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기억이라는 것. 오래되다 못해 문득 생각이 들 때면 미간에 주름을 깊이 잡고서
손에 쥔 머그잔의 커피가 다 식도록 한참을 되돌려봐야 비로소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소한 일들. 그런 기억들이 내게도 있다.
그 많은 바랜 기억 중에서도 유독 선명하게 살아나는 어떤 날은 이미 수십 년 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의 보드랍던 살냄새 만큼 오래되었지만 어쩌다 그 순간이 떠오를 때면 애써 생각해 내려고 애먼 머리채를 부여잡고 기억의 주문을 욀 필요도 없이 또렸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저녁밥을 차리다 말고 딸내미 왔냐고 인사하시던 엄마의 반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책가방을 팽개치고 밖으로 나가 놀아야 하는 어린 날의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 날 그 순간의 표정들이 너무도 생소했기 때문일 것이겠지 한다.
내가 살던 동네는 아파트 두 동이 서로 마주보고 앞마당인 주차장을 나눠쓰는 구조의 강남의 저층 아파트 단지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딱히 먹고 살기가 여유로운 가구들이 사는 동네도 아니었는데 어른들의 관심사는 정치나 시사가 아니라 남진이며 나훈아 같은 연예인 이야기 이거나 코끼리밥통은 어째서 좋다더라 같은 한가한 소리를 주고 받는 일상을 보냈던 듯하다. 어쩌면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그 당시 사회에 대한 하릴없는 넋두리 같은 것이었을까. 어른이 되어서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그 때 어른들의 마음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무관심 했던 그 모습 만큼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는 일로 남아있다.
격동의 80년 대 생들 이라고는 하지만 나름의 좋은점도 있었다. 아시안게임 이라던가 온 나라의 자랑이라고 떠들석했던 88 올림픽, 대전 엑스포 등 문화의 홍수 속에 즐길 거리가 풍족했었다. 박정희, 전두환의 서슬 퍼런 시절을 지났다고는 하나 올바른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아 아직도 전국각지에서 피끓는 마음으로 투쟁하는 사람이 넘치던 80년대 중반, 나는 세상이 어떤지 분간 못하고 마냥 돌아다니는게 신기하고 재밌기에 오로지 자식 넷 입을 건사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느라 정작 저 자신은 변변한 옷 한벌도 안 사입던 아빠의 등을 떠밀어 때 마다 동물원이며 극장이며 희안한 것들을 보자고 보채던 철없는 기집애였다.
올림픽 개막식에 언니랑 여동생만 데리고 구경을 갔다 온 아빠에게 잔뜩 뿔이났다. 사실 올림픽 개막식 따위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는 일곱 살 어린이였지만 유독 선머슴 같은 둘째딸 보다는 의젓한 큰 딸과 솜털같은 막내딸을 더 예뻐 하는 아빠가 일부러 나를 놓고 개막식을 보러 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기에 그 화는 어른들의 짐작보다 더 깊었다.
며칠 째 토라져 밥상 앞에서도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는 어린 딸이 안쓰러워 어르고 달래가며 밥 한술 뜨자해도 귓등으로 듣고 밖으로 나가 버리던 한 주 였다.
앞 동 사는 희선이와 윗집사는 진구랑 만나 집 앞 주차장 공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는것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유일한 길이었고 소시지 반찬도 마다하고 소꿉놀이에 매진하던 그 주의 끝의 기억.
소꿉놀이의 핵심은 역할이다. 그 날 그 날의 상황을 정해놓고 배역을 정한다.
엄마, 아빠, 아기로 정해지는 ‘가정집 놀이’가 식상해서 ‘조선왕조 오백 년’을 정해놓고 왕자, 세자빈, 주상전하 같은 역할 놀이를 하기도했다.
그 날은 대통령 놀이였다. 지금 처럼 총리가 누군지 국방부장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통령 놀이라고 정해 놓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온통 대통령 뿐이었으리라.
