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게
요즘은 세월이 곧잘 말을 걸어온다. 전에는 내가 말좀하자고 세월을 보챘지만 들어주지 않아 서운했다. 그런데 무슨 얘기를 하자고 나를 찾는 것일까. 어느 날 꿈 속에서 나는 말좀 하자고 찾아온 세월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겁이 났다고 해야 할까.
‘이제 이만큼 살았으니 저 세상에도 한번 가 보는게 어때’
꼭 이 말 하려고 찾아온 것 같아서 문 열기가 조심스러웠다. 어떤 답을 주어야할지 마음을 추스르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세월은 새 깃털만한 가벼움으로 내 마음 언저리에 앉았다. 그는 나의 일거수일투족,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거울 들여다보듯이 꿰고 있었다. 다행히 저 세상에 가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세월은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중장년기 날들에 대해 하나씩 생애 전환점이라 할수 있는 사건들을 꺼내들고 있었다. 나는 그 기억들 속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유년기의 기억이다. 너댓살 나의 맨 처음 기억이다.
고향마을 창평에는 ‘고재선 가옥’이 있는데 대부간집이라고 불렀다. 그 집 별채와 우리 집은 낮은 담장을 하나 두고 이웃하고 있었다. 대부간집 할아버지를 기억해 보면 훤하게 벗겨진 이마, 기품있는 모시옷, 허허허 너털웃음, 인자하고 너그러운 그런 인상으로 기억되는 분이다.고재청, 고재필 등 알만한 정치인 집안의 장자셨고, 마을 사람들은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나는 누가 시켰는지 ‘꼰대, 꼰대할범’이라 불렀다. 꼰대 할범이 꼬마인 나를 부를 때는 늘 뒷춤에 유과나 엿을 들고 계셨다.
‘이거 줄테니 우리 집에 놀러 오렴’
나는 꼰대할범의 유혹에 넘어가 대부간집 대청마루에 가 있곤했다. 그 큰 기와집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니면 집이 너무 커서 사람이 없어 보였는지도 모른다. 꼰대할범과 놀고 있는 대청마루에는 적당한 시간 간격으로 자그만 반상이 하나씩 들어왔다. 떡과 조청, 식혜, 콩자반과 쌀밥, 이런 먹을 것들이었다. 맨 마자막에는 연필 한자루와 공책이 반상에 올려져 있었다. 이런 반상을 내어오던 사람은 대부간집 식모 점순이였다.
대부간집 식모 점순이를 두고는 여러 말들이 많았다. 꼰대할범의 숨겨둔 딸이라는 둥, 받을 돈을 사람으로 가져왔다는 둥, 여러 말이 많았는데 ‘먼 친척인데 부모가 없어 꼰대할범이 데려온 아이’라는 말이 가장 그럴 듯 했다. 점순이는 학교도 가지 않고 늘 대부간집에만 있었다. 집 밖에서는 한번도 점순이를 보지 못했다. 그 집 대청마루에 가야지 볼 수 있는 아이였다. 점순이는 나보다 대여섯살 정도 많은 나이였다. 말을 못하고 듣지를 못하는지 표정이 없었다.꼰대할범도 말로 시키지 않고 손가락이나 턱으로 일을 시키던 아이였다.
어느날부터인지 꼰대할범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할범이 죽을 병을 얻어 거동을 못한다고 했다. 또 어느 사람은 ‘박정희가 불러서 서울로 올라갔다’고도 했다. 어느게 맞는 말인지 몰라도 꼰대할범이 보이지 않는 날이 여러날 되자 나는 대부간집 담장을 넘어 혼자 대청마루에 올라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 매미울음소리만 울창하고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반상을 들고오는 점순이가 나타났다. 반상에는 조청과 떡이 올려져 있었다. 점순이는 여전히 말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았다. 상을 내려놓고 조용히 나가는 것이다. 또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식혜를 내오고, 또 얼마쯤 지나자 콩자반과 쌀밥을 내오고, 이제 연필 한자루와 공책이 나오면 그만 이 집을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반상을 내려놓은 점순이에게 말을 걸었다.
‘할범 어디 갔어?’
‘......’
‘넌 벙어리야?’
‘......’
‘넌 귀머거리야?’
‘......’
점순이는 조용히 대청마루 문을 열고 나갔다. 매미 울음소리만 더욱 크게 키워놓고 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했던대로 연필과 공책이 올려진 반상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그걸 챙겨 대부간집에서 나왔다.
나의 유년기 잊지 못할 사건은 꼰대할범을 찾아 대부간집에 가간지 얼마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담장너머 대부간집 별채에서 점순이가 유과를 흔들며 내게 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꼰대할범이 나를 찾나보다해서 냉큼 담장을 넘었다. 점순이는 앞서서 대청마루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뒤따르고 있었다. 올라선 대청마루 한 가운데에는 반상 여러개가 한지 식보에 덮힌채 놓여져 있었다. 꼰대 할범은 보이지 않았다. 점순이는 꼰대 할범이 자신에게 했던 그대로 내게 턱고 손가락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다. 앉아, 먹어, 가까이 와, 꼰대할범이 했던 그대로다. 시간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반상을 하나씩 바꿔갔다. 점순이와의 대청마루 첫날은 참 재미있네 정도의 추억이다.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고,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저러나 싶어 어린 마음이지만 측은하게 여겨졌다.
점순이는 수시로 나를 찾았다. 심심하면 찾는 것이겠지만 멱도 감고, 개구리도 잡으러 다녀야 할 바쁜 꼬마를 수시로 찾아대니 귀찮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유과만 들고 있더니 내가 안 간다고 핑계거리를 만들 즈음에는 자동차도 들고 있고, 비행기도 들고 서 있었다. 어느새 대청마루 주인은 점순이였다. 이제는 꼰대할범이 궁금한게 아니라 점순이가 ‘오늘은 말 좀 하려나’ 그런 호기심이 컸다. 점순이와 대청마루 놀이가 늘어날수록 점순이의 몸으로 하는 지시어도 하나씩 늘어났다. 앉아, 먹어, 가까이 와, 여기까지는 익숙했는데 ‘벗어, 만져봐, 재밌어?’라는 지시어가 등장하면서 나의 유년기는 그것만 기억되고 있다.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점순이를 마구 때리던 그 날만 기억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던 열 살 때 서울로 이사를 했다. 몇 해 지나고 고향마을에 갔을 때 들은 점순이 소식은 서울 친척집으로 갔다는 것이다. 대부간집 대청마루는 고재선 가옥 전체가 문화재가 되어 출입이 제한되어있다. 담장 밖에서나 바라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