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글 하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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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혜영이(가명)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약간 비만으로 보일 정도로 살쪘고, 인물도 좀 떨어지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수업 시간에 발표하라고 시키면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무 말도 않고 대책 없이 서 있고, 친구도 없는, 다시 말해 어느 한 구석 잡아줄 여지가 없는 문제학생이었다.
용인 백봉초등학교는 시골의 6학급 학교였기 때문에, 20명 남짓한 반 아이들이 이미 만 3년째 같은 반 생활을 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너무 익숙해 있었으며. 그들에게 혜영이는 ‘원래 그런 애’ 였다.
처음으로 혜영이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일단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는 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침묵에 당황하는 나에게 아이들이 옆에서 설명을 해 준다. “선생님, 쟤는 원래 그래요.”
“작년에도 선생님이 혜영이한테는 질문을 안 했어요.”
저 마다 한 마디 씩 하는데, 혜영이는 그 말이 모욕적이든 인신공격적이든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치 혜영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거침없이 혜영이의 과거사를 늘어놓는다.
체육시간에 편을 갈라 경기를 할 일이 생기면 아이들은 혜영이를 저들 편에 넣지 않으려고 노골적으로 신경전을 펼쳤고, 이리저리 해서 혜영이가 자기 편이 되면 아이들은 장탄식을 늘어놓고 인상을 긋고 난리였다. 물론 혜영이는 자기 편이 지는데 결정적 공헌을 하거나 혹은 철저하게 자기편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첫 월말 고사에서 혜영이의 평균 점수는 60점대였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공부도 공부지만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라고 생각했다. 혜영이도 문제이지만 아이들 역시 약자를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우선 혜영이한테 가해지는 강압적 분위기를 없애는 것과 동시에 아이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인식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혜영이에게 질문을 하되 때로는 5분, 10분을 기다리기도 하고, 아무 말이든 한 마디라도 꺼내도록 유도해서 일단 말만 하면 칭찬을 하고, 아이들에게는 공개적으로 혜영이에게 면박을 주는 일체의 언행을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체육 시간에도 혜영이가 자기 편이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터트리는 일이 발생하면, 즉시 운동장 수업을 중단하고 교실로 들어가 일장훈시를 듣거나 이론 수업으로 대체했다.
일단 내가 나서서 무조건 혜영이 편에 서자,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혜영이가 내게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쉬는 시간이면 내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했고, 개인별 면담 시간에는 개인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작년 담임선생님한테 혜영이 부모와 가정 사정을 물어봤었는데, 상당히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그 어머니는 성격이 엄청나게 활달해서 거의 여걸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둔 아이가 저렇게 극도의 소심한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은 유전적인 문제가 아니고 환경 문제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혜영이와 친해지면서 집안 이야기를 물어봤는데, 나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말문이 한 번 열리자 그냥 줄줄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 엄마하고 아빠는 매일 싸워요. 아빠는 매일 술 먹고 집에 들어오고요, 그러면 엄마는 아빠한테 막 욕하고 집을 나가라고 하면서… 한 번은요 버스 안에서 엄마 아빠가 싸웠는데요, 엄마가 달리는 차에서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려고 하고 아버지는 말리고…”
그 억압된 분위기를 해소하려면 뭐 복잡한 이론이 필요없다고 봤다. 일단 나와의 관계는 좋아졌으니 그 다음은 친구 관계였다. 그래서 여학생 가운데 소위 말해 엘리트 집단을 하나 골라 따로 조용히 불렀다. 그리고 도움을 청했다.
“얘들아, 선생님이 너희들한테 하나 부탁 좀 해야겠다. 들어줄래?”
“예.”
선생님이 부탁을 한다고 하자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힘차게 대답을 한다.
“혜영이를 너희 그룹에 넣어달라고. 선생님이 혜영이를 돕고 싶은데, 선생님 혼자 노력으로는 어려워. 너희가 선생님을 도와서 혜영이하고 친하게 지내주면 내가 크게 힘을 받을 것 같은데….”