누가 어떤 대통령을 맡았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오로지 아는 대통령의 이름들을 각자 맡아 전두환, 노태우, 박정희, 육영수 등 대통령 역할 놀이에 심취해 있던 중 아까부터 우리가 노는 모습을 하나의 풍경처럼 감상하던 한 할아버지가 판을 깼다. “이놈들!!” 단전 깊숙이에서 부터 올라나온 그 소리에 우리 모두는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몇 초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놀란 것은 목소리 때문 만이 아니었다. 노기가 가득한 얼굴, 이마 끝까지 피가 차지않아 불같이 타는 모습 속에 떨리는 눈동자, 본인도 두려움에 가득찬 그 얼굴.
“조그만 것들이 큰 일 날려고 못하는 말이 없어! 누가..누가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숨 쉴틈없이 몰아치는 불호령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연신 손가락만 꼬집고 있던 우리는 결국 “니들 다 잡혀가고 느그 부모도 다 잡혀간다!” 는 말을 끝으로 터진 눈물을 날리며 도망쳤다.
눈물에 얼굴이 져서 양볼이 빨갛게 부어터진 몰골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고 순간 망태할아버지가 떠올라 한없이 두려웠다. 울면 입을 꿰메러 나타날까 눈물을 글썽이다 잠들었던 날. 그 날 이후로 정치인들, 티비에 나오는 높으신 분들은 망태할아버지가 되었다. 감히 입에 올려서는 안될 존재이자 잘못하면 나 뿐아니라 우리 엄마아빠를 잡아갈 수 있는 무서운 사람들.
딱히 트라우마라고 할 것도 아니었다. 서서히 무관심 해졌다. 어쩌다 정치판에 싸움이라도 나는 장면을 볼 때면 ‘망태할아버지’가 생각났지만 역시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자라면서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를 거치게 되었고 참여정부 시절까지 왔지만 사는 게 바빴는지 노는 게 바빴는지 혹은 그 날 자리잡은 망태할아버지의 악몽 때문인지 모른척 하는 것이 속 편하다고 여겼던 그저 그런 날들 속에서 첨맘님을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였다. 이름도 모르던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 그 모습이 충격적이 었던 것은 역시 망태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마치 수십 명의 망태할아버지에게 에워쌓여 있는 모습. 숨도 못쉴 정도의 공포로 가득한 얼굴들 그 아수라장 속에 오롯이 분노로 가득찬 필사의 얼굴만이 빛이났다. 첨맘님이었다.
궁금할 따름이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간에 여간 대단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보통은 화가나면 노기만 띄기 마련인데 망태들은 낯빛에 두려움이 서려있다.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숨기려고 더욱더 대노한 표정을 짓는자들. 그 얼굴을 마주 하면 그 한기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져서 도망가고 싶어진다. 꾹 참고 한번 싸워보자 싶다가도 입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무서운 게 정상 일 것인데 그런 망태들 틈에 맞선 행동이 거리낌 없이 당당한 사람.
그 날로 팬이 되었다. 단순한 팬 이라기보다는 영웅에 가까울 수 있겠다.
첨맘님을 알기 전 까지는 아니다 싶은 것들과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상황들에서 그저 도망치고 있었고 관심없다는 쿨병에 가까운 헛소리로 역사에 대한 무지를 합리화 했다.
무던히 부끄러웠다.
그저 옳고 그름을 눈 앞에 두고 무언가를 부정하고 싸우면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두려워 피하기만 했던 지난 날의 나에게 용기 내어 싸워 볼 수 있도록 손 내밀어 끌어준 사람이라고 할까. 비록 직접 건넨 손은 아닐지라도 그렇다 믿고 첨맘님 가는 길을 소리없이 따라왔다고 해야할까.
사실 첨맘님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나 첨맘님은 누구인가에 대한 글을 쓸 만큼 그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글을 쓰는 것은 아직도 그 처럼 온전히 싸우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북돋움 때문일 것이다.
첨맘님을 알게 되고 몰랐던 근현대사와 우리의 지난 정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지키고 싶은 가치와 앞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사람사는 세상.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기위해 바꾸어야 하지만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암흑같던 이명박근혜 시절.
수 많은 부조리로 인해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늘 망태들 속에 있던 첨맘님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