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개혁 담론(총론) 시장의 원활한 작동을 위하여 이번에는 진중권의 지론을 비평한다. 괜찮은 담론은 빨리 확산시키고, 후진 담론은 빨리 퇴출시키는데 일조하기 위해서다.
진중권(중앙대학교 겸임교수)의 최근 정치적 지론을 집약한 발제및 토론은 9월 24일 오전 7시30분 ~ 09시 국회귀빈식당에서 있었다. 진교수는 민주정책연구원이 개최한 연속 토론회; [논객이 민주당을 논한다]의 2번째 논객으로 초청 받았다.
1. 진중권 발제문의 요지
진보 신당의 스타(?) 당원이자 문화평론가인 진중권의 주장은 항상 명쾌하고 단도직입적이다. 이번 발제문도 글의 첫 두세 줄에 주장의 요지를 담았다. 그는 노회찬 전 의원의 입을 빌려 노무현 정권과 민주당의 문제는 공히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하였다. 이 주장은 약간의 변주를 거쳐서 글 전체에 걸쳐서 계속 반복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은 민주당-열린우리당 지지층의 물적 토대를 붕괴시켰다. “
“‘민주’와 ‘통일’에 관련된 과제가 어느 정도 성취되고, 자율적 소통문화 역시 대중의 일상이 되어버리면서…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약화되고...대중은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배가 고픈 대중에게 ‘민주’니, ‘통일’이니, ‘참여’니 ‘자율’이니 하는 말은 관념적 사치일 뿐이다. 민주당의 정체성을 이루던 가치들은 외려 환멸의 대상이 된다. 이 환멸은 그저 관념적 현상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 더 벌어진 빈부격차라는 물적 토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한나라당의 이념과 철학에 전략적으로 투항을 했다는 데에 있다. 경제정책의 우경화는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가진 ‘이명박식 욕망’으로 무장시켰다“
이런 주장들이 대표적인 변주곡이다. 위 주장에서 보듯이 김대중도 노무현과 같은 좌파 신자유주의자로서 기존 지지층의 물적 토대를 붕괴시킨 존재로 되었다. 어쨌든 진중권의 주장을 요약하면 민주당과 노무현의 문제는 대중이 웬만큼 충족감을 느끼는 ‘민주’니, ‘통일’이니, ‘참여’니 ‘자율’이니 하는 가치를 추구하는데 진력하고, 결정적으로는 좌깜빡이-우회전(신자유주의 수용)으로 인해 대중의 변화하는 욕망(배고픔과 빈부격차)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민주당에 대한 제언은 무엇인가? 당연히 좌깜빡이 넣고 좌회전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이 회생하려면, 무엇보다도 경제정책에서 신자유주의적 노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나 통일이 정치적 의제가 되던 시대는 지났다...경제 정책에서 한나라당의 노골적인 시장주의 노선과 뚜렷한 대립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 민주당은 그저 불철저한 한나라당으로 남을 뿐이다.(중략) 민주당은 현재의 비판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한나라당의 것과 구별되는 경제발전의 새로운 전략, 사회체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진교수는 “(네트워크 허브로서의) 리더십 회복”과 “야성과 투쟁성의 회복”을 주문하였다. 그는 글 마무리에서 “한나라당을 따라서 보수화하는 것은 민주당의 몰락을 재촉하는 길일뿐”이며, “전통적 지지층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지역정당으로 회귀하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가망 없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였다.
2. 멋진 말들
문화평론가인 진중권의 짧은 정치평론 글로부터, 진보 정치이념사에서 의미가 있는 통찰을 발견한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하지만 재치가 넘치면서 깊이 음미해 볼만한 문학적 표현들은 적지 않다.
실현된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일 수 없다.
‘빵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자유를 희생했는데 빵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그나마 멀쩡히 누리던 정치적 권리마저 제약하는 정권에 극심한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미국 민주당의 구호가 묘하게 한국에서는 한나라당의 것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를 하자’는 담론과 ‘무언가를 하지 말자’는 담론이 부딪힐 때, 승산은 당연히 전자에게 있다. 대중은 꼭 어떤 정책을 믿어서가 아니라, 믿고 싶어서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3. 평론
진중권의 화법대로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만 먼저 말하겠다. 김호기 교수의 글과 달리 진중권의 글은 ‘선수’가 비평할 가치가 없다. 내가 쓰는 이런 류의 글들을 문학평론가들이 비평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가치가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중권의 글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짧은 글이지만 한국 진보의 사상 이념적 고질병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증세는 김호기 보다 훨씬 악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일관된 좌회전을 주창한 민노당의 득표율 문제
확실한 좌회전에 진보 승리의 길이 있다는 진중권류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좌깜빡이에 더 확실한 좌회전을 표방해 온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추락 현상을 해명해야 한다.
일찍이 이 난제를 푼(?) 유명한 궤변이 있다. 일명 ‘복수론’이다.
“지지자들이 의도적으로, 일부러 (민노당) 지지를 안 하고 스윙 한 것이다...민노당 후보를 지지하면 지지자의 속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민노당이) 하던 대로 할까 봐, 변하지 않으면 확실히 버리겠다는 사인을 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30%가 이명박을 지지하는 현상을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직접 전달을 못하니까. 이 정당에 가장 타격이 되는 사람한테 몰아준 것이다”(박상훈, ‘선거결과, 반동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시사IN> 2008년 1월3일자)
‘(이명박 압승으로 끝난 대선 결과는) 집권파가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유권자의 복수라고 본다....대통령은 자신의 지지 세력에 반응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보수 세력에 어필하고 끌어안을까에 더 관심을 가졌다.....이번 대선은 민주주의가 잘 지켜지지 않을 때 대중은 그래도 민주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최장집, ‘선거결과, 반동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 <시사IN> 2008년 1월3일자)
이처럼 박상훈, 최장집은 대중의 시각으로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대중에 이입시켜서 해석하고 있다. 본래 솔직 담백하고 직선적인 대중의 표심(범진보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쓰리쿠션까지 생각하는 표심으로 둔갑시켜, 자신의 고정관념인 ‘더 확실한 좌회전’이 유권자의 진심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중권은 이 난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본문의 내용이 길어 본래 게시한 사이트를 링크해 놓습니다.)
http://www.goodpol.net/inquiry/report.board/entry/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