착하고 똑똑한 녀석들은 흔쾌히 그러마고 대답을 했고, 정말 기특할 정도로 약속을 잘 지켜줬다. 반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하는 또래 집단이 어느 날 갑자기 혜영이를 살갑게 대하자 나머지 아이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다.
그러면서 혜영이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발표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오히려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자기를 시켜달라고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시험을 봤는데 한 번 시험 볼 때 마다 거의 10점씩 평균 점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부탁을 받고 혜영이에게 사랑을 베풀던 녀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심으로 서로 좋아하는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1학기가 지나고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단 몇 달 사이에 혜영이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방학식을 하는 날, 혜영이 어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뭔가 한 보따리 들고 왔는데 보니 반 아이들 숫자에 맞춰 스케치북을 사 온 것이다. 반 아이들 전체한테 스케치북을 나눠주면서 어머니는 연신 아이들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머리 쓰다듬어 주고 하는데, 그 모든 말과 표정 행동에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이 뚝뚝 묻어난다.
아이들에게 스케치북을 다 나눠주고는 여걸답게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혜영이를 품에 끌어안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우리 혜영이가요, 집에 오면 선생님 이야기 밖에 안 해요. 애가 갑자기 집에 와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숙제를 꼬박꼬박 하길래 왠 일이냐고 물어보니, 선생님 실망시키면 안 된다고 그래서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애가 완전히 바뀐거 있죠. 친구들도 집에 찾아오는데 보니까 공부 잘하고 착한 애들 뿐이고….”
2학기가 돼서도 혜영이의 발전은 계속됐다. 성적은 꾸준히 올라 평균 89점에 도달했고, 그 어머니한테서 느껴진 여걸의 모습이 혜영이한테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 혜영이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막연하게 마음을 먹을 때만 해도 이런 결과가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사람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져지고 있음을 느꼈을 때, 그 마음 속에서 얼마나 커다란 동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지 처음으로 직접 확인한 사건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고마웠다. 아이들한테 협조를 구한 것이 매우 주효했던 것 같고, 특히 4학년이면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부수적으로 얻은 의미있는 소득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혜영이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자연의 위대함이었다.
대학시절 공부한 상담심림학 분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상담자에 대한 진단부터 처방의 전 과정에서 상담의는 상담자에게 잘 짜여지고 계획된 질문을 던지기만 할 뿐 상담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병명을 이야기한다거나 처방을 내려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심리치료법이었다. 상담자가 자신에 대한 말을 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마음의 병의 원인도 찾아내고 심지어 처방까지 찾아낼 수 있다는 신념에 근거한 이론이었다. 꽤 설득력이 있다고 봤는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혜영이가 그 이론의 실례였다. 혜영이의 변화에 내가 한 역할은 방패막이 되어 준 것 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해 주니 너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등등의 의사 표시를 전혀 하지 않았지만, 혜영이는 스스로 공부를 포함해 다방면에서 자신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갔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근원에 자리한 신비한 에너지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데 있어 아마추어 심리학자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지혜로운 해법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자연 앞에서 겸손해 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에필로그.
4학년을 마치고 나는 6학년 담임이 되면서 혜영이와는 헤어졌다. 그리고 어느 날 교내 웅변 대회가 있어서 각 학년에 한 명씩 대표를 뽑아 최종 결선을 하게 됐다. 심사를 하려고 대회장에 가 보니 5학년 대표로 혜영이가 나왔다. 나는 작년의 내가 한 일이 생각 나 5학년 담임선생님한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물었다.
“선생님이 혜영이를 웅변해 보라고 시켰어요?”
그러자 5학년 담임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내가 시켜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어찌나 자기가 한다고 나서는 지 차마 말릴 수가 없어서 그냥 할 수 없이 시켜봤는데요 의외로 잘 하네요.”
그 날 혜영이는 6명의 결선 후보자 중에서 2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