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조금씩 매서워지고 가로수의 나뭇잎이 갈빛으로 물들어가던 즈음의 중학교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 주시겠다며 영상 한편을 보여주셨다.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수식어가 저렇게도 거창하단 말인가. 영상을 보기 전부터 의기소침한 생각이 스쳤다.
처음 보는 아저씨가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 글쓰기도 자기표현이에요… 나를 표현하지 않으면 인생이 답답해요…
그래서인지 내가 처음 봤던 그 글 잘 쓰는 사람의 책은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었다. '도대체 글을 얼마나 잘 쓴다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의 첫 장을 펼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선생님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셨다. 정치를 하던 사람인데, 젊을 때는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기도 했거든... 맞지 않기 위해 진술서를 썼다는, 심지어 진술서를 잘 써서 고문하던 사람에게 까지 칭찬을 받았다는 걸 들으며 저 사람은 필연이든 우연이든 글과 지독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봤던 영상이 기억에 남아 이후로 이것저것 찾아보았다. 주로 인터넷 검색이었다. 토론이나 강연 영상을 보았다. 항소이유서를 읽었다. 그 국어선생님꼐 '유시민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리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계속해서 그를 알아갔다.
-쳐음으로, 학교 매점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먹던 내가, 부모님께서 이따금씩 주시는 용돈을 한푼 두푼 모으기 시작했다.
돈이 만원 남짓 모이면 주말에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의 한국 현대사, 청춘의 독서…' 그런 제목의 책 한권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척 기쁘고 설레었다. 이 책에는 무슨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작가님이 무슨 글을 쓰셨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본다고 시험 공부도 미뤄둔 채 밤을 샌 적도 많았다.
내 가치관을 만들어 나갔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다. 친구가 선물해 준 <대한민국 개조론>을 읽으며 복지국가를 넘어선 사회투자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으며 내가 겪지 못한 혼돈의 한국사회를 글자로 느꼈다. <자유론>을 읽으며 자유의 본질과 국가의 역할을 고민했다. 밤마다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정치카페>를 듣다가 결국 피켓을 만들어 교과서 국정화 반대시위에 나갔다.
학교 생활기록부 ‘독서활동란’에 온통 똑같은 사람의 책 제목만 채워져 난감했다. 대학 갈 때 면접에서 불이익을 받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기말고사가 열흘 남은 시점이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교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갔다. 시험이 코앞이라는 걸 알고 계신 부모님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사인을 받으며 얼마나 벌벌거렸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때 드릴 선물을 준비해갔는데,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글이 엉망진창이었다. 작가라는 사람한테 이런 편지는 도저히 내밀 수가 없었다. 결국 선물과 편지를 담은 가방은 도로 들고 와버렸다.
5월의 끝으로 접어드는 무렵 광화문으로 나갔다.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든 광장을 보니 기분 좋은 울렁임이 심장을 두드렸다. 자원봉사자 분에게 노란색 풍선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웃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풍선을 들고 광장 길을 걸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 '16 PRESIDENT'가 쓰인 하얀색 티셔츠도 샀다. 버스비와 문제집 가격에 쪼들려 살던 나였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 옷이 맘에 들어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광장은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다. 추모 행사가 이렇게 분위기가 밝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사람들의 미소는 더욱 반짝거리는 듯 했다.
풍선이 없다며 제 엄마를 붙잡고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쥐어주었다. 말갛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는 아이를 보니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타적인 사람들 속에 있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 같았다. 돌이켜 봤을 때, 그곳은 살면서 내가 경험한 가장 이타적인 공간이었다.
살다 살다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눈물을 흘릴 줄은 몰랐다.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처음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쉼 없이 훌쩍댔다. 얼굴도 모르던 조관우씨의 노래를 듣고 나서 한동안 학교에서는 '꽃밭에서'와 '그가 그립다'를 흥얼거렸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코미디나 액션이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같이 보겠다는 친구가 없어 결국 아침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혼자 갔다. 울 각오를 하라는 사람들의 후기에 손수건을 들고 갔지만 사실 그걸 쓸 생각은 거의 없었다. 난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아도 도통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극장에서 우는 게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날 오랜 소원을 이뤘다. 영화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흐느낌을 같이 했다. 결말을 미리 알고 있는 영화가 이리도 슬플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엔딩 크레딧을 보며 한참을 의자에 앉아있었다.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노무현의 시대를 온전히 살아본 사람은 아니다. 내가 온전하게 경험한 대통령은 17대부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에 대해서는 아주 흐릿한 기억만 남아있다. 티브이에서 노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여주던 것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검고 길다란 자동차가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곳을 향해 노란색 종이비행기를 던졌던 것…, 그의 손녀가 카메라를 향해 순진하게 브이자를 그려보이던 것… 그런 조각조각의 파편들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수업시간, 새로 취임한 대통령에게 축하편지를 쓰라고 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런 건 할 마음이 쉽게 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이 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나라를 잘 이끌어주세요.'하는 식의 상투적인 말을 2B연필로 꾹꾹 눌러 썼던 것을 기억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도 못한 사람을, 나는 왜 이리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그 사람에 대한 향수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이렇게나 마음이 아리는 걸까? 난 여전히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난 아직도 영문도 모른 채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처음으로,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감정을 가져보았다.
그 분의 죽음으로 인해 그가 가졌을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안타까웠다. 어떤 영상을 보고 난 날은 마음이 아파 잠을 못 이뤘다. 그 사람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싶었다. 과거의 날 서있고 어딘가 화나 보이는 유시민을 보면 마음이 아렸다. 그가 하염없이 슬퍼지고 가여웠다. 어느 순간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깊이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행복해 보이면 나도 기분이 좋았고, 그가 슬픈 감정을 드러내면 그날 밤은 잠을 쉬이 이루지 못했다.
스무 살 남짓의 파릇파릇한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또래들 사이에서 지천명을 훨씬 넘긴 정치인 출신의 작가를 좋아하는 일은 퍽 고독했다. 주위에는 그분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친구들이 콘서트 티켓팅이나 새로 나온 앨범 같은 것을 이야기 할 때 나는 홀로 어제 들은 ‘정치카페’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그런 화제는 친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유시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찌감치 관뒀다.
유시민이라는 작가가 참 좋았다. 그 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 좋았다. 그 분이 쓰시는 글과 그분이 지니신 생각이 좋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분의 말과 글이 아름다웠다.
그 분이 살아온 인생이 좋았다. 젊은 시절 "전대가리의 개들아"를 외치던 유시민이 좋았고,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야수의 탐욕과 싸우는 정치인 시절의 유시민이 좋았고,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며 다시 문필업으로 돌아온 유시민이 좋았다.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말하기 어려웠다. 하기야 사람 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저 작가님이 몹시도 좋았다.
아버지는 당신에게는 살갑게 대하지 않으면서 환갑을 바라보는 작가를 좋아하는 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자주 “유시민이 좋으냐? 내가 좋으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망설임 없이 “당연히 유 작가님이죠.”하고 대답한 뒤 “그리고 아빠보다 나이 더 많으시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적잖이 서운하셨을 것 같다. 아버지에게는 죄송하지만 그 대답은 지금도 유효하다.
20년을 다 채우지 못한 짧은 인생에서, 유시민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실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살아온 생이 짧아서인지, 그가 내게 큰 사람이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를 알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다. 내 인생의 몇 안되는 행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주제 - 첨맘님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