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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만 새롭다.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로 절정을 이뤘던 팬클럽 정치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그때처럼, 또다시 방아쇠는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해찬·유시민 등 친노 정치인의 팬클럽이 새로 생겨나거나 일대 중흥기를 맞았다. 서거 이후 두 달이 채 못 되어 노사모 회원은 1만명이 늘어 총 12만명, 유시민 전 장관 팬클럽 ‘시민광장’ 회원은 7000명이 늘어 총 1만8000명이 됐다. 지난 6월4일 새로 문을 연 이해찬 전 총리의 팬클럽 ‘대장부엉이’는 한 달여 만에 6000명이 넘는 회원을 모았다.
같은 기간에 제1야당인 민주당은 “원래 줄어 드는 추세였던 당원이 서거 이후 더 줄어들지 않는 정도” 선에서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지율 또한 잠시 반등 이후 어영부영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정치에 할 말이 생긴 시민은 이번에도 정당 대신 팬클럽의 문을 두드렸다. 흘러간 옛이야기의 재탕일까. 팬클럽 정치의 부활은 ‘민주당의 노무현’이 아닌 ‘개인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2002년 대선의 연장 방송일까.
노사모의 ‘찬란한 유산’ 팬클럽 정치
선거가 멀었는데도 팬클럽 정치의 시대가 돌아왔다. 할 말 많은 시민은 정당 대신 팬클럽 문을 두드린다.‘서거 정국’의 정치적 에너지도 팬클럽으로 몰린다.
익숙하지만 새롭다.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로 절정을 이뤘던 팬클럽 정치의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그때처럼, 또다시 방아쇠는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해찬·유시민 등 친노 정치인의 팬클럽이 새로 생겨나거나 일대 중흥기를 맞았다. 서거 이후 두 달이 채 못 되어 노사모 회원은 1만명이 늘어 총 12만명, 유시민 전 장관 팬클럽 ‘시민광장’ 회원은 7000명이 늘어 총 1만8000명이 됐다. 지난 6월4일 새로 문을 연 이해찬 전 총리의 팬클럽 ‘대장부엉이’는 한 달여 만에 6000명이 넘는 회원을 모았다.
같은 기간에 제1야당인 민주당은 “원래 줄어 드는 추세였던 당원이 서거 이후 더 줄어들지 않는 정도” 선에서 제자리걸음을 했다. 지지율 또한 잠시 반등 이후 어영부영 제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정치에 할 말이 생긴 시민은 이번에도 정당 대신 팬클럽의 문을 두드렸다. 흘러간 옛이야기의 재탕일까. 팬클럽 정치의 부활은 ‘민주당의 노무현’이 아닌 ‘개인 노무현’에게 열광했던 2002년 대선의 연장 방송일까.
정치인 팬클럽의 원조 ‘노사모’가 새로운 변화를 꿈꾼다. 위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당시 거리를 가득 메운 노란색 물결.
차이는 있다. 세대로는 386, 정치 성향으로는 개혁 세력 지지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팬클럽 정치는 이제 백가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보수 정치권은 노사모 모델을 앞 다투어 벤치마킹했다. 〈시사IN〉은 유력 정치인들의 팬클럽 회원 수를 조사해 ‘상위 10걸’을 추려봤다(표 참조). 한 정치인에 여러 팬클럽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가장 규모가 큰 팬클럽을 기준으로 했다. 조사 결과 보수 진영 정치인 팬클럽이 다섯, 진보·개혁 진영이 다섯으로 나타나 고른 분포를 보였다.
선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팬클럽 ‘박사모’의 규모는 진보·개혁 진영 팬클럽 5개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다. 박사모는 이미 지난해 18대 총선과 올해 4월 경주 재선거에서 위력을 과시한 바 있는 ‘검증된 조직’이다.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한나라당 당 조직과는 그 어떤 교류도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그간 정치의 장에서 철저한 비주류였던 ‘20대 여성’의 부상은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이다. 이 역시 경로는 정당이 아니라 팬클럽이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정치 주체로 떠오른 ‘20대 여성’이라는 신천지를 두고 벌인 경쟁에서, 정당 정치는 팬클럽 정치에 또다시 패하면서 취약함을 새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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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정치와 팬클럽 정치의 괴리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력 팬클럽을 보유한 한 정치인은 올해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당직자가 우리 쪽과 팬클럽 운영자에게 팬클럽 인적 사항을 달라고 했다. 우리건 운영자건 개인정보가 사유재산도 아닌데 줄 수가 있겠나. 그런데 그 당직자는 이해를 못하는 거다. ‘당연히 당의 재산 아니냐’는 거지. 사고의 출발선이 다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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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어 형식적으로는 참여가 가능하지만 정작 실질적인 참여 루트는 없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공간을 만들어온 정치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시민이 참여의 열정을 갖기 시작할 때 강력한 국가관료 체제·재벌경제 체제·보수 독점의 언론시장이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민주화 국면에서 몇 번 틀을 바꿀 기회가 있었지만, 운동권 엘리트들은 시민의 참여 폭을 넓히는 대안적 정당체제를 만들어내는 대신 개별적으로 투항해버렸다. 삶 속에서 참여할 길을 찾지 못한 시민은 자신의 정치적 열망을 주체적으로 발언하는 대신 특정 정치인에게 의탁해버린다.” 그 결과는 제도권의 정점에 진입한 정치인의 ‘변심’과 시민의 ‘실망’이었고, 출구를 잃은 열망은 또 다른 영웅적 정치인을 발견할 때까지 정치 혐오로 후퇴하곤 했다.
열망과 실망의 사이클’ 어떻게 끊어낼까
정당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므로 팬클럽 정치를 자제해야 한다는 식의 훈계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실 앞에 의미가 없다. “팬클럽 정치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문제는 대중의 열망을 등에 업은 정치인이 그들의 이해가 진정 반영되는 방식으로 정당 정치 시스템을 바꿔내느냐이다. 우리가 겪은 실패도 이것이다.”(박상훈 대표) ‘포스트 노사모’ 시대의 팬클럽과 정치인이 고민해야 하는 지점 역시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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