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민주주의』의 ‘장하준’ 편에서 저자 유시민 전 장관은 장하준 교수를 제대로 된 경자학자로 평가하고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으로서 그를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장하준’ 편을 쓴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장하준이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는 것은 경제학자로서의 이론적 얘기이며 그것이 현실 정치에서의 정책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특히 저자는 “장하준 교수의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과 일부 지식인들을 보면서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장하준 보다는 그의 책을 오독하고 있는 독자들과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동시에 “장하준의 학문적 주장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만들거나 평가하는 데 활용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고 일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하준 교수의 책에서 한미 FTA 반대론을 끌어낸다.”고 말하며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하는 그의 보편타당한 이론을 쌍방 간의 관세ㆍ비관세 장벽의 폐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미 FTA 반대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일조의 ‘차원 혼동의 오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경제학자의 주장과 대통령의 선택을 같은 잣대로 재단해 규범적 평가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의미 있게 읽은 한 명의 독자로서 이번 유시민 전 장관의 장하준과 그의 독자들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조금 못마땅하다. 저자가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제시하고자 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의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주장을 펼쳤으면 좋았을 것 같다. 더구나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의 태도까지 비판하는 저자를 보자면 역시 조금은 까칠하신 것은 아닌지 싶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나 『사다리 걷어차기』등의 저서들은 한미 FTA나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들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책들이 아니다. 그의 책들은 모두가 영어로 씌워졌고 전 세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세계적 흐름을 비판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은 독자가 미국의 독자이든 한국의 독자이든 그 내용과 주장을 통해 자국 상황에 맞는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지 싶다. 한국에서 장하준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가 말 한 대로 이론과 현실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차원 혼동의 오류’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하준 교수의 텍스트들은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준은 최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한미 FTA나 금산분리 등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꾸준히 ‘사회적 대타협론’을 견지해 오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참여정부나 재계 또는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었다.
나는 유시민 전 장관의 ‘사회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장하준이 그의 책에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와 그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충분히 한국 사회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번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장하준’ 편은 꽤 아쉽게 느껴진다. 유시민 전 장관이나 장하준 모두 합리적이고 중도 진보적인 선의의 지식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 글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책에 담긴 내용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