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자 전두환의 아들이 운영하는 북스리브로에서의 도서구매행위는 전두환 일가에 이익을 주는 행위로써 나쁜 일이고 따라서 수원역 북스리브로에서 책번개를 한 수원광장은 잘못했다 라는게 앨런쇼어님의 주장과 판단이다.
전두환이 학살자라는 사실, 전두환의 아들이 북스리브로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가지고 학살자의 집안에 이익을 주는 행위는 하지말자는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고 공감이 가는 측면 또한 많다.
허나 앨런쇼어님이 주장과 판단은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주장이다.
앨런쇼어님의 주장대로라면 북스리브로의 관계자 및 이용자는 모두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 책을 많이 팔아 돈을 벌기 위해서, 편리해서 등등의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앨런쇼어님이 자신의 주장을 펴기 위해서 북스리브로와 관계하며 먹고 살고, 이용하는 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며 사는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옳은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앨런쇼어님은 개별적 행위와 조직적 행위는 다르다는 주장을 펴지만 그 차이에 대해 공감하기 어렵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관계 속에서만 존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나 나의 조직이 여타의 사람과 조직을 잘못하는, 즉 나쁜 사람이라고 전제하며 관계를 가져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앨런쇼어님의 주장의 또다른 한계는 북스리브로 이외의 서점에서의 구매행위가 학살자 전두환의 이익과 무관한 행위라는 것을 밝힐 수가 없다는 점이다.
전두환의 학살행위는 전두환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여타의 서점들이 전두환과 무관하다는 점이 밝혀져야만 앨런쇼어님의 대안이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앨런쇼어님을 포함하여 책을 구매해야 하는 사람이 그런 점까지 밝혀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앨런쇼어님의 주장은 의욕이 앞서거나 감정적인 주장이 아닐까 한다.
학살자가 생기지 않는 사회, 학살자가 당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정당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그 대안에 공감하는 사람을 넓혀나가는 실천을 해 나갈 때만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수원광장의 책번개를 준비한 사람들이 “학살자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서도 북스리브로에서 행사를 가진 것은 그 사람들이 바보거나 “학살자에게 이익을 주는 행위”를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닐거다.
“학살자가 생기지 않는 사회, 학살자가 당당하게 살 수 없는 사회”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 것이냐에 대해 그들도 고민하고 있고 또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의 학살행위와 관련된 집단이 만들어 놓은 환경이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을 차지할 때에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너 그따구로 하지 마”라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