동성이 있지. 또한 그것이 최대강령이 아닌 최소강령을 지향하는 사회자유주의의 기본이기도 하오.
선생은 아시겠지만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사회자유주의의 약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거요. 떄에 따라서는 "극소수의 극대화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흐른다는 것이오.
선생.
윤리라는 것은 하물며 불행한 이들조차 인정하는 부분이오. 다시 말하면 주체는 물론이고 소외된 자들도 긍정해야 하는 것이 윤리라는 것이오.
물론 윤리에도 체계라는 것이 있어서 주체와 소외자간의 활발한 자리변동이 보장되어 있을때 소외자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오.
극단적인 사례가 불교의 윤회사상이라 볼 수 있소. 담세상에서 좋은 걸로 태어나기 위해 현세에 좋은일을 한다. 참 좋지 않소.
그러니 올바른 사상체계에는 이러한 윤리체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오.
그런데 선생.
선생의 사회자유주의에는 그런게 없소. 아니 있다고 머릿속에 있다는 주장만 마시고 그 내용을 밝히시오. 이 부분에서 예를 하나 들어드리겠소.
어떤 사람이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놓고 "이것은 나와 내 자녀의 행복을 위한 개인주의적 자유다"라고 주장하면 나는 긍정하오. 비판하지 않소.
그런데 그 사람이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그냥 일반고가서 그저 그렇게 사는게 당연한 것"이라는 주장도 같이 곁들인다면 그것은 잘못됐다고 비판하겠소.
왜냐면 주체와 소외자 다시 말하면 특목고 출신과 일반고 출신사이에 존재하는 엄연한 차별에 대한 윤리적 해소장치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오.
사회자유주의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는 뜻이오. 아니 선생이나 유선생이 이런 사회적 차별을 해소할 윤리적 체계를 구상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오.
선생.
이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요. 개인주의적인 부분은 그렇다치고 라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말이오. 공동체가 무너지면 개인도 무너지오.
영국이라는 나라가 있소. 사회자유주의의 나라요. 이 나라는 사회복지체계가 완비되어 있으나 사회의 활력은 떨어지오. 비슷한 복지의 모양새를 띈 북구와는 매우 다르오.
왜 그런거 같소? 무엇이 사회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나누는 거 같소?
바로 주체의 문제요.
사회자유주의의 주체는 자본가요.
사회민주주의의 주체는 노동자요.
현재 자본가가 주체가 된 나라치고 경제위기를 겪지 않는 나라가 없소.
영국이 국가부도사태위기에 처한것도 바로 자본가가 주체가 된 실패사례요.
인민의 활력을 억누르고 노동자를 노예화시키고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기본적인 구조를
바꾸지 않고 복지만으로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본의 실패란 말이오.
아래 루제로스 선생이 퍼온 이상이교수의 유시민비판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오.
유시민선생이 정치를 못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지 않아서 비판받는 것이오.
좀더 구체적으로 들어가겠소.
가정에서 소외받은 아동이 있소. 사회자유주의에서는 일단 돈을 주오. 몇십만원. 밥값도 하고 옷값도 하라고. 그리고 인력을 보내오. 시간당 4천원 받는 사람이오. 무슨 자격증이 있겠지만 그것도 본인이 학원에서 자비내고 취득한 자격증이오.
돈주고 사람보내줬으니 다 됐다 하는게 사회자유주의요. 여기에 문제점이 무엇인지 아오? 이건 단순히 돈과 용역의 문제란 말이오.
소외받은 아동에게 필요한 건 케어요.
사민주의라면 이렇소. 먼저 직업이 남을 케어하는 인력을 양성하오. 즉 시간당 4천원을 벌기 위한 알바생이 아니라 자기는 남을 케어하기 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진 건전한 직업인 말이오. 물론 양성하는데 비용이 많이 드오.
이들이 공직자로 또는 현장 활동가로 소외된 아동, 노인등을 케어하오. 또한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고 좀 큰 아동이 더 어린 아동을 케어하는 체계를 만드오.
시간당 4천원 하는 사회자유주의의 개념으로는 불가능하오.
이것이 사회자유주의와 사민주의의 기본적인 윤리의 차이요. 인간중심과 자본중심 말이오.
물론 단순 소외아동뿐 아니라 사회구조, 도시구조 등등 모든 것이 다르오. 하나 더 예를 들어 드리까?
수도권을 횡단하며 직장을 다니는 직장인들이 있소. 한달 교통비만 50만원을 쓴다는둥 하오. 왜 그렇소? 아래 아름선생이 쓴 것처럼 신뢰가 부족해서 그렇소.
무슬림이 사는 모스크는 사원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마을이오. 그것이 방어시스템이자 생활시스템이오. 거기를 벗어나지 않소.
원래 도시계획은 모스크를 기반으로 하오. 주공에서 허구헌날 해대는 지구단위계획이라는게 그거요. 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도시계획을 하고 있소.
사회자유주의는 이런 근본적인 시도가 없소. 자녀가 2시간을 버스통학을 하든 남편이 왕복 4시간을 운전을 하든 돈만 벌고 좋은 학교 보내면 그뿐이라는 개인주의적이오.
2009년 한국에서의 진보라면 보다 사회주의적이어야 하오. 자본주의를 주장하면서 진보라고 주장하는 선생들을 보니 매우 안타깝소.
좋은 시간 